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후회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재커리 스콧-
얼마 전 추억의 저장소 싸이월드가 폐쇄되니 자료를 백업하라는 뉴스가 친구들 사이에서 나돌았다. 서둘러 비밀번호를 찾아 들어갔지만, 사진마다 엑스박스가 떴고 그나마 남아있는 사진도 클릭해서 저장하니 화질이 흐릿했다. 안타까움에 지난날을 떠올리던 그 순간,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아두던 추억이 내 안의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면서 그 시절의 생각과 감정까지 소환됐다.
한창 패션에 관심 많던 -그래서 학생 주임에게 혼나던- 중학생 시절, 두 살 터울인 친오빠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일본어가 전공인 오빠 덕에 일본 교환 학생이 우리 집에 와서 일주일 정도 살았다. 그런데 남고생이 아닌 여고생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トキコ(토끼코). 마치 볼 터치를 한 듯 유독 두 뺨이 발그레한 수줍음 많은 소녀였다. 일본 여자는 다 저렇게 상냥 열매를 백 개씩 먹고 예의가 바른가 싶을 정도로 친절했다. 그런 토끼꼬가 우리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내 선물까지 사서 왔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건 사쿠라(벚꽃)가 새겨진 동전 주머니와 당시 패션계를 주도하던 한 달 앞선 최신판 ノン-ノ(NON-NO, 논노) 잡지였다.
세상에! 그렇게 토끼꼬는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나와 한방을 썼다. 만화에서나 나오던 큰 리본이 달린 세일러 교복에 하얀 니삭스를 입은 일본 여고생과 한방을 쓴다니... 같이 이불을 덮고 자는 순간이 너무나 신기하고 설레어서 달빛에 드러나는 토끼꼬 얼굴을 몰래 훔쳐보다가 그녀에게 걸리곤 했다. 부끄럽고 창피하여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 그때부터 일본 패션을 향한 동경은 더 크게 자라났다. 언젠가 일본에서 마음껏 패션을 보고, 입고, 만지고, 누리며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던 회사에서 일본으로 출장을 갔고, 나는 그곳에서 고이 접어두었던 어린 시절 소망을 꺼내 비행기 모양으로 다시 접기 시작했다. 사회생활로 잠시 잊고 있던 어린 시절 다짐을 용기 내 꺼낸 것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어떻게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1년 뒤 아무 연고도 없는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또래 친구들은 25살에 유학 갔다가 귀국해서,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에는 우리 나이가 많다며 말렸지만 상관없었다. (한국 사람 대부분은 20대든 30대든 40대든 자기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다) 떠나기 전까지 나 역시 그런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한 번뿐인 내 인생,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연금술사의 저자 파울로 코엘료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따르는 순간부터 인생은 경의로 가득해진다.'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다니던 일본 학교에서 영화 촬영을 했는데, 학교 선생님들이 감독에게 나를 추천해주셨다. 덕분에 지금은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활약하는 배우 이태성씨와 같이 촬영하는 추억을 선물 받았다. 그 일이 트리거가 되어 후지 TV와 NHK 방송국에서 연기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까지 벌었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패션 사업을 했던 동업자, 그리고 현재 가장 친한 친구 모두 유학 시절에 만난 인연이다. 그 모든 선물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온 27살에는 온. 오프라인 패션 쇼핑몰 대표가 됐다. 물론 2번이나 패션 사업을 근사하게 말아먹었지만, 시련을 발판 삼아 딛고 일어서는 경험은 조금 더 삶을 긍정하는 지혜와 약간의 겸손과 명랑한 성격이 더해진 용감한 나로 만들어주었다.
세상의 소음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마주하지 못했을 내 모습이다.
한 번뿐인 인생, 원하는 것이 있다면
손을 뻗어봐야지.
만약 두려움 때문에 자꾸 미루다 보면
나중에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잘하며,
또 좋아하는지도 모르게 되거든.
인생에서 도전과 실패는 밑져야 본전이야.
설령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전보다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돼.
그거야말로 진정한 성공이지.
현인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가장 큰 공부라고 말이다. 이러한 신념은 뼛속에 박혀 본능이 될 때까지 삶에서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서였을까? 31살에는 명동 예술극장에서 공연을 보다가 문득 '나도 저 무대 위에 올라가서 놀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처럼 그해 명동 예술극장에서 진행한 직장인 오디션 최종 합격자 명단에 올랐다. 덕분에 지금은 국민 아씨 배우가 된 김태리 양과 같은 무대 위에서 공연하고 함께 놀러 다니며 MBC 9시 뉴스에도 나오는 추억을 쌓았다. 이처럼 다채로운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의 경험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나만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녹여 만든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오스카 시상 소감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 아니겠는가. 세상에는 아직 만나보지 못한 다양한 내 모습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내가 도전하고 실패했다고 해서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나를 만날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
세상의 변치 않는 진리는 그 누구도 한 번뿐인 내 인생을 나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인생의 운전대는 자기가 잡아야 하며, 자기 인생의 이야기는 누구와의 경쟁과 비교 없이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운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념과 삶의 태도야말로 나를 나답게, 나를 나로서, 소중히 대하고 품위 있게 만들어 주는 자산이라고 믿는다.
운명이 허락하여 내 나이가 50살이 되고 60살이 되더라도, 기존의 나 또는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귀엽고 재미있게 사는 인생 여정이 계속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의 엔딩 스토리는 윙크와 손 하트를 날리며 이렇게 말하는 유쾌하고 귀여운 할머니로 마침표 찍기를 소망한다.
“이 세상 재미있게 잘 놀다 가요. 이제 나는 우리가 함께 만든 추억만을 안고 고향별로 돌아갑니다. 고맙고, 사랑하는 그대들의 삶에도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그럼 모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