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큐브세대의 미래 01
개천의 용: 전세가 사라진다는 것은 매달 버는 돈의 상당 비율을 월세로 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월세를 내다 보면 돈을 모을 수 없고, 돈을 모으지 못하면 집을 사지 못한다. 인생의 적절한 타이밍에 주택, 특히 아파트를 사고, 그 가격 상승을 바탕으로 평수를 넓혀나가는 것, 그것이 이른바 ‘개천의 용’이라 불리는 한국형 신흥 중산층의 성장 과정이었다.-22세기 사어 수집가, 191쪽
0.
자신의 보잘 것 없는 부의 양을 확인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카라멜마키아또에 500원짜리 휘핑크림을 얹을지 말지를 고민할 때? 오랜만에 만난 후배 녀석에게 사줄 밥 한 끼의 메뉴를 가격으로 저울질할 때? 내가 지출해야 할 금액의 규모를 지불 전에 확인하고 선택하는 순간이야말로 내 경제관념의 밑바닥이 보이는 순간이다. 그 결과가 치졸하든 쿨하든, 아무튼 우리는 돈을 쓸 때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내가 딛고 서 있는 공간의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 내가 쓰는 돈이 나의 경제력을 증명한다. 그렇다고 믿었다. 며칠 전 옥수동 현대아파트 903호에 들어가 베란다 창문으로 웅장하게 드러난 한강 전경을 보기 전까진.
1.
돈으로 가득 채워진 이 세상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저 집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거하는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에서 보이는 풍경이 나의 위치를 결정한다. 지난 토요일, 옥수동에 있는 고모 댁을 방문했다. 부모님이 이혼한 지 근 20년이 넘었으므로, 아버지의 누나인 고모 댁에 방문할 일은 2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이 맞는다면) 한강변에 위치한 이 오래된 아파트에 방문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옥수동 현대 아파트는 1991년에 지어진 아파트다. 고모는 당시 1억 원이 넘는 프리미엄을 얹어 이 집의 분양권을 얻었다. 당시 검사로 일하시던 작은 아버지와 한미은행의 부총재였던 큰아버지의 인맥이 동원된 전리품이었다고 고모는 귀띔했다. 아무튼 최초 입주자로 입주한 고모는 1991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25년간 이 아파트에서 사셨다. 그 사이 일자리가 없어 거주지가 변변치 않았던 아버지가 잠시 머물기도 했고, 지금은 99세의 고모의 어머니(내겐 친할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다. 방은 총 4개이고 주방과 거실은 미닫이문으로 분리되어 있다. 화장실은 거실에 하나가 있었고 아마 큰방에도 하나가 더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집을 보러온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고모 댁의 주거 공간의 조건에 대해선 많은 것을 읽진 못했다. 그저 굽이치는 한강의 수맥을 가까이 둔, 이름 모를 산을 깎아 만든 것처럼 거대한 언덕 위에 빽빽하게 들어선 이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풍기는 묘한 냄새(이것을 중산층의 냄새라고 표현한다면 너무 좌파적인 표현일까?)에 흠뻑 취했을 뿐이다.
나의 아버지의 누나, 즉 내게는 고모가 되는 이 70대의 노파가 사망한다면 이 집의 소유권은 누구에게로 돌아갈까? 질문이 너무 원색적인가? 그럼 이 질문은 어떠한가. 소유권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고모의 유언장에는 과연 누구의 이름이 적혀 있을까? 조금 상스럽지만, 나는 그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집을 나오는 순간까지 내 머릿속에는 온통 그런 질문들밖에는 없었다. 만약 내가 그 집을 얻게 된다면, 분명 그 ‘사건’은 내 인생을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조금 더 안정적인 지대로 올려놓아 줄 터였다.
2.
99세의 나의 친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고모는 자신의 어머니가 거의 하루 종일 누워 있다고 말씀하셨다. 식사는 하루 한 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모든 욕심과 번뇌가 빠져나가버린 듯 할머니의 몸은 작고 가벼웠다. 얼마 남지 않은 흰머리는 곱게 빗어 넘겨져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 평범하게 늙으면 그 자의 노년은 어떻게 되는지, 인간은 결국 날 것의 상태로 태어나 날 것의 상태로 회귀함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이혼한, 그러니까 이 99세의 할머니의 아들과 이혼한 어머니는 자신이 이혼한 남편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할까?
부부의 불행했던 몇 년 남짓의 결혼 생활과 그 과정에서 겪었던 고부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갈등과 언어폭력과 분쟁의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던 나로서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어머니의 극적인 상봉이 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서로 어떤 표정을 지을지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조금 걱정도 되었다. 실제로 어머니는 자신의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욕을 하거나 해코지를 하면 어쩌느냐고 걱정도 하셨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너무 늙어버렸다. 아무튼 둘의 만남은 꽤나 감동적이었다. 나는 모른 척 했다. 어머니는 울먹였고 금방 울음을 그쳤다.
3.
고모 댁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한강 너머의 풍경을 쳐다봤다. 할머니는 그곳이 마포라고 했다. 훤히 내다보이는 그 경치가 참 좋다고 했다. 당신께서 지난 수십 년간 여덟 자식을 건사하며 그토록 독하게 건사했던 그 부와 자산 그리고 그로 인한 풍경에 대한 감상을, 그토록 아기 같은 표정으로,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간 듯 한 모습으로 이야기하셔서 나는 조금 놀랐다.
나는 그녀의 눈을 따라 마포를 봤다. 내가 잠시 서 있는 이 공간, 그리고 여기서 내 눈에 들어오는 저 공간 모두 내 것이 나이었고 앞으로도 내 것이 아닐 것이었다. 현관을 나서서 차에 탔다. 고속도로를 타고 김포로 내달렸다.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놀랐다. 집에 돌아와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이다. 내다볼까? 하지만 예상할 수 있다. 앞 동의 외관이 보일 뿐이다. 시선을 조금 오른쪽으로 돌리면, 그러니까 반 발자국 정도 왼쪽으로 이동해 몸을 틀면, 네 개의 아파트 단지를 구획하는 작은 사거리와 버스 정류장 따위가 보일 뿐이다. 우리 집 베란다는 14층에 있지만 거기서 보이는 광경은 그리 넓지 않다.
4.
얼마 전에 <확률가족>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베이비부머세대의 부모를 둔 소위 ‘큐브세대’들의 자필 연대기를 모은 책이다. 그들의 부모가 어떻게 부를 획득하였는지, 혹은 부를 상실했는지, 그렇게 모이고 흩어진 부가 아파트 단지 개발에 어떻게 유입되었고, 어느 기민한 부모들이 자녀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 불철주야 성실히 돈을 굴리고 땅을 사들이고 아파트 분양권을 쟁취해 역사상 마지막 성취를 이뤄냈는지 담담하게 그린 책이다. 나는 이번 고모 댁 방문을 계기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파트 창으로 마포 일대를 내려다보며 나와 부모님의 연대기를 적기로 마음먹었다. 이름을 붙인다면 무엇이 될까. 부모님에게는 자가로 된 부동산은 하나도 없으며 그걸 바라고 살아온 분들도 아니었므로 ‘부의 연대기’는 뭔가 어색하다. 아마 그 글의 제목은 그 글이 다 지어질 즈음 정해질 것 같다. 아무래도 ‘가난의 연대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