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사유화에 대하여
회사는 끊임없이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유화하려고 한다. 사장은 김장 때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 배추를 옮기게 하고,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자신의 업무를 부과하며, 기업은 직원들에게 조금씩 더 많은 업무와 책임을 부여한다. ‘사유화’ 즉 남의 것(노동력)을 내 것으로 취하려는 경향은 한국의 노동환경을 위태롭게 만드는 가장 극렬한 악이다. 하지만 일터에서는 이 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노동자에 의한 일의 사유화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회사의 공식 블로그를 운영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 블로그 운영의 목적은 회사의 브랜드를 알리고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고 새로 나온 상품의 상세 정보를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다. 사실 이 목적만 달성되면 나의 업무를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업무로 인해 야근을 하고, 아주 종종 점심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어떤 포스트를 작성하기 위해 정성을 기울인다. 성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포스트 글자의 서체라든가 크기 따위에 온 정신을 집중해 몇번을 고쳐가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노동자는 기업이 지정해준 몇가지 업무성과의 조건에 정확히 부합해 움직이지만은 않는다. 즉 우리는 언제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처리를 하지는 않는다.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기업이 정한 기준에 따른 가장 높은 효율을 내는 업무방식을 따를 수도 있지만, 종종 우리는 매우 비효율적인 방식을 따르기도 한다. 가령 나는 네 시간이라는 노동시간 동안 비교적 간단히 작성할 수 있는 블로그 포스팅 네 개를 작성하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그 기업으로부터 평가를 받고 돈을 받을 노동자 입장에서도 훨씬 유리한 행위이지만, 나는 기어코 네 시간 동안 단 한개의 포스팅에 집중하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포스트를 보며 아무런 대가 없는 만족감에 휩싸인다. 심지어 나는 정해진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는 정해진 업무를 다 하기도 전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일의 사유화'를 좀더 풀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부여한 ‘일’을 나의 ‘일’로 치환하는 것. 대외적으로 이 ‘일’은 물론 회사의 일, 즉 회사 직원으로서의 나의 일이지만, 정작 그 일을 수행하는 내게 그 일은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로서의 일이 아니라, 다양한 취향과 경험을 갖고 있는 매우 개인적인 존재로서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출판사에 재직 중인 A는 평소 사모하던 저자 B를 향해 출간을 제안하고 만남을 주선할 수 있다. 겉으로는 물론 소속 출판사의 업무와 관련한 것으로 둘러댈 수도 있지만 내심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자본이 노동력을 탈취해 자신의 이익에 복무시키듯, 노동자 역시 회사의 네임밸류나 어떤 시스템, 인맥 따위를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회사의 일은 내 일이 된다. 사유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일을 사유화하지 않고서는, 즉 회사가 내게 부여한 일을 나의 삶이나 가치관 같은 어떤 ‘퍼스널리티’ 안에 집어넣지 않고서는 그 일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주문하는 회사의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노동자의 자아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나는 회사에 소속된 일개 노동자가 아니야!
나는 내 일을 주체적으로 찾아내서 실천하는 프로라고!
아주 가볍게는, 사무공간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꾸미거나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물건을 갖다 놓는 식으로 공간으로 구현된 일을 개인화한다. 좀 더 깊게는,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이 길게는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자 자기를 계발하는 과정이 되리라는 명확한 목표의식을 부여할 수도 있다. 이때부터 일은 회사가 요구하거나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는 타자적 일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성취와 직결된 자발적 일이 된다. 즉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일이 되는 것이다. 완벽한 일의 사유화다. 나는 이것이 적어도 작금의 자본주의 하에서의 매몰된 노동의 위상을 복원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업무의 패턴(혹은 업무를 바라보는 노동자의 태도)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편집할 때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그것을 모은 사전을 나만의 형식으로 만드는 것, 회사의 단순한 거래처를 나의 인맥이라고 인식하고 대하는 것, 이벤트 페이지를 디자인하기 위해 타사의 페이지를 모니터링할 때 참고할 만한 디자인을 따로 모아두는 것, 좋은 저자를 발견하면 회사 직원이 아닌 독자이자 미래의 기획자로서 메일을 보내는 것 등등. 모든 것은 회사의 일에서 개인의 일로 바뀔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가뜩이나 회사의 일도 벅찬 피곤한 노동자에게 자기착취라는 이중의 고충을 안기는 패착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위에서 언급한 신자유주의시대 하에서 자기계발과 업무평가라는 내외부의 이중의 억압에 시달리는 노동자에겐 약보다는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하지만 나는 자본(기업)과 노동(노동자)의 상생이 불가능한 세상에서, 그것의 불가능성이 여실히 증명된 세상에서, 기어코 노동자가 살아남아야 한다면, 나는 일의 사유화가 ‘투쟁’이라는 외적인 활동과 병행해야 할 거의 유일한 내적인 활동이 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