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찾아주는 콘텐츠 컨머스 전략
당신도 한번쯤은 MBTI 테스트를 해본 경험이 있을것이다.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테스트는 중독성이 있다. 나도 모르는 내 성격과 취향을 알려주니 신기할뿐 아니라 이런 꿀재미가 따로 없다. MBTI를 비롯한 수많은 자기 성격 테스트들이 레이블링 게임(Labeling Game)이라는 트렌드 콘텐츠이자 콘텐츠 커머스 전략으로 뜨겁게 부상하고 있다.
레이블링 게임은 무엇인가
최근 MBTI 테스트를 비롯한 각종 테스트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레이블링(딱지 붙이기)한 뒤 해당 유형이 갖는 라이프 스타일에 동조하거나 같은 유형의 유명인을 추종하는 태도가 유행하고 있다.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Myers-Briggs Type Indicator) 테스트란 스위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Carl Jung)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만든 성격유형 검사 도구다. 네 가지의 상대적인 선호 지표를 조합해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해준다. (이 유형의 한계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는 언근하지 않겠다)
이 테스트는 국내에는 1990년경 도입돼 기업의 채용이나 학생들의 진로 파악에 주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MBTI 검사 결과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트위터를 비롯한 다양한 SNS에 공유하며 인증하는 일이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SNS상에서는 유형별 궁합, 상처받는 말, MBTI 팩폭(팩트폭격)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가공 되며 놀이 문화로 유행한다. 이런 현상을 레이블링 게임(Labeling Game)이라고 통칭한다. 매년 트렌드보고서를 발간하는 김난도 교수가‘2021년 신축년 10대 트렌드’중 하나로 선정한 용어였다.
우리은행과 <방구석 연구소>는 3.1절을 기념한 ‘독립운동가 테스트 기억하길’캠페인을 진행했다. 12개의 문항에 답을 하면 MBTI 기반 알고리즘을 반영해 16개 독립운동가 유형 중 하나가 결과로 나오고, 이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면 어려운 환경에 놓인 독립 운동가를 위한 사업에 1건당 1000원씩 기부되는 방식이었다.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한다.
또한 LG생활건강에서 진행한‘첫 인상 테스트’는 MBTI 형식으로 16개 유형의 첫 인상을 만들고 이와 어울리는 향수를 추천해 주는 콘텐츠도 있었다. LG생활건강 인터넷 쇼핑몰 회원 가입을 늘리려는 마케팅 목적의 게임이었다. 소비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에 브랜드를 녹인 브랜드디 콘텐츠(Branded Contents)인 것이다.
레이블링 게임의 과정은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계량화(quantification)’다. 테스트를 통한 데이터로 자신을 계량화하고 유형을 정한다. SNS에서 유행하는 <첫인상 테스트>나 <나만의 꽃 심기 포레스트>, <MBTI 테스트>가 대표적이다.
두 번째는 ‘비유(comparison)’다. 브랜드나 소비재의 이미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급 브랜드에 비유한 단어 ‘인간 샤넬’이나 ‘나와 같은 MBTI인 유명인은 누구일까’와 같은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비유는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마지막 단계는 공유하고 인정받기(sharing & identification)다. 앞선 두 과정을 통해 자신을 레이블링 한 뒤 그 결과를 SNS를 통해 타인에게 공유하고 인정받는 이 과정에서 레이블링 테스트가 타인과 즐겁고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로 치환되는 것이다.
왜 레이블링 게임에 열광하는가
레이블링 게임은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부터 출발 된 것으로 본다. 언택트 시대는 존재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을 양산했다. 이들은 “자기정체성 찾기”로 존재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한다. 즉,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유형을 확인하고, 그 유형에 맞는 삶을 실행해 나가면서 자기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판데믹 시대를 관통하며 느끼는 존재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대중들의 정체성 테스트가 놀이로 전환된 것이 바로 레이블링 게임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레이블링 게임 트렌드의 등장 원인으로 MZ세대의 ‘관계 형성에 대한 니즈’를 꼽고 싶다. 흔히 알고 있는 MBTI, 꽃 MBTI 등의 놀이를 진짜 ‘나’를 찾기 위해 한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놀이에 열광하는 현상은 그 놀이를 통해 타자와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욕구와 연결 지어 보아야 한다.
MBTI 테스트를 예로 들면, 한창 이 검사가 유행할 때, 사람들은 이 검사의 결과를 SNS에 올려 공유하고 서로의 MBTI 유형이 각자에게 어울리는지 이야기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서로의 <MBTI 궁합>을 확인하는 것이 유행하며, MBTI의 결과 자체보다는 “타인과의 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해 더 주목하고 있다.
이후 <꽃 MBTI>와 같이 인기를 끌었던 레이블링 게임 역시 검사 결과에 ‘환상의 궁합’과 ‘파국인 궁합의 꽃’을 같이 공개하며 본인과 타인의 검사를 통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제작되었다. 최근 유행하는 <클럽 하우스>에 들어가도 자신의 프로필에 MBTI 유형을 꼭 등록하고, 타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도 MBTI 유형을 공개하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관심을 두는 이유는 사실 '고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가 익숙한 현세대는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부족하다. 게다가 코로나 언택트로 고립된 상황이다. 고립으로 사회적인 결속력마저 약해지니 디지털 세상 속의 놀이를 통해서라도 관계를 형성하고 SNS 속의 본인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사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 삶은 레이블링 게임처럼 단순한가
레이블링 게임은 단순한 심리테스트 게임만은 아니다. 실제로 레이블링 게임은“레이블링 마케팅”“브랜디드 콘텐츠”로 불린다. 현재 온라인 패션 플랫폼, 금융권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홍보 및 추천 서비스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레이블링 게임 트렌드는 <방구석 연구소>가 주도한다. 이 연구소가 양산하는 레이블링 게임들을 살펴보면 ‘마케팅’이다. 이 연구소는 레이블링 게임을 소비자가 브랜드를 인식하고 제품을 구매하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기업은‘레이블링 게임’이 SNS 상에 구전되면 적은 인풋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 기존 광고 마케팅에선 소비자에게 더 노출하려면 그만큼 매체비를 더 써야 한다.
그런데 레이블링 게임으로 만든 콘텐츠는 소비자가“자발적으로 확산”한다. 게다가 소비자가 직접 선택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다 보니 제품 구매 욕구도 훨씬 높다. 기업으로서는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레이블링 게임은 저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낳는 ‘마케팅 효자’인 셈이다.
소비자로서는 레이블링 게임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유형을 획일적으로 나누는 일은 위험하다. 성격 테스트를 할 때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이것을‘바넘 효과(Barnum effect)’하고 한다. 성격유형의 특성 중 몇 가지가 자신과 다르게 나타나도 그 부분을 제외하고 맞는 부분만 보거나, 결과에 자신을 맞추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MBTI 테스트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신뢰성이 높다. 하지만 인간의 성격을 외향과 내향, 감각과 직관 등의 이분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감성과 지성, 영적 깊이와 다양성에 대한 오독이다. 이것은 무지개를 보고 세상에는 7가지의 색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레이블링 게임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기보다 그냥 친목을 다지는 놀이 정도로 여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에서 코로나 사태로 바뀌는 것은 트렌드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라고 했다. 하지만 변화의 핵심이 속도라 해서 방향을 몰라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태풍의 규모는 속도가 정하지만, 태풍의 피해 규모는 방향으로 판가름 나지 않던가?
자신의 진정한 삶은 유행하는 무엇을 추종하고 그 속도에 맞추는 길보다, 진짜 자신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자기 속도로 걸어갈 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삶은 늘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