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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Feb 09. 2016

2017년, 동경도서전에 갈 겁니다

서른, 일본어를 시작하다 01 프롤로그


나는 서른이다. 


1987년에 태어났고 토익 점수는 대학교 1학년 때 교필 과목 ‘영어 문법’ 수료를 위해 응시한 모의토익 점수 225점이 전부이다. 물론 나는 이런 점수를 받고도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고(참고로 나는 06학번이다. 내가 졸업한 뒤 바로 다음 해, 졸업 필수요건에 토익 점수가 포함됐다.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박봉이지만 그럭저럭 직장생활도 하고 있다. 참고로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출판사다. 내가 출판사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적고 있는 이 출사표의 최종 목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이유는 조금 뒤에 밝히겠다. 


제목은 ‘시작’이라고 썼지만, 내 일본어 실력이 완전히 저질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이래 봬도 내 일본어 공부력은 어마 무지하다. 중학교 1학년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자발적으로’ 일본어를 택해 비교적 어린 나이에 최초로 히라가나를 접했으며, 대학교 때는 영어 교재 한 권 사보지 않은 주제에 일어 회화 학원을 한 달이나 개근했으며, 무려 대학교 3학년 때는 두 달 동안 어학연수라는 것을 동경 학예대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일본어 엘리트라고 해도 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본어 실력은 이 형용사와 나 형용사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 ‘나이’를 붙이면 부정형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정도, 딱 거기까지다. 사실, 나의 저런 화려한(?) 일본어 공부의 역사와는 배치되는 이 역설적인 나의 한심한 일본어 실력은 나만의 독특하고 특이한 특이 사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히라가나를 외우고 일본어 단어를 메모장에 적고 이제 막 벗어나 마스 형을 벗어나 떼 형에 진입하는 수많은 일본어 공부 비기너들이, 짧으면 하루 이틀 길면 한두 달 간헐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며 전혀 늘지 않는 일본어 실력에 좌절하며 책을 덮었던 경험과 나의 경험이 동일한 맥락 안에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일본어를 잘 하고 싶다. 일본 문화, 애니메이션, 영화 따위를 좋아하고 한국어의 문법과 닮은 일본어의 문법 체계에 호감을 갖고 있다. 심지어 만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고 쉽게 도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외우고 쓰고 읽어도 도무지 실력이 상승한다는 그 짜릿한 기분을 느끼지 못했으며 그래서 금세 지치고 금세 공부를 접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이상한 계기에 의해 다시 책을 펼쳤다가 역시 금세 그만뒀다. 나는 이렇게 평생 공부의 높은 경지를 경험하지 못하고, 뭔가 전문가나 학자들이 득실댈 것 같은 높은 곳의 공기를 마셔보지도 못하고 그냥 이렇게 하릴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여기서 어떤 특별한 계기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짝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 만약 6개월 안에 JPT 점수 800점을 맞는다면 당신과 연애를 생각해보겠어요.” 이런 폭력적인 말을 했다거나 친구와 10만 원 빵 내기를 건 것도 아니다. 그냥 그동안의 변덕스러웠던 어떤 수많은 소박한 결심처럼 그냥 어느 순간 일본어 공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동안 묵혀 뒀던 수많은 일본어 교재를 둘러봤다. 마침 단어를 외울 이면지도 넉넉히 있었고 지난 회사에서 들고 온 연필이며 볼펜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칼퇴근도  문제없는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시간도 넉넉했다. 게다가 난 여친도 없는 홀가분한 존재.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래도 막상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니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럴듯한 목표 하나쯤은 세워둬야 하지 않을까? 앞서 나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곳인데, 당연히 우리 출판사는 외서 특히 일본어권 외서도 많이 번역 출판한다. 일본어권 책을 내려면 일단 일본에서 어떤 책이 나오는지 어떤 책이 인기가 많은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정보를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이른바 ‘저작권 거래’를 하는 것이 도서전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도서전은 ‘동경도서전’이다.


그렇다. 이 공부의 목표는 동경도서전이다. 도서전에 참여해 일본의 출판사 관계자들과, 일본의 에이전시 직원들과 무리 없이 소통해 결국 일본어권 도서의 저작권을 계약해내는 일! 동경도서전은 매해 7월 여름에 열린다. 2016년 도서전은 이제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2017년 도서전은 어떨까? 내년 여름이라면, 열심히 공부해서 단순 참관 목적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참석할 수 있을까? 


허무맹랑한 목표인 줄 알지만 그래도 한 번 내뱉은 이상 도전해보련다. 이번 공부가 지난 공부처럼 한두 달만에 무도 못 썰고 중도하차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공개 선언을 해버렸으니 그것보다는  오래갈 것이다. 2017년 7월, 나리타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 당장 시작하련다.
나이 서른, 일본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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