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일팔 Jul 03. 2016

왜 '남자'대학은 없나요?



세상 천지에 한심하고 쓸모없는 질문이 얼마나 많겠느냐마는,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이화여대, 숙명여대, 동덕여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등등 여자만 있는 대학은 숱하게 많은데, 왜 남자만 있는 대학, 즉 男大는 없을까? 여자대학은 만들면서 남자대학은 만들어주지 않는 이 더러운 역차별의 나라, 라고 정부를 까겠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하찮은 질문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냥 궁금해서 던져본 질문이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역시 나온다, 놀랍다!)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진 이가 오래전에 있었고(2002년), 그에 대한 답변도 달려 있었다.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보다 많아서 그들을 위한 대학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 (진짜?)

남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여자는 상대적으로 덜 싫어한다. (응?)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대학은 남성의 전유물이었으므로 그러한 성 불평등을 깨기 위해 여대를 만들었다. (그나마 이게 가장 그럴듯하다!)


아무튼 내가 네이버에서 본 것들은 논리력이 다소 떨어지는 ‘이상한’ 이유들이었고 나는 좀 더 짱구를 굴려보기로 했다. 대체 왜 여대는 있는데 남대는 없을까?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아시아, 미국 등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현상이 아닌가. 이 전지국적(?) 현상에는 뭔가 엄청난 젠더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는, 우스꽝스러운 결론에 다다르던 찰나, 나는 질문이 조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왜 남자대학은 없을까?’가 아니라 여자대학은 왜 있어야 하지?’가 더 맞는 질문이 아닐까?





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혹은 언어를 둘러싼 관습과 습관)에 생각보다 많은 것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한 사회의 공통된 가치관이나 세계관 같은 것들? 그러니까 우리 주변의 언어를 잘 살펴보면 우리가 있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가령 한국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맞나?) ‘여성가족부’라는 정부부처의 명칭을 보자. ‘남성회사부’라는 부처는 없어도 ‘여성가족부’는 매우 당연하단 듯이 정부 조직도에 포함되어 있다. ‘남권’이라는 말은 어색해도 (마치 무슨 권법의 이름 같다) '여권'이라는 말은 안 어색하다. ‘남성주의’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여성주의’라는 말은 종종 들어봤다. 

언어는 항상 약자를 바라본다. 여기서 ‘바라본다’라는 동사의 의미는 능동적으로 무엇인가를 ‘비추다’라는 뜻이 아니라, 예를 들자면 식물이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거나 자석이 상극의 방향으로 몸을 트는 것처럼 어떤 법칙에 의해 수동적으로 종속된다는 의미이다. 즉, 우리는 어떤 소수의 것, 가령 세력이 미약하고 권리가 박약한 무엇인가를 지칭할 때면 언어를 필요로 하는데, 그때의 언어란 그 소수 당사자들이 자신들을 자칭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가 아닌 자들(즉 다수자)에 의해 지칭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름 중 다수를 뜻하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왜냐하면 힘없고 약한 이들은 다수에게 이름을 붙일 수 없으므로그들이 붙이는 이름은 이미 갈등이 폭발해 ‘적대’를 가득 품게 된 언어이다. 강자와 약자의 구도는 현실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이름을 부르는 자’와 ‘그 이름을 듣는 자’로 현실에 체현될 뿐이다. 



자, 다시 여대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왜 여대만 있고 남대는 존재하지 않는가? 참, 질문을 바꿨지. "왜 남대는 없는데 여대는 존재하는가?" 너무 간단한 답을 빙빙 돌려 대답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 그것은 여대로 상징되는 여성의 힘이 남성의 그것보다 미약하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영향력과 권리가 ‘여대’라는 상징체로 축약하고 구획할 수 있을 정도로 박약하기 때문이다. 여자대학이라는 허울좋은 울타리로 여성의 모든 권리를 몰아넣고, 그것이 마치 권리와 혜택인 것처럼 오도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가 기울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남대는 없나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정말 남대가 없다고? 그럴 리가. 우리나라의, 아니 이 세상의 대학은 모두 남대 아니던가. 총장도 남자고, 교수도 남자고, 시간강사도 남자고, 대학원생도 남자고, 조교도 남자고, 학생도 남자다. 그래서 나는 ‘왜 남대는 없나요’라는 질문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한심하고 쓸모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 불평등의 문제는이제 해결 가능하거나 개선의 여지가 보이는 문제가 아니라이 세계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린 극복 불가능한 전제가 되어버린 것 같기 때문에그 불편한 진실을 쓸데없이 되새김질하는 것 같기에 이 질문은 참으로 무가치하다.



작가의 이전글 다이어트의 진짜 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