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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기영 Jun 29. 2020

언제 밥 한번 먹자

“언제 점심이나 같이 드시죠"

"네 그러시죠"

"이번 주는 제가 좀 바쁘고, 다음 주 목요일 어떠세요?"

"네?..."


같은 부서도 아니고 업무 연관성도 별로 없던 직장 동료한테 도움을 받았다. 평소에 같이 일할 기회가 없어서 서로 인사만 하고 지내던 사이였다. 귀찮은 일이었을 텐데도 그 동료가 성심성의껏 도와준 덕택에 일을 깔끔히 처리할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언제 한번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고는 바로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렇다. 그 동료는 내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언제 밥이나 먹자고 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인사치레로 한 말인 줄 알고 건성으로 대답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적극적으로 날을 잡자고 하니 당황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다음 주에 우리는 같이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셨다. 일하는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하며 한 시간 반 정도를 보낸 덕에 조금은 친한 동료가 한 명 더 생겼다.


언제부턴가 누군가와 밥이나 차를 함께 하자는 얘기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일정을 잡게 되었다.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낸 경우에는 물론이고, 상대방이 지나가는 말로 얘기를 한 경우에도 그렇게 한다. 언제가 괜찮은지를 확인하고는 상대와 나의 캘린더에 일정을 등록해 버린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서로 만날 때마다 "언제 밥 한번 먹자"를 외치기만 하고 몇 달, 심지어 몇 년 이 지나도록 같이 밥 먹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영영 단 한 번도 그럴 수 없게 되기도 한다.


2015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다니던 직장은 실리콘 밸리에 본사가 있었고,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캘리포니아에 모여 컨퍼런스를 하곤 했었다. 그 해 가을에도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미팅을 했는데, 일정의 마지막에 Guest Speaker가 와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NASA에서 우주비행사로 일했던 Dr. Edward T. Lu라는 분이 무대에 올랐다. 우주비행사를 직접 보게 되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image from COMTONational


미국계 중국인인 그의 경력은 화려했다. 명문 코넬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하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두 번의 우주비행을 했고, 세 번째 우주여행에서는 러시아 우주비행사와 함께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6개월간 연구활동을 하기도 했다. NASA에서 퇴직한 뒤에는 B612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지구과학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며 우주비행사로서 배운 세 가지 교훈을 들려주었다. 첫째, 인간은 함께 일하면 훌륭한 일을 해 낼 수 있다 (Human can do great things if we work together). 둘째, 항상 긍정적이되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라 (Be an optimist. But it doesn't hurt to be prepared for the worst). 셋째, 미루지 마라 (Don't put things off).


그중에서 세 번째 교훈과 관련된 이야기가 내 기억에 가장 남았다. Ed Lu는 NASA에서 같이 우주비행사로 근무했던 절친이 있었다. 둘 다 결혼을 했고 한 동네에 살았기에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가족모임도 같이 하곤 했었는데, 서로 바빠지는 바람에 한동안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가끔 동네에서 오다가다 마주치면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어야지"라고 얘기를 하곤 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각자의 우주 비행을 준비하느라 일 년이 넘도록 말만 하고 밥을 같이 먹지는 못했던 것이다.


Ed의 마지막 우주 비행 임무는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6개월간 연구를 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가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가기 두 달 전, NASA 역사상 두 번째 우주 비행선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콜롬비아호가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오다 공중분해되고 만 것이다. 7명의 우주 비행사도 전원 사망했다. 안타깝게도 그중의 한 명이 Ed의 절친이었고, 그는 그렇게 다시는 그 친구와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 그는 적어도 사람을 만나는 약속은 뒤로 미루지 않는 다고 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당장 약속을 잡아서 만난다고 했다. 언제 어떻게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image from Jakub Kapusnak | unsplash.com


한국 사람들은 언제 밥 한 번 먹자 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한다. 그냥 인사치레로 건네는 말인 경우도 많다. 그래야 지만 뭔가 내가 선심을 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알지? 나 너랑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야 라고 전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그 사람과 더 깊이 알아가거나 친해지고 싶지 않은 경우에도 남발하게 된다. 이 말을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줄이려고 한다. 정말 같이 밥을 먹으며 좀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한테만 얘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얘기를 할 때는 바로 날을 정해 버린다. 언제 밥 한번 먹자의 '언제'가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cover image from Prischilla Du Preez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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