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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Dec 08. 2015

삽질을 하고 싶다

두 개의 노동





우리는 몸을 머리보다 아래에 두고 있다. 그렇기에 육체노동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몸을 거추장스러운 부속물로 여기고 있다. 당연히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그저 하나의 도구로 대할 뿐이다.
-이원석, <공부란 무엇인가>, 40쪽







지난주, 정확히 무슨 요일 몇 시 몇 분에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뒤돌아보니 내 마음에 두 개의 다짐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다짐은 삽질이라는 의미에서 동류였다.  



첫 번째 다짐은 노동에 대한 것이다. 봉사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그저 내 한 몸을 써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거창한 가치 말고, 그냥 이 물건을 저 자리로 옮기는 일이랄까. 내 몸을 써서, 내 땀을 흘려서, 내 손과 발을 움직여서 무언가가 바뀌는 것을 보고 싶다. 말 그대로 노동이다. 회사라는 경계 안에서가 아니라, 그 밖에서. 그것이 봉사가 될 수도 있고, 두 번째 직업이 될 수도 있고, 부업이 될 수도 있고, 집안일이 될 수도 있다. 어떤 형태든 상관은 없다. 다만 내가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 무언가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지금 '노동자'의 신분이다. 누군가는 사원이라고 부르며 정부에서는 나를 피고용자로 분류한다. 실제로 나는 노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손가락 10개를 민첩하게 움직여 컴퓨터 cpu 안에서 텍스트를 이리저리 조립하고 해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이런 것 말고 나의 온몸을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도록 놀리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동이든 봉사든 그 무언가를 하고 싶다. 회사 안에 그런 일의 영역이 있을까? 하지만 회사에서는 하고 싶지 않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어떤 만족과 몸의 깨달음을 위한 노동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과연 내 주변에 그런 공간이 남아 있을까? 이런 노동을 허하는 공간이.   







두 번째 다짐은 좀 더 정치적인 노동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송곳>이었다. 웹툰을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다른 세상, 다른 차원의 이야기, 만화의 소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현우와 안내상이라는 실제 존재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노조의 당위와 곤란에 대해 좀 더 실질적으로 접하게 된 뒤에는 노조도 나의 세상, 나의 차원에 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적 상상력이 포함된 비현실적인 투쟁이겠지만, 적어도 노조 활동을 하며 부닥칠 수 있는 몇 가지 '예정된 참사'를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었다. 매라는 것도 내 앞의 친구가 어떻게 맞는지를 보고 나면 약간의 요령이나마 터득할 수 있지 않겠는가(물론 그만큼 공포는 배가 되지만).



좀 더 결정적인 계기는 책이었다. <출판, 노동, 목소리>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장 내가 속한 세계인 출판 노동계에 유독 노조라는 것이 희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노조라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겠음을, 그리고 그 노조라는 조직 안에 내가 속하면 안 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노동자로 살면서 노조라는 조직에 가입해 한 번쯤 투쟁이든 활동이든 뭐가 되었든 노조원으로서 몇 년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삶 아니냐고 스스로 묻게 되었다. 설령 나중에 후회를 하더라도 말이다. 



같은 후회라면 차라리 노조 활동을 하다가 하고 싶다. 아마 이 삽질은 앞의 삽질보다는 좀 더 정치적이고 고된 행위일 것이다. 차라리 내 한몸 놀려서 팔에 알도 배기고 며칠 몸살이 나는 것쯤은 각오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영혼이 파괴되는' 감정소모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삽질을 올해 안에, 아니 내년 안에라도 시작할 수 있을까? 내 안 어딘가에 꽂혀 있는 녹슨 삽이라도 뽑을 수가 있을까?




함께 삽질을 할 누군가가 옆에 있어도 좋겠다.







# 메인에 올린 사진은 공효진 주연의 <미스 홍당무> 중 일부. 아무 생각 없이 본 영화였는데 속으로 '심봤다'를 외쳤다. 배우들의 호연도 좋았지만, 감독이 다룬 '찌질하고 궁상맞은 대다수의 인생'을 마주해 무척 기뻐했다. 나중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꼭 리뷰를 남기고 싶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997042


#사진출처

1. http://criticize.tistory.com/122

2. http://bunker1.ddanzi.com/?mid=ddanziDoctu&sort_index=blamed_count&order_type=asc&page=275&document_srl=1070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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