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는 나에게 영감을 준다.
“힘든 일이 있어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지금 골프 치는 중이니까 끊어’ 하면서 냉정하게 전화를 끊지 뭐야.”
“하하하, 언니 우리도 나중에 그렇게 우아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그럼 그럼! “
회사에서 올해부터 전 직원의 리프레쉬를 위해 강제(?) 휴가제도를 시작했다. 분기에 한 번 정해진 이 날에는 특별한 일이 있는 직원을 제외하고는 모든 직원이 연차를 쓰고 쉬게 된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나도 오늘만은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연차를 썼다. 전 직원이 같이 쉬니 전화올 일도 적을 거고 온전한 ‘자유’라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돌봄 교실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은 등원이모께 일임하고, 나의 자유를 어떻게 즐길까, 그냥 평소처럼 보낼까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그때 마침 등원이모께서 말씀하신다.
“한강스타벅스가 아침에 가면 참 좋아요.” 라면서 특별한 비밀을 전수해 주셨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한강 스타벅스라 하면, 주말에 방문하면 문 밖까지 서있는 줄을 기다려야 간신히 커피를 테이크 아웃 해올 수 있는 그곳이 아니던가.
오! 아주 좋은 생각이다. 이모님께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는 얼른 씻고 아침 일찍 그곳으로 향했다.
주말에 왔을 땐 주차할 자리조차 없어서 몇 번을 뻉뺑 돌았는데 오늘은 역시 주차장이 텅텅 비어있다. 저기 앞에 방금 아이 등원을 마친 듯한 여인 3명이 활기찬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녀들도 역시 한강 스타벅스에 가는 듯하다.
역시나.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들이 셀카를 찍는 사이 그녀들을 앞질러 내가 먼저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눈앞에 펼쳐진 탁 트인 한강뷰를 보니 내 마음도 트인다. 이 스타벅스 이름이 스타벅스 웨이브인데 이름 한 번 잘 지었다. 1층 의자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물결이 울렁울렁 웨이브답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위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 가족들도 보이고 참 평화로운 아침이란 생각이 든다.
모닝세트를 주문하고, 2층은 어떤가 해서 올라가 보니 아늑하고 따뜻했다(난방이 더 빵빵했다). 그리고 그곳엔 내가 미래에 꿈꾸는 이상향의 할머니들이 너무도 평화롭게 앉아 계셨다.
우. 아. 한. 잠. 원. 할. 머. 니.
얇은 패딩을 걸치고 털모자를 쓰고 가벼운 슬리퍼를 신고 나와 독서를 하고 무언가를 쓰고 계신 할머니 두 분. 커피를 한 잔 마셨다가 가끔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셨다가 한다.
그분들을 감상하고 있는데 “보나 님 메뉴 나왔습니다” 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내려가 주문한 모닝세트를 가지러 갔다. 일하는 스타벅스 직원이 그동안 내가 갔던 어느 스타벅스 직원보다 친절했다. 이 매장의 직원들은 무슨 ‘특별한’ 교육을 받나 보다 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행복해졌다. 별거 아닌 소소한 것에 행복해지는 일상이 바로 행복 아니겠나. 이렇게 에너지 충전하고 다시 육아전선, 일 전선으로 뛰어들어야지. 나도 사람인데 살아야지.
보아하니,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오는 모양이다. 메뉴판에도 일본어, 중국어가 같이 쓰여 있었고 실제로 내가 도착하고 나서 30분 정도 후에 외국인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두 가족 정도 들어왔다.
9시에 출발하여 오길 잘했다. 조금 더 늦었더라면 이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었을 거다.
다음에는 시간이 된다면 8시에 문 열자마자 들어와서 웨이브뷰를 바라보며 힐링해야겠다. 그리고 역시 2층에 자리 잡은 건 옳은 선택이었단 생각이 든다. 여유롭고 한적하고 평화롭고 조용하고.. 음악도 적당히 알맞고..
불안이 높은 사람은 변화를 싫어해서 안정만을 추구하려 한다. 하지만 안정을 추구하다 보면 행복하지 않고 불행하다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아주 작은 소소한 변화를 하나씩 시도해 보자. 그것이 무엇이든. 집 근처가 아닌 차로 30분 거리의 스타벅스에 오는 것처럼.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은 그동안 많이 들어왔지만, 내 마음에 진정 와닿아 그 의미를 깨닫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누구도 그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는 그 인생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것이 나의 부모님도 마찬가지겠지만, 나의 자식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의 부모님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다르듯, 내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도 지금과는 많이 다를 거다. 로봇과 AI가 흔해질 수 있고 지금 내가 육아를 하며 힘든 노동들이 미래 아이들 시대에는 무척 쉬워질 수도 있다.
그러니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임에 융통성을 발휘하며 살아가보자. 그것이 나를 언젠가는 ‘우아한 잠원 할머니’로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오랜만의 휴가에 한강 스타벅스에 오니 글이 술술 써진다. 공간이 주는 힘이란 바로 이런 것.
글쓰기 이전에는 현장에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글쓰기의 희열이 있습니다.
아니 에르노
- ‘은유’ 쓰기의 말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