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모두가 ‘좋았다’라고 말하는 이 전시를 보고 나는 ‘슬펐다’
호크니를 적당한 거리로 좋아했더라면 이 전시가 좋았을 거 같다.
호크니의 모든 시기의 그림을 좋아해서. 그의 작업 속에 많은 점을 배워서. 호크니의 그림인생 전체를 보여주는 이 전시가 나는 완벽해서 슬펐다.
초반부는 타센에서 나오는 호크니 빅 북을 호크니가 읽어주며 그림 설명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원근법에 대한 그의 카메라 실험 등이 담긴 책을 학부 도서관 구석에서 종일 보며 재밌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전시가 그저 그런 그림 읽어주는 할아버지 콘셉트인가 싶었는데.
점차 젊은 호크니의 내레이션과 지금의 호크니 내레이션이 섞일 때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세월과. 그 세월 속 그림에 대한 생각과 삶의 변화를 들으며. 조금씩 슬퍼졌다.
학부 4학년 시절 학교 칸틴에서 그날의 가디언 신문을 늘 사서 봤는데. 거기에 호크니가 아이패드 드로잉을 연재했다. 어떤 작가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지 않던 시절에 혼자 아이패드 1세대로.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걸 가디언지에 연재했고. 난 그걸 늘 보고 있었다.
대체 이거 이 할배는 왜 하는 거지. 그림 이상해.라는 생각으로.
그의 찬란한 작업인 요크셔 풍경을 보며. 추억이 떠올랐다. 그 전시 첫 공개 때 2010년 런던을 가서 아침 7시 RA 티켓 입구 앞에 세 번째로 줄 서있었다. 내가 1번으로 도착한 게 아닌 게 충격이었음. 전시기간의 온라인표가 전체 매진이라 하루 백명만 선착순으로 입장받는다고 해서 나는 서울에서부터 런던을 갔고. 아침 7시에 줄을 섰다. 2시간 기다리며 앞 뒤 아티스트들과 스몰토크를 하고. 예술가의 영업 비법등을 얘기했던 거 같다. 2시간 기다려 들어가서 2시간 전시를 봤다. 그 전시 보기 전까지 나는 그 요크셔 신작들을 보지도 않고 포스터로만 보고 이전 호크니 같지 않고 너무 멀리 가버렸어. 별로일 거야 라고 생각했던 나를 반성했다.
일단 작업의 퀄리티는 제쳐두고 도대체 이렇게 많이. 이렇게 열심히. 다양한 연습과 실험을 어떻게. 어디서 나오는 열정으로 하는 건가 싶을 만큼의 양을 보여줬다. 엄청난 반성이 들게 하는 전시...
그때 그 작업들의 움직임을 보며 호크니의 봄을 기다린다는 내레이션. 우리는 더욱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말. 나는 60년을 그렸는데 아직도 그리고 있고 그림이 재밌다는 말. 그 마지막 웃음.
이런 얘기와 함께 절정으로 치닿는 음악. 음악에 맞는 스타카토 조명 기법으로 봄을 더 충만하게 피어내는 과하지 않은 연출의 바닥면 등을 보며 호크니의 이 찬란한 봄이. 이 절정의 황홀한 봄이. 이제 지는 것만이 남아 새로운 계절로 들어가는 것이 눈앞에 와있는 거 같아서 이 충만함이 슬퍼졌다.
담담한 그의 웃음과 마지막 해가 뜨고 햇볕으로 가득 차는 마무리 연출은 정말 아름답고 슬펐다.
죽음이 있어 삶이 가치가 있고 밤이 와야 아침이 더욱 소중하고 꽃이 지고 초록이 짙어짐으로 봄이 의미가 있는데. 알아도 여전히 변화가 오는 순간은 슬프고 담담하지는 못하다.
유한함으로 무한한 아름다움이었다.
그와 동시대에 살아서 참 다행이야. 그가 그 누구보다 시대에 앞서가면서. 용감히 도전하며 뉴 미디어로. 동시에 오리지널로 작업을 해내고 있어서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remember that you cannot look at the sun or death for very l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