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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Nov 10. 2022

흑백이 되기전에

“연애랑 영화는 비슷해. 좋을수록 말이없지. 채플린처럼” 내가 오래전 만들어둔 블로그의 첫 글에 인용했던 문장이다. ‘은하해방전선’ 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블로그의 첫글에 썼을만큼 저 영화가 무척 재밌었고 저 문장이 멋지다고 생각했었던것 같다.


오늘 2021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읽는데 그 가운데 “독립영화”에 목멘 젊음들이 줄줄이 나오는 <0%를 향하여> 라는 작품이 실려 있었고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그시절 나는 소심한 “씨네키드” 였다. “나 영화 좋아해” 라고 말하기엔 어쩐지 부끄러웠지만 키노를 읽었고 영화론 수업을 들었고 독립영화관을 들락거렸다. 비디오방에서 무려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보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이없어 웃음이 나는 20대였다. “진짜 독립영화”를 찍는 술친구 몇몇이 있었고 밤새워 술마시고 영화가 어쩌니 말싸움을 하기도, 그 친구들과 종일 영화 4편을 내리 보기도 했다. 다같이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서 해변에서 나중에 유명 감독이되어 저 높은 호텔 스위트룸에 초대해달라며 흥청망청 와인을 마시고 다음날 예매해 둔 영화는 졸면서 봤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은 웅장한 서사도 화려한 스케일도 없었고 그냥 조금은 사적이고 맥락이 없어도 반짝이는 그런 영화들었는데, 그래서 나는 독립영화관을 꽤나 다녔던것 같다. ‘은하해방전선’도 그런 영화중에 하나였다. 독립영화관을 가는 행위에는 “나는 다들 좋아하는 그런 영화말고 이런것도 좋아해” 라는 치기어린 우월감 같은것도 다소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그것말고도 오래되고 낡고 사람들에게 관심받지 못하지만 버티고 있는 것에 대한 숭고함 같은것이 있었다. 그것이 “독립영화” 와 “독립영화관” 모두에게 갖는 내 존경어린 마음이었다. 내가 대구에서 즐겨찾던 영화관의 이름은 “동성아트홀” 이었는데 이름에서부터 올드함을 떨칠래야 떨칠 수 없었지만 그래서 좋았다. 낙원상가에 있던 “서울아트시네마”도 낡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멋지다고 늘 생각했었다.


놀라운건 내가 영화를 꽤 좋아했고 독립영화관을 가는 행위자체를 즐겨했다는걸 오늘 그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깨달았단 점이다. 완전히 잊고 살았다. 요즘은 씨네플렉스에 개봉된 천만영화거나 아이들이 좋아할 애니메이션이어야 내 주목을 끌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에 “동성아트홀”도 “서울아트시네마”도 문을 닫았다.


얼마전에 친구랑 술을 마셨는데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그랬다. (그는 나보다 7살이 많은데) “미나리야,  나이가 드니까 뭐 재밌는게 없어. 세상이 다 시들해”.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나에게서 영화라는게 지워진 것처럼 하나씩 더 많은 것들이 지워지면 세상이 시들해지는거겠지. 영화가 지워진 자리에 나는 뭘 채웠나. “육아, 먹고사는일, 돈” 이런것들을 채우면서 점점 무채색이 되어가는건가.


완전히 흑백이 되기전에 내가 그것을 좋아했었단 사실을 떠올리게되어 다행이다. 영화말고도 내가 “젊을 때” 즐기던 것들을 더 꺼내볼 생각이다. 이것은 다 우연히 그 짧은 소설을 만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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