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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했던 최고의 회사생존 이야기 2:포지셔닝 하다

Survival leadership

by 태준열

<굴러 들어온 돌, 박힌 돌이 되다>


1화에서 이야기했던 충격적인 말 "독배를 마시는 자리", 기억하시죠? 이 말은 정말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조직개발실 실장 자리는 터프하거나 회사 분위기(은근한 군대 문화), 술 문화 등에 걸맞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자리더군요(독배 맞았습니다.. 이 전 실장은 사람은 좋은데... 샌님, 양반 같아서 버티기 힘들었을 거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퇴사하신 분이 부족했던 것은 "초두효과"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와 다르게 행동하기로 했습니다. 초반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로 한거죠.

(용어정의: 초두효과는 처음에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제시된 정보보다 기억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심리학적 현상으로, '첫인상 효과'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뇌가 정보를 일관성 있게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처음 접한 정보가 전체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한번 형성된 첫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입사 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사람들이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쳇말로 간을 본다고 할까요? 입사하면 금방 떠나버리는 조직개발실에 또 사람이 들어왔으니 이번엔 얼마나 버티나... 한번 알아보고 싶었던 거죠. 저와 대화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제 경력에 대한 이야기, 술은 잘 먹는지, 유머나 농담 실력은 어떤지, 개인 신상에 대한 것들... 아무튼 많은 것들을 알고 싶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요.

(음....사람들은 나를 큰 기업에서 온 일 잘하는 깍쟁이로 알고 있구나..깍쟁이 인식을 바꿔주면 되겠군)


한참 일하고 있는데 한 팀장이 다가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태 실장님은 실력이 좋으신 분 같긴 한데... 너무 일 중심적인 분 같아요, 우리 회사는 일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인데......"


"아 네, 저도 사람 중심 회사! 좋습니다. 근데 제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전 실장님이 무엇을 했는지,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는지 업무 파악도 좀 하고 방향도 잡아야 해서요, 그리고 제 팀원들 채용도 해야 합니다. 좀 바쁘네요. 다음 주 전사 리더 회의에서 앞으로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무엇을 할지 모두 공유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사람 중심"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와 보는 관점이 달랐던 거죠.

이 회사에서는 부어라 마셔라 술 문화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리고 조직 운영기준이 그때그때 다른... 온정주의 문화라고 할까요? 그걸 사람 중심 회사라고 하면 안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중심"의 정의부터 다시 잡아야 했던 겁니다.


저는 이 회사의 조직문화를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도전의식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뭐, 맞지 않다 생각이 들면 이직하면 그만이었겠죠. 하지만 저는 생존하면서 변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저만의 생존전략이 필요했고요.


일단 내가 원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잡은 컨셉은 이랬습니다.


<포지셔닝 컨셉>

유연성 있는 사람

나도 너희들 만큼 잘 노는 사람인데?: 나는 당신들과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야. 어쩌면 당신들 보다 더 잘 노는 사람일 수도 있어. 이제 곧 보여줄게.

철학과 기준이 있는 사람

잘 노는 사람이지만 난 나만의 기준이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나를 바꾸려고 하지 마라.

본분을 지키는 사람

나는 잘 놀기도 하고 사람들하고도 즐겁게 생활하겠지만 내 일과 본분은 지키는 사람이야. 그러니 나를 흔들 생각은 하지도 마라.

방향성 있는 사람

나의 주 업무는 술자리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조직개발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전반적 인사업무(hrm, hrd)도 곧 우리가 할 거야. 그게 맞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줄께.

자기 성장 욕구가 강한 사람

나는 회사 성장에 도움을 주면서도 내 경험의 성장, 전문성 성장에 지금 하는 일로 최선을 다할 거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나는 실력 있고 성과를 잘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경직된 사람은 아니고 잘 놀고 유연하면서도 겸손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내 철학과 생각을 지키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이런 컨셉은 사람들에게 점차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술자리? 네, 여기저기 많이 다녔습니다. 다만 과음은 하지 않았고 대신, 재미있는 입담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입사 3개월 즈음에 저는 직원들에게 이런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태실장님은 입담으로 우리 회사 4대 천왕이야, 최 단시간 4대 천왕에 오른 분이지 ㅎㅎ" "태실장님은 우리 과야, 우리 종족이라고" "처음부터 계셨던 분 같아"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유는 저만의 생존전략과 원칙이 있었고 그 기반으로 일관된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칙기반의 행동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였습니다.


<초기 중점행동>

첫 번째, 그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내가 어떤 경력이든(대기업 경력이든), 내가 얼마나 잘하는 사람이든 오랜 시간 네트워크를 쌓고 있는 그들에게 건방져 보이거나 독불장군처럼 보이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지지받지 못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난 제대로 일할 수 없을 것이란 것. 그래서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조금씩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두 번째, 실력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잘 놀기만 하고 실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저는 차별성 없는 사람이 되겠죠. 저는 잘 놀고 잘 어울리지만 실력으로 사람들을 리드할 것이란 기대감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오자마자 제 일도 아니었지만 경영지원 임원이 하던 일을 제가 가져왔습니다. 바로 평가, 연봉 조정체계, 보상체계, 승진체계, 인센티브 체계를 만들고 전 직원들을 면담하며 완벽히 마무리를 했습니다. 물론 이 일은 제 전공이었기 때문에 어렵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임원의 일을 과감하게 가져와서 그것도 일사천리로 빠르고 정확하게 해 냈다는 것은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었죠. 그래서 초기에 직원들, 임원들, 대표이사까지 저의 경험과 실력을 믿게 되었습니다. 강렬한 첫 인상을 남긴거죠.

세 번째, (경영진에게 임팩트)회사를 위하는 모습: 조직진단을 하였습니다.

이전에 이걸 하시던 컨설턴트 분이 있었는데... 뭔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행에 참여하면서 조정하고 업데이트하고 좀 더 깊은 분석을 하며 직원들을 인터뷰했고, 저만의 조직진단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컨설턴트와는 계약을 종료하게 되었고, 저는 경영진에게 제 방향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힌 것입니다.


이렇게 3가지를 입사한 지 약 3~4개월 만에 해 냈고 회사와 직원들은 제가 의도했던 컨셉에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점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짧은 시간에 강하게 러시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최 단기간 몰입"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굴러들어 온 저는 박혀 있는 돌들에게 처음부터 박혀 있었던 돌처럼 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직 한 리더에게 드리는 팁>

마지막으로~이쯤에서 이직하는, 이직을 한 리더에게 줄 수 있는 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하나로 요약한다면 이것 아닐까 합니다.


"당신은 리더입니다. 전 직장에서도 리더였고 여기서도 리더입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요구를 "맞춰주는게" 먼저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길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직한지 얼마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사의 요구를 잘 들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빠르게 충족시켜줘야 한다" "직원들과도 잘 지내서 좋은 평판을 만들어야겠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게 있습니다. 나는 대리과장으로 이직한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팀장 또는 실장 또는 본부장....즉 리더인 것 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당신을 왜 채용했겠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그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당신이 해 주기를 바랬기 때문일 것 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직을 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내가 리더로서 어떤 컨셉을 가지고 있고 어떤 자기철학을 가진 사람이며 어떤 일을 할 수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내가 중심이 되어 보여줘야 합니다" 즉,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리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따라가기 시작하면 당신의 페이스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팀장으로 이직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입니다.

직속상사 임원이 저에게 서류더미를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팀장, 이거 다 해야 할거고 이번 년도 내로 만들어야 할거야, 이번주 내로 한번 봐 주세요"..서류더미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그냥 다 받아들였을까요? 아닙니다.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잠시만요 이사님, 일단 제 방법으로 전반적인 파악을 해 보고 계획을 세우고 나서 무엇이 더 필요한지, 무엇이 문제인지 그 때 말씀 드리겠습니다. 주신 자료는 그 때 같이 논의하시는게 어떨까요?"



저는 이런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는 당신이 아니라 나 입니다" "전문가를 채용했으면 그 목적에 부합되게 나를 사용하세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초장부터 던져주는 것을 받아서 일 하기 시작하면 나는 그냥 시키는 일을 하기에 벅찬 사람이 될것이고 일의 주도권은 내가 아니라 임원이 된다. 그럼 내가 과장과 다른것이 무엇인가? 그런 모습을 보는 팀원들이 과연 나를 따를까?"


이사님은 살짝 움찔했습니다. 이렇게 받아치는 사람이 없었을테니까요. 대부분 네, 알겠습니다 하고 이사님이 준 자료를 가장 먼저 스터디 했겠죠.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사님은 오히려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맞네 태팀장이 대리과장으로 온게 아니지 ㅎㅎ 그럼 파악해 보고 준비가 되면 그 때 같이 이야기 해 봅시다. 태팀장 말이 맞네, 내가 너무 성급했어요"


리더는 이유없이 그냥 주도권을 주면 안됩니다. 그 대상이 임원이든 대표이사든 마찬가지 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런 모습이 당돌해 보일지는 몰라도 리더로서 주체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보이면 결국 주변 사람들이 인정 하고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 물론 독불장군이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만심과는 다른 이야기 입니다. 그건 어리석은거죠. 그들의 문화, 언어, 일 방식을 인정해 주지만 그 속에서 나를 잃지 말라는 것 입니다. 나를 성공적으로 각인시킨 뒤, 서서히 일과 조직을 이끌어 가는 것 입니다.




내가 경험했던 최고의 회사 생존 이야기 3화는 나와 함께 할 팀원들을 채용, 조직을 세팅하는 이야기 입니다.


끝가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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