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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Mar 01. 2023

허삼관 매혈기

책 읽기 프로젝트 50 #39

7년 만에 헌혈을 하고 왔다. 피 450ml, 그러니까 허삼관 표현으로는 피 두 사발을 뽑았다. 몸을 빠져나가는 피를 보며 허삼관이 말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일세. - p.50



<허삼관 매혈기許三觀賣血記>는 중국의 유명 작가인 위화余華가 1996년 발표한 소설이다. 그의 다른 소설 <인생活著>처럼 한 사람의 삶에서 그 시대를 보여주고, 또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쫓아간다. 삶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위화는 이를 해학적으로 표현해 가족 간의 사랑을 더욱 부각한다.


도시에서 방직공장을 다니는 허삼관은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국민당 장교와 재혼해 떠나버린 후 넷째 삼촌의 도움으로 자랐다. 시골 삼촌 댁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매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시골에서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주기적으로 피를 팔아 큰돈을 마련한다. 피를 한 번 팔아 번 돈은 반년을 땀 흘려 농사를 지어 버는 돈보다 많다. 그리고 허삼관은 농사를 짓는 방 씨와 근룡과 함께 처음으로 피를 팔러 간다. 물을 열 사발씩 마시고 몸속의 피를 늘린다. 병원에서 누가 언제 피를 팔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이 혈두에게 선물을 가져다준 방 씨와 근룡 덕분에 검사 없이 피를 팔았다. 피를 판 그들은 식당에 가서 보혈과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주문한다. 허삼관도 두 사람을 따라 탁자를 두드린 다음 외친다.


“여기 돼지 간볶음 한 접시하고 황주 두 냥 가져오라구. 황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말이야.” - p.48


허삼관은 피를 판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오늘에서야 피땀 흘려 번 돈이 어떤 건지를 안 셈이죠. 제가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은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일에 써야죠. - p.52


결혼을 하기로 말이다.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던 임분방도 마음에 들었지만, 동네에서 미인으로 소문난 허옥란과 인연이 닿았다. 허옥란은 꽈배기를 파는데 미모가 뛰어나 꽈배기 서시(西施)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허옥란은 하소영이라는 남자와 만나는 중이었지만, 허삼관은 허옥란의 아버지를 설득해 결혼하게 된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세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허삼관과 가족들의 고난이 시작된다. 알고 싶지 않았던 비밀이 밝혀지기도 하고,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한 가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흥미롭다. 힘든 시기에도 허삼관은 매정한 듯했다가도 따뜻하다. 그는 가족들을 위해 다시 피를 판다. 피를 판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과 그가 실제로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을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는데, 그때는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대충 읽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성우분들이 읽어주는 오디오북을 들었다. 아무래도 주고받는 대화나 생각하는 장면이 많아서 오디오북이 마치 아주 생생한 라디오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소리 내 웃기도, 눈물짓기도 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쭉 따라가면서 보여주는 이 책은 아무래도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들들을 위해 피를 팔기를 주저하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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