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리서치가 의심스럽다면...?!
단상 1. 정성 리서치에 대한 의심어린 눈빛을 종종 만납니다. 인터뷰나 UT나 FGD와 같은 방법들을 설명하면, 정말로 그 효과를 담보할 수 있는 게 맞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단상 2. 빅데이터라는 말도 이젠 오래되었습니다. 정량보다 더 '정량'적인, 그래서 '정량'이라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데이터 분석의 시대인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저 스스로도 논리적으로 정리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대 데이터의 시대에도 정성 리서치는 과연 의미를 가질까요?
정량적인 데이터는 상대적으로 객관성을 지닙니다.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는 사람들의 본모습은 실제 행동에서 알 수 있고, 이제는 데이터가 그 행동을 포착하고 있다고 합니다. 멋진 예술 영화에 '찜'을 누르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예술 영화보다는 코미디 영화를 더 많이 보는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요.(더읽기)
이렇게 객관적이고 명확한 정량 데이터에 비했을 때 정성 데이터*는 아리송하고 모호하고 주관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분명 정성 데이터만이 갖는 힘이 있습니다.
*리서치의 결과라는 광의의 의미로 '데이터'를 사용하겠습니다.
1. 사용자 맥락(Context)을 이해하게 해준다
제가 좋아하는 <새로운 디자인 도구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무려 '머리말'입니다. 책에서는 정성 리서치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 필수적이며, 앞으로 더욱 그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는 관점으로 이야기합니다.
경험을 위한 디자인에서는 인간을 총체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중략) 그렇다면 기존에 사용자 중심 디자인에서 사용됐던 정량적인 도구들만으로 과연 인간의 감성, 상상,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중략) 인간은 결국 객관적이 될 수 없기에, 객관적이 되기 위해 최대한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주관적인 경험과 해석을 통해 사용자를 더 잘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대부분의 제품/서비스는 더 이상 기능에만 몰두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유용성을 넘어 새로운 경험과 감성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버튼의 색과 위치를 바꾸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면, 타깃이 되는 사용자의 맥락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상황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인사이트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2. 정량 데이터는 현상을 분석하고, 정성 리서치는 욕망을 발견한다
정량 데이터를 통해서는 현상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가입율이 늘었다, 이용 시간이 늘었다 등등 수치적인 결과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반면 정성 리서치는 그 뒤에 숨은 욕망을 알게 해줍니다. 가입률이 보여주는 욕망이 '가입하고 싶다'는 아니기 때문에, '왜?'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 - 사용자들의 욕망과 동기는 정성 리서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영장 이용자들이 갑자기 줄어들었다는 건 데이터로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주변 버스 노선의 배차 간격 변경으로 인한 것이라는 건 사용자의 맥락을 직접 조사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려운 것처럼요.
정량과 정성은 'vs'가 아닌 'and'의 관계
정성 리서치에도 분명 한계는 존재합니다. 사용자가 정말 자기 자신의 욕망을 잘 알고 또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지, 또 조사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것은 아닌지 고려해야할 것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 리서치의 의미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경쟁할 서비스가 많아지고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해질수록 수치적인 Human factor를 넘어 Human actor로서의 사용자(Liam J. Bannon)가 더 중요해질 것이니까요.
결국엔 목적입니다.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혹은 발굴하고자 하는 지에 맞춰 적합한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일 뿐,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같은 방법론을 쓴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세부적인 내용이 달라지게 되기도 하구요. '실험'과 '검증'단계에서 정량과 정성 리서치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활용한다면, 둘의 장점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