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서울국제도서전 후기
2023 서도전에는 수요일 개막날과 일요일 폐막날 이틀 방문했습니다. 개막날에는 제가 담당하는 책의 저자 사인회가 있어서 3시간 정도 머물며 행사를 지원했고, 마지막 날에는 종일 근무를 했습니다. 마지막 날 근무는 물론 유급이었습니다.
광명에 있는 서점 읽을마음에서 나와 ‘Birth Date With A Book’이라는 블라인드책을 선보였습니다. 유유 부스에서도 책의 표지를 시크릿 커버로 가려 호기심을 자아냈는데, 이렇게 책의 제목과 표지를 가려 마치 ‘럭키 드로우’처럼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해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이 꽤나 보편화된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Birth Date With A Book’가 진열된 서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자신이 태어난 날짜가 적힌 블라인드책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갔을 때 아직 폐막 전이었음에도 해당 부스에는 ‘상품 조기 소진으로 인해 조기퇴근한다’는 메시지가 붙은 채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민음사에서는 스크래치 티켓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했다고 하고, 서울 이데아라는 소설을 쓴 작가 이우님은 딱지치기를 통해 자신을 이기면 책을 공짜로 선물해주고, 자신이 이기면 독자가 책을 사야 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모두 가치와 돈의 등가교환을 고의적으로 왜곡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일말의 기대감을 품게 하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도 부스를 차렸는데 질 좋은(?) 볼펜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하나 더 받으려고 했는데 깜빡했네요. 수십 년 전 이 땅에 처음으로 서지 분류 체계가 도입되었을 때 사용되었던 ‘서가목록 서랍’(?)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손바닥 크기 만한 작은 서랍 수십 개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작은 목재 장이었는데 그 서랍을 여니 특정한 기준으로 분류된 서지 정보가 적힌 종이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습니다. 서랍에는 ‘21 1809-354’ 따위의 숫자들이 적혀 있었는데, 신기했습니다. 수많은 단어로 구성된 책이라는 콘텐츠를 다시 0~9까지의 10개의 숫자로 일원화 분류한다는 사실 자체가 위대해 보였달까요. 1970년 3월 태어나 반세기 넘도록 간행 중인 샘터 전시도 둘러보았습니다. 과호를 나눠주는 것 같았는데 저는 받지 않았습니다.
푸른숲 출판사는 아예 부스를 편집팀, 디자인팀, 마케팅팀으로 나눠 출판사를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꾸몄습니다. 이곳에 오는 사람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예비 출판인이라는 점을 노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예비 출판인이 아니었음에도, 익명 동료가 디자이너에게 발주한 표지 디자인 의뢰서를 보며, 그리고 그가 빨간펜으로 교정한 교정지를 보며 저도 모르게 실실 웃게 되었습니다. 푸른숲에서 이번 행사에서 가장 민 책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이었는데 그 책의 제목이 인간 사용 설명서가 될 뻔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이곳에 티셔츠 한 장과 CMYK 북마크를 하나 샀습니다. (출판사별 시그니처 한정판 티셔츠를 모으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푸른숲 티셔츠밖에 못 샀네요. 읻다에서는 티셔츠를 팔지 않고 랜덤 굿즈로 내놓았고, 이슬아 작가의 헤엄출판사에서는 6만 원대의 고가로 판매 중이었습니다.) 한국 그림책 작가들의 프로젝트 그룹 ‘바캉스 프로젝트’ 부스도 엄청나게 눈에 띄었습니다. 다양한 그림책을 보따리에 담아 묶음 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폐막날에는 동이 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저는 책 제목을 마치 음식 메뉴처럼 적어놓은 주문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자가 직접 책을 골라 점원에게 구매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서에 체크해 점원에게 건네주면 점원이 책을 찾아 독자에게 건네주는 행위, 를 머릿속에 그려보았습니다.
지하철연구자 전현우 씨의 오송역이라는 책을 출간한 이김출판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케터 한 분과 출판사를 운영한다던 이송찬 에디터와 명함도 주고받았습니다. 굉장히 독특한 책들을 20종 가까이 내오며 수년째 생존 중인 이김출판사의 비결(?)을 묻고 싶었으나 다음으로 미루고 부스를 빠져나왔습니다. 디자인 서적을 출간하는 활자공간 부스에서 2만 2000원짜리 폰트 책을 구입했습니다. 다소 충동적으로 구매한 것 같아 후회 중이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디자이너로 일하는 김민기 씨의 명함을 받았습니다. 독립출판 부스에서 6699프레스 이재영님도 만났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출판사인데요. 몇 권 남지 않은 서울의 공원들을 살까 했는데 정가가 너무 비싸서 단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해당 책이 완전히 절판되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무척 후회 중입니다(ㄴㅇㄹㄶㄴ). 두성종이 부스에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벼운 내지용 종이를 구경했습니다. 샘플로 만들어진 책을 들어보았는데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요. 영업팀 직원분의 명함도 받았습니다. 플랫폼피에 입주한 창작자들이 연합부스를 냈는데 그중 한 팀인 스튜디오하프보틀의 조현익 디자이너님과 대화를 조금 나누었습니다. 전시된 작업물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가갔지요. 알고 보니 전국투표전도 2018을 기획하고 작업하신 분이었습니다. 이밖에도 대단히 사회 참여적인 디자인 작업을 해오셨습니다. 일상의실천의 권준호 디자이너를 연상케 하더군요. 단행본 형식을 벗어나 타블로이드 전단지, 시험용 답안지(기레기 인증시험), 웹(여성혐오 타임라인) 등 형태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표지가 무척 레트로했던 어느 책도 흥미로웠는데 그 책 제목은 기억이 안 나네요.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알려주시길!) 언젠가 함께 작업하게 되길 고대하겠습니다.
도서전은 문화행사이기도 하지만 출판사들에게는 결국 1년 중 오프라인에서 독자에게 직접 책을 팔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입니다. 수많은 출판사가 큰 비용을 투입해 부스를 차리고 1년에 딱 한 번 쓰고 버릴 각종 포스터와 굿즈, 전단지와 직원용 티셔츠를 만듭니다. 어떻게 보면 참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이지요. 이렇게 해서 책이라도 많이 팔아 매출이 오르면 그나마 본전이지만 대다수의 출판사가 비용보다 못한 매출을 기록합니다. 수익이 아니라 매출이요. 제가 속한 회사 역시 엄청난 적자를 봤습니다. 그럼에도 이 출판이라는 비즈니스에 속한 사람들은 참 성실하고, 또 미련합니다. 자신이 파는 책 한 권의 마진이 얼마일지, 자신이 일하는 이 시간의 비용 대비 환산 가치가 얼마일지 전혀 모르지만, (그걸 계산하는 전문가도 없지만) 직원들은 그동안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던 독자라는 미지의 생명체를 만난 흥분감에 목소리를 높입니다. ‘국영수 요리 맛집’이라는 컨셉을 들고 나온 키출판사는 모든 직원이 앞치마를 두른 채 행사장이 요란해질 정도로 쩌렁쩌렁 모객을 하더군요. 물론 상사나 사장의 압력이 있었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오픈런을 하듯 뛰어들어오는 독자들을 보면 확실히 없던 힘도 샘솟게 되더라고요. 부디 내년에는 이런 가슴 뻐근한 감동 말고도 두둑한 매출도 함께 가져가길 바랍니다.
끝으로, 반가운 얼굴을 여럿 만났습니다. (사실 이 점이 도서전의 가장 큰 백미지요.) 제 첫 회사의 첫 사수셨던 반니출판사의 배수원 부장님을 뵈었습니다. 개막날 사인회 행사를 앞두고 1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부스를 돌다 정면에 낯익은 얼굴이 보여 곧장 돌진했습니다. 약 2년 전쯤 카톡 몇 번 주고받았던 것이 마지막이었어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기병!” 하며 너무나 쿨하게(?) 맞이해주셔서 기분 좋았습니다. 2013년 겨울부터 2014년 여름까지 함께 했으니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네요. 앞으로는 같은 출판계 종사자로서 서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자고 하며 헤어졌습니다. 풋살 모임 동료들도 만났습니다. 제가 일한 부스 바로 앞에 설치된 창비 부스에 익숙한 덩치(?)의 두 남자가 보이길래 다가가서 아는체를 했지요. 승준님과 빛님이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명함도 주고받았습니다. 몇 번 작업을 함께 했던 편않의 식구분들도 모두 만났습니다. 엄청난 친화력의 지다율님, 꼭 해야 할 말만 하시는 김윤우님, 그리고 늘 재미난 표지를 선보이시는 기경란 디자이너님을 뵈었습니다. 기경란 디자이너님과는 명함도 주고받았습니다.
(슬램덩크로 유명한 대원아이씨 부스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게 아쉽네요. 이슬람 어느 부스에서는 해나를 그려준다고 했는데 그것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혁명의 팡파르를 출간한 소미미디어 부스에 가서 그 책을 어떻게 기획하고 어떻게 마케팅했는지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는데 용기를 내지 못했어요. 폭탄이라는 일본 소설을 얼마 전에 출간한 블루홀릭스 부스에서는 중년의 남자, 여자 직원분들(?)이 정말 열심히 책을 영업하고 있었는데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역시 너무 아쉬웠습니다. “대체 이런 장르물은 어떻게 알고 번역을 하시는 건가요?” “이렇게 한 길만 파도 출판사 운영이 가능하던가요?”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요. 은행나무에서는 ‘마케터의 문단속’이라는 이름부터 재미난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하는데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아몬드의 표지에 삽입된 일러스트로 유명한 0.1 작가님의 굿즈들도 구입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