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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메드에서 내가 배운 것

feat. 골프 비기너

by 보나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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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푸켓.

우아한 잠원 할머니가 되기 위해 골프를 배우러 왔다.




지난주, 시아버님 칠순을 맞이하여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우리가 선택한 리조트는 각종 스포츠들을 맘껏 선택해서 즐길 수 있고 매 끼니 음식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였다.


도착하여 하루, 이틀은 리조트의 먹을 것 마실 것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긴 천국이나 다름없구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매 끼니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니.


매일 시그니처 칵테일을 맛보고도 다른 주류들도 무제한 마실 수 있다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매 끼니를 잘 챙겨먹고 간식까지 챙겨먹으며 사육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 순간만은 그곳에서의 행복을 즐겼다.


푸켓 파라다이스 시그니쳐 음료


그러다 그 곳에서 즐길 수 있는 각종 스포츠들 목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앱을 통해 시간별 할 수 있는 액티비티 들을 미리 확인 할 수 있고 시간에 맞춰 그 장소에 가면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었다.


멋진 노후를 보내기 위해 골프는 필수이지 않은가. 골린이는 수많은 액티비티들 중에서 '비기너 골프' 를 골랐다. 조식을 먹고 준비물인 운동화를 신은 후 골프장으로 향했다. 리조트 내의 메인 레스토랑에서 골프장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넉넉히 10분 전에는 걸어가야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찍 출발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골프장 앞에서 기다렸다.


고올-프?

까만 얼굴의 외국인 선생님이 나에게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니 이 쪽으로 오라며 손짓한다.

그 곳에서 그는 키를 대강 살펴보며 반짝이는 은색 골프채를 내 손에 쥐어줬다. 생애 처음으로 들어보는 골프채는 조금 무거웠다. 애써 한손으로 멋져 보이게 들고 선생님을 따라 닭장 같은 비기너용 연습장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 골프채를 들고 준비 운동을 한 후 '굿 티쳐'가 보여주는 모습대로 따라해 본다. 그는 초보자들에게 와서 한명씩 자세를 잡아 준다. 그가 말한대로 다리를 어깨 너비로 벌리고 무릎을 구브린 후 골프채를 휘둘러 본다. 상상 속 내 모습은 '오 그래도 처음 치고는 잘하네' 였다. 왜냐하면 처음이었는데도 그 작은 골프공이 채에 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방향은 튕겨나가고, 빚 맞기도 했지만 맞았는 다는 거에 의의를 두었다.


상상 속 완벽한 내 모습과는 달리 나중에 나를 찍은 영상을 통해 본 내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생각보다 엉거주춤한 자세와 팔 모양 또한 로봇처럼 딱딱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공이 맞긴 했지만 '맞기만' 했을 뿐 골프를 친 건 아니었다.


 



굿 티쳐는 말 그대로 굿 티쳐였다. 그의 눈빛과 리액션은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믿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선생님은 눈빛과 행동 하나로 이렇게나 학생에게 자신감을 부여할 수 있는 직업이다.


나의 골프 굿 티쳐를 포함하여 클럽메드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은 G.O(Gentle Organizer)라고 불리며 리조트에 놀러온 사람들을 도와주고, 스포츠를 알려주고, 파티를 주최하며 모든 것을 한다.


이들은 정말 놀랄만큼 모든 것들에 능하며 직업 자체를 즐길 줄 안다.


요가수업을 가르칠 때는 전문 요가 선생님이 되고, 야외 수영장에서 아쿠아 짐을 가르칠 때는 열정넘치는 아쿠아짐 선생님이 된다. 무엇보다, 그 순간 그들은 여행객들과 하나가 되어 열정을 불태운다.


아쿠아짐에 이어 바로 이어지는 'Crazy Sign' 이라는 액티비티가 있는데 메인 수영장을 중심으로 둘러서서 G.O 들이 모여 신나는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한다. 그들은 직원이면서 즐기는 여행객이 된다. 그들이 신나하니 리조트 손님들도 덩달아 신나게 춤에 참여한다.

‘Foam Party'를 할 때도 누가 직원이고 손님인지 구분하지 않고 즐겁게 논다.


매일 밤 열리는 파티에서 그들은 특히 실력을 발휘한다.


전 세계인으로 이루어진 G.O들인만큼 각각 주특기가 있는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연기면 연기, 서커스면 서커스 못하는 게 없다. 그들이 꾸민 무대로 저녁 공연이 이루어진다. 또 낮 시간 동안 아이들을 미니클럽에 보내놓으면 저녁 공연에 아이들이 예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여 공연을 한다. 이건 4세-틴에이져까지 돌봐주고 교육시키는 미니클럽 G.O 들의 능력이다. (유치원 선생님보다 더 극한 직업일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 곳에서 나는 골프를 배웠지만, G.O 들의 열정과 인생을 즐긴다는 게 무엇인지도 배웠다. 한국인들이 잘 놀 줄 모른다는 게 그냥 하는 소리라 생각했는데 그 곳에서 우린 그냥 ‘부끄러움 많은 얌전이’ 였다.


푸켓 파라다이스에서 그들은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며, 모든 순간을 ‘눈치보지 않고‘(눈치가 뭐니? 남의 집 아이 이름이니?), ‘행복하게' 즐기고 있었다.


내가 20대로 돌아가서 클럽메드 G.O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해도 아마 가지 않을 거다. 지금도 부족한 용기가 20대 라고 해서 다시 생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과 인생을 즐기는 태도는 배우고 싶다. 내 인생 또한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매 순간을 그들처럼 살아보자.


까르페디엠(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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