새로운 제 3의 파도가 익어간다.
17년 12월 1일.
‘바르다 김선생’ 브랜드를 들고 띵굴시장에 왔다.
바쁜 일들이 진행 중이고, 욕심 나는 건을 앞두고 있어 집중을 해야했기 때문에.
그리 즐거운 마음으로 온 것은 아니다.
이미 오기로 했고, 왔어야 했으므로 온 것.
게다가 이번엔 서울도 경기도 아닌 대구.
또 게다가 금토일 3일간.ㅜㅜ
쓰고 나니 참 긴 글이다.
주의할 것.
#1.
스태프 300명에게 드릴 아침식사 챙기기.
띵굴시장에 참여하신 많은 브랜드에서 오신 분들 중 300명 분의 첫날 아침식사를 우리가 준비하기로 했다.
대표님께서 특별히 신경을 쓰라고 말씀을 주셔서.
대구의 한 가족점에 김밥 300줄을 부탁하고,
지인이 운영하는 동성로의 한 규카츠 식당의 주방을 새벽 3시부터 아침 8시까지 한 5시간을 빌려 제육을 볶고, 백김치를 썰고, 소고기와 무를 넣어 국을 끓이고, 미리 주문한 귤을 챙기고, 그걸 일일이 예쁘게 나눠담았다.
우리 김밥은 주문과 동시에 만들어 드리기에 대량으로 준비하며 몇 시간 지난 후에 드리는 것에 대해 먹으면 맛이 떨어질 수 있었으나...
다행히 맛있게들 드시더라.
#2.
부스에서 상품 판매하기.
현장에서 김밥을 직접 싸서 판매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자원이 들어가겠다는 판단이 서서, 애초에 뭔가를 조리해서 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바르다 김선생 김밥에 사용하는 (전통 압착방식으로 만든 정말 자신있는)참기름, 크림치즈 호두김밥에 들어가는 (좋은)호두정과, 100% 국산재료로 만든 (아이들에게도 아주 좋은)옥수수 보리차를 판매했고, 그 이유는, 우리 매장에서 제공하는, 우리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얼마나 좋은 지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우리가 딱 예상한 만큼 판매했다.
#3.
띵굴시장을 들여다 보기로 결심.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은 많이 봤으나, 가본 적은 없었다.
혹자는 '팔로워 많은 어떤 아줌마가 사람들 모아서 하는 시장' 이라고 하고, 또 혹자는 ‘취저’, '감성 브랜드들이 많이 모여있다'고 했다.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오고 싶어 왔다기 보다는 일로 인해 와야 해서 온 것이므로.
기왕 할 일 즐겁게 하고,
띵굴시장의 셀러와 고객? 관객(입장료 5,000원 이므로)?들을 좀 속속들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대구에서의 띵굴시장은 대구 엑스코가 주최하고, 대구 북구청이 후원하는 대구 크리스마스 페어와 함께 진행하는 형식이었는데, 행사장은 띵굴시장에서 초대한 부스들과 대구 엑스코에서 초대한 부스들의 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때문에 브랜드의 스타일이나 분위기도 확연히 달랐다.(고 나는 느꼈다)
(이 글은 띵굴시장에 한한 생각들을 작성한 것)
카테고리는 패션(의류와 액세서리), 액세서리, 가구, 인테리어 소품, 주방용품과 그릇, 책, 식품과 간식거리 등이 있었는데, 아는 브랜드는 하나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전부 작은 업체나 개인이 만든 브랜드였다.
#4.
띵굴시장에 참여한 브랜드들.
(여기서 부터가 핵심임.)
우선은...
아는 브랜드가 거-의 없다. ㅡㅡ;
(나만 그런 건 아니지??)
자... 몇 개 부스들만 이라도 좀 보자면.
사진들로만 봐도, 톤앤매너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우리말로 만든 브랜드 명칭, 무채색의 컬러, 세리프가 있는 브랜드 서체 (단정, 내일도두부, 덕화명란, 은곡도마, 소미노, 정육각, 외계인방앗간, 태극당, 부엉이 곳간, 피터스 커피, 모모상점, 이로움, 키친툴, 윤우씨의 구멍가게, 물론 바르다 김선생과 이 행사의 호스트인 띵굴시장도)중 두 가지씩에는 해당되는 브랜드가 대다수였다.
브랜드의 시작점과 목적이 저마다 다를텐데도 참 신기하게 그렇다.
물론 안 그런 친구들도 더러 있고.
(나쁘다는 것 아님)
불과 4-5년 전만 해도 자신의 브랜드를 소개할 때 '우리 브랜드는 단순히 패션(혹은 가방, 신발, 그릇...)을 넘어 당신의 OO한 생활 그 자체를 지향하며...' 뭐 이런 식의 본질을 부정하고 더 큰 테두리로, 혹은 한계가 없는 듯한 가치관과 크기를 말하는 브랜드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조금 더 본질에 집중(가장 먼저 OO한, 좋은 OO로 만든, 단일제품만 만드는, 가장 오래된, 초신선을 먹는, 소년의 미모를 노년까지, 밀가루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한 덩어리의 나무를 깎아 만든)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모두들 「본질의 발견」(최장순 著)를 읽기라도 했단 말인가!)
브랜드가 전하는 이런 메시지의 방향이나 의도도 여러 트렌드 중 하나일 거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한 가지를 콕 찝는 메시지를 선호한다.
(한 때 컨펌을 쉽게 받기 위해 중의적 의미를 제안해서 박수받은 적도 있지만ㅋㅋ)
기본적으로 One Brand는 One Message여야 한다.
#5.
띵굴 시장의 큐레이션 능력과 감각.
이쯤에서 칭찬하고 싶은 것은 띵굴시장의 큐레이션 감각과 능력인데,
띵굴시장도 플랫폼이다.
개인이 만든 좋은 브랜드들, 로컬의 오래된 브랜드들을 잘도 골랐다.
추측이지만, 일정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골랐을 거다.
그러니 이렇게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브랜드들이 모였지.
사람마다 ‘취향저격이야’, ‘난 잘 모르겠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오프라인에서, 서울이 아닌 곳에서, 3일 내내 이 정도 반응 얻어내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잠시간,
‘아 요즘 생긴 브랜드들은 또 전부 이런 식으로 디자인했네. 너무 몰개성 아냐?’라는 의견을 동료들과 나눴다가,
이내
‘아, 이게 띵굴시장의 큐레이션 기준일 수 있겠다.’
로 정정했다.
이런 브랜드들을 더 큰 판으로 끌어내주고,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진행하다가 대구까지 와줬으니 아주 대대적으로는 아니지만, 그 브랜드들에게는 충분히 유의미한 수준의 인지도와 고객 획득 및 활동(그로스 해킹에서 말하는 Acquisition 및 Activation)까지 이끌어 내 주었다. 품질에 만족하거나 좋은 경험을 했으면 Retention도 만들어 낼게다. 이건 참여한 브랜드의 몫이겠지만.
현대판 장돌뱅이?? 5일장?? 그런 역할도 해 주며 곧 부산도 가고, 광주도 가고, 대전도 가겠지.
두 달에 한 번씩 열어도 1년에 여섯 번이고, 그러면 점점 영향력이 커질 것이며, 진행을 거듭하면서 띵굴시장과 뭔가 잘 안맞거나, 고객들의 선택을 잘 못받는 브랜드들은 또 다른 브랜드들로 대체되며 완성도는 오르고, 색깔은 더 뚜렷해 질 것이다.
(아. 흥행이 계속되면 메이저급 브랜드들이 들어오며 오히려 지금의 가로수길처럼 색깔도 매력도 모호해질 수 있겠으나, 최근 성동구청이 성수동 어느 골목에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는 못들어오게 한 조치를 벤치마킹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을까.)
-연남동 마을시장, 소소마켓, 문호리리버마켓, 마르쉐@ 등등 여러 시장들이 있지만, SNS의 파워를 활용하여 전국구로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간다는 측면에선 띵굴시장이 클 플랫폼이라는 생각.
-구성된 톤과 매너,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종류도 전혀 다르긴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 29CM이 하는 역할을 오프라인 상에서 구현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또 한가지.
띵굴시장의 주최 측 대표님은...
그 많은 브랜드를 메일링 몇 번과
단톡방에서의 정보전달로 컨트롤을 하더라.
카테고리도 다르고, 필요도 다르고, 개성도 다른 그 많은 브랜드들을.
숙박추천, 냉장고 등 기물 렌탈 추천 같은 각 브랜드가 알아서 할 수 있음직한 것들도 단호하고 쉽고 효율적으로 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음.
#6.
새로운 제 3의 파도.
새 정부가 천재지변으로 인해 국가 중대사의 일정을 미루거나, 해외에서 발이 묶인 국민들을 위해 전세기를 띄워 바로 데려오는 현상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나는 믿는다. 시대정신이 바뀐 거다. 생각이 달라진 것이고, 많은 국민들이 영감을 얻고 지지하고 따른다.
그렇게 각지에서 더욱 좋은(혹은 나에게 적합한) 물건을 사용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영감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체의 수준을 올리고 있는 시대가 익어가고 있다.
기업이 물건을 만들고, 그것이 꼭 필요하거나 있어야 하는 세상을 만들어 판매하던 첫 번째 파도,
더 높아진 생산성 기반에서 필요의 여부를 떠나 더 많은 물건들을 구매하도록 유도하여 풍요로운 소비를 이끌던 두 번째 파도,
그리고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줄이고, 더 디테일하고 작게 나누어진 의도와 목적을 가진 물건(주로 더 좋은 것을 적게라도 만들어 나와 뜻을 같이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나누어 쓰겠다는)을 만들어 선보이려는 지금의 세 번째 파도.
그 세번째 파도가 위력을 보이는 시대다.
#7.
(+) 기타. 여긴 단상. 안 봐도 됨.
(1) 구매자
요일마다 방문객의 층이 달랐다.
금요일에는 고등학생들도 많았고, 20대 젊은 층이 많았다.
사전에 행사 포스터 등 광고가 붙었을 것이고, 아무래도 SNS에서 인기있는 시장이다보니, '사진 찍으러' 온 이들이 많은 듯 했다.
세련된 분들이 유독 많았고, 혼자 온 분들도 많이 보였다.
싸고 가벼운 것들을 판매하던 우리 부스에서는 금요일에 가장 많은 매출이 일어났다.
토요일에는 30대 여성, 부부들이 많았다.
20대 연인들이 손을 잡고 둘러보는 풍경을 자주 봤다.
주방용품과 인테리어 소품 부스에 사람들이 많이 몰렸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상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일요일 오후에는 유모차를 밀고 온 가족단위가 아주 많았고, 40대 후반-50대의 남성분들도 많이 보였다.
뭔가 사러왔다기 보다는 구경하러, 동네 마실 나온 분들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분들은 옷차림도, 부스를 지나는 걸음걸이도 좀 달랐던 것 같다.
이것은 마치 Product Life Cycle 곡선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금요일은 innovator와 early adoptor, 토요일은 early adoptor와 early maturity, 일요일은 late maturity랄까.
(2) 판매자
기본적으로 미남미녀이거나 호감형 외모에 잘 웃고 친밀한 태도를 가진 분들이 많다고 느꼈다.
이런 시장은 구매결정을 하시는 분들이 주로 여자분들이어서 그런 지 훈훈한 외모와 태도를 가진 남자분들이 판매하는 부스가 잘 되었던 것 같다.(뷰티, 패션소품은 말고, 그리고, 우리 부스는... 비교하면 역시 뭔가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의 느낌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브랜드의 톤앤매너가 유사하다는 것은, 의도와 목적, 추구하는 가치가 유사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셀러들끼리의 교류나 평가를 위한 세션이 있다면 더 협조와 공유가 잘 되지 않을까... 더 단단한 동류의식을 가지고, 더 큰 그림을 그리며 장기적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3) 밤에는
대구에 와 본적은 서너 번 정도 있으나, 밤을 보낸 적은 처음이었다.
밤에는 애쓴 동료들과 그 날의 평가, 다음 날의 계획을 세우며 돼지막창, 똥집모듬, 연탄불고기, 막창순대 등 대구에서 유명한 것들을 먹으러 다녔는데(중화비빔밥을 못 먹었...)
근데 난 왜 이 시점에 먹는 걸 이야기 하는가.
아 이런 글을 이렇게 먹는 걸로 끝내면 좀 그런데....
그래도 너무 소중하니까 먹는 것은...
아. 하나 생각났다.
(4) 숙소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쁜 아파트를 하나 빌려 지냈다.
여러 명이 숙박하는 출장을 올 때는.
호텔/모텔 보다는 에어비앤비.
비용도 아끼고, 서로 더 친밀해지고.
(어이, 나랑 같이 지내느라 힘들었니??)
(5) 미팅
대구에 우리 협력회사가 있다.
두 군데나.
만나서 미팅도 하고,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이런 기회에 만나면 더 솔직해지고 더 유대감이 생긴다.
그대들- 안녕.
가족들- 주말 내내 비워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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