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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Nov 09. 2022

할로윈은 죄가 없다

그날은 내 평생 처음으로 할로윈 축제를 즐긴 날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K귀신잔치” 포스터를 보고 진작부터 거기에 가리라 생각했다. 아이들이 아이답게 선글라스에 호박모자라는 귀여운 소품을 준비하는동안 나는 당근마켓에서 구매한 하얗고 긴 머리카락이 붙은 귀신 가면을 썼다. 그게 너무 본격적인 분장이었다는건 K귀신잔치에 도착하자마자 알았다. 사람들이 다들 나와 사진을 찍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조금 민망해 사양하기도 했지만 이내 나도 같이 사진을 찍고 찍히며 즐겁고 신이났다. 짜릿한 일탈의 기분이 들었고 분장한 사람들과는 처음보는 사이지만 친근감도 느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참사 소식을 접하고 나도 모르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괜히 할로윈이니 뭐니 까불어서…” 였다. 이어 전날 밤 포스팅한 sns 사진을 삭제 했다. 안타까움인지 미안함인지 모를 감정을 애써 덮고 되도록이면 뉴스도 sns도 보지않고 한동안 지냈다.


그걸 다시 정확히 들여다 본 것은 미리 약속해둔 상담날이 되어서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할로윈 축제를 즐긴것과 그날의 참사와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내가 할로윈을 즐긴것이 잘못된것 같다” 는 기분이 든것에 대해 말해보자고 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건 분명 “죄책감” 이었다. 직접적 책임이 있는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경상도 특유의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부모님으로부터 “까불지마라” 라는 말을 줄곧 들으며 자랐다. 어른스럽고 진중하고 조용한 아이는 칭찬을 받았지만 시끄럽거나 까불대거나 발랄하면 혼이났다. 주체성이라곤 없던 나는 그 분위기를 그대로 흡수하며 자라 그 흔한 클럽한번 제대로 가본적 없이 20대를 보냈다. 생애 처음으로 할로윈 축제를 즐긴 그날 내가 느낀 일탈의 감정은 아주 어릴적부터 나를 옭아맨 무엇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이었던것 같다. 그런데 마침 그날 참사가 있었고 다시 나는 어린시절 까불다 혼난 아이가 되어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할로윈을 즐겼던 그날의 나는 참 행복했다. 가족과 친구와 같이 많이 웃었고 처음보는 사람들과도 어울려 웃고 사진을 남겼다. 그날 그자리에 있던 모두가 행복했을 것이다. 우연히 생존자가 쓴 글에서 “그리움” 이란 단어를 봤다. 그날 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그리운 마음이 자꾸만 든다고 했다. 정말 나도 그랬다. 그날 박물관에서 만나 사진을 같이 찍었던 친구들은 무사히 집에 갔을까. 혹시나 이태원으로 넘어가진 않았을까. 다치진 않았을까. 이게 무슨 오지랖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연결감이었다. 무언가 같은것을 즐기는 사람들간의 연결감. 축제란 그런것이다. 함께 다 같이 즐거운것. 축제를 축제답게 즐기는것, 그건 잘못이 아니다.


“왜 그렇게 복잡한곳에 갔냐” “사람이 많이 올줄 알고도 찾아간게 잘못” “할로윈이 문제” 이라는 말은 그래서 다 틀렸다. 사람이 아무리 많았어도, 할로윈 축제여도 우리 모두는 안전히 살아돌아올 수 있어야만 했다.


나는 앞으로 많은 날들을 사람들과 함께 웃고 즐기며 살고싶다. 조용하고 진중하기보단 시끄럽고 까불대고 싶고 혼자가 아니라 북적북적 많은 사람들과 즐겁고 싶다. 축제는 축제답게 즐기고 싶다. 내년에도 할로윈엔 즐겁고 싶다. 할로윈은 죄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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