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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덕텐트 Sep 06. 2022

닮고 싶지만 닳아버려

무너진 20대의 일기






'닳는다'




닳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없어

쓰라리게 갈리고

둔탁하게 얻어 맞아


낡아지고

늙어지고

나자빠지는 것


고독하게 죽어버린

죽어버린 것이 죽어버린 줄도 모르고 사라져버린

청년 1인 가구의 세대주, 그 사람의 꿈처럼

벽을 너머 끝내 이룰 수 없는 것


흥과 망

자살, 살자

자살, 타살과 같이


한 끗 차이로

 

세상은 삶과 사망으로 갈라진다


갈라치기의 세상에서

닮고 싶어도 닳기만 하는

비린내 나는 인생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본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어, 다 부질없다.'


비극은 비로소 비극이여야 희극이듯

무너진 것은 무너져야 가치를 찾는 것


좌절에게 오히려 좌절은

때때로 희망이 되어주기도 한다



-



수많은 시간을 견뎌가며 고대해왔던 이 사색의 순간


가득한 기대를 품고 백지 위에 나란히 섰지만


나와 그것은 평행을 달리듯 끝내 만나지 못한다


더이상 어떠한 희망과 곡조와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못한 것이 어언 수 개월


이제는 내가 나를 잃어버린 것인가 잊어버린 것인가도 구분할 수 없이


잠식되고 뒤엉켜버린 먼지 구댕이 속 내 자아를 마주한다


나에게 더이상 '할 수 있다'의 찌라시는


작동하지 못한다




나는 비극 속의 운명이오, 암울한 삶을 주관하는 담당자가 된 것 같이


그렇게 명품 조연으로서 삶을 바친다


어딘가가 계속 갉아먹히는지 갈려가는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 이 삶은


그렇게 물레방아가 썩은 물에 썩어문들어질 때까지 돌고 돈다


박살나버린 물레방아는 죽어서도 자신이 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더이상 머리는 생각을 깨어내지 못하고,


터져버릴 것 같이 답습한 두통에


내 삶의 주도권을 헌납했다는 박탈감에 사로잡혀


노예의 노예의 노예의 노예가 되어


삶의 종지부를 향해 나아간다



-



살아가고 살아간다


이제 이러한 삶이 불행인지 복행인지 그런 것들은 중요치 않다


나는 이제 그렇게 만들어진 내 삶 안에 고정되었다


어떠한 자각과 어떠한 자아, 어떠한 자신도 필요하지 않은


검소한 삶을 비로소 성취하였다





불행한가?


아니 그렇지 않다


더이상 무언가들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불행하지 않다




어떠한 것도 그려지지 않는 사유 속에


붕괴하는 것들은


아마 내가 아닐 것이다


이미 내가 내가 아니기에


떨어지고 엉켜가는 것들이


나였는지, 나인지


알 수가 없을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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