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일팔 Feb 10. 2016

다이어트의 진짜 적

뱃살보다 무력한 두 눈





살을 빼기 위해선 살을 빼겠다는 생각을 잊어야 한다. 


제육볶음에 실컷 밥을 비벼먹고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를 앉으면, 오후의 지루한 시간보다 더 피하고 싶은 불쾌한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 복부를 짓누르는 포만감이라는 녀석이다. 의자에 앉아 배를 슬쩍 만져보면 안으로부터 정직하게 차오른 팽팽한 복부가 느껴진다. 이런 치부를 두툼한 옷으로 가릴 수 있어 오히려 미친 한파가 감사할 지경. 하지만 온도가 올라가는 계절이 오면 나의 복부는 만인에게 노출될 것이다. 고로 시즌이 오기 전에 나는 살을 빼야 한다. 



이런 내 고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오랜 벗 '뱃살이'는 의자에 앉은 나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고 있다. 지독한 놈이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똥을 싸다가도 이 살인 미소에 하루 기분이 잡친다. 재밌는 책을 발견한 기쁨도, 맛있는 음식을 대면한 행복도, 곧 주말이 온다면 즐거움도 이놈의 뱃살 때문에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 내가 하루에도 수 차례 기분이 잡치는 이유는 뱃살 때문이 아니다. 진범은 뱃살을 증오하고 경멸하고 두려워하는 나의 마음이다. 이 울적한 심정이 모든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것들을 박멸했다. 구축했다. 



이 소년의 허리는 마치 "뱃살이 뭐에요?"라고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또 사라지는 것이 있다. 바로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다. 사람들은 이렇게 믿는다. 적에 대한 강한 증오와 적개심이 적을 무찌르는 원동력이 된다고. 북한을 죽이기 위해선 북한인을 증오해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주적 관념은 사람을 목표를 향해 부단히 노력하게 만든다. 나의 뱃살에 대한 증오는 분명 나의 뱃살을 쳐부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것이다. 뱃살은 내 적이니까.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런 적개심에 부르르 몸을 떠다가도 이내 내 전신을 휘감는 것은 처참한 무력감이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그렇게 조절했는데도, 그렇게 뜀박질을 했는데도 안 되는구나. 다량의 지방과 소량의 단백질과 기타 알 수 없는 성분으로 이루어진 이 살색 덩어리는 도무지 요지부동이구나. 인쇄된 활자처럼 내 삶에 착 달라붙어 이젠 나의 존재 그 자체가 되어버렸구나. 그렇게 낙담하고 마는 것이다. 



언제나 좌절감은 분노를 압도한다. 


‘언제나’ 대신 ‘반드시’라는 부사를 붙여도 무방하다. 그 압도의 결과는 물론 무기력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축 처진 뱃살을 보고도 웃어넘길 수 있어야 한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야 다이어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이 복구된다. 다이어트의 적은 무자비한 식탐이 아니다. 살은 더더욱 아니다. 진짜 적은 내 몸에 덕지덕지 붙은 살덩어리를 목도한 채 너무나도 쉽게 좌절하는 두 눈이다. 여유를 상실한 조바심이다.







*타이틀 사진 출처

http://www.starseoultv.com/news/articleView.html?idxno=370402


*사진 출처

1. http://www.instiz.net/bbs/list.php?id=pt&no=1286137&page=12&page_num=17

작가의 이전글 2017년, 동경도서전에 갈 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