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나는 홈트, 요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요가는 특히 빳빳한 몸을 무리 없이 운동시키기 좋고, 원하는 부위를 시원하게 풀어주면 기분도 나아진다. 내 몸과 마음을 돌보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요가 영상의 마지막은 항상 ‘사바하사나’ 같이 시체처럼 눕거나 혹은 앉아서 하는 명상의 시간으로 끝이 난다. 다소 힘든 동작들을 취하다 보면 어서 마지막 시간이 와 휴식을 취하고 싶다. 영상 속 트레이너는 생각을 비우고, 내 몸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한다. 그러나 이때 나는 정작 ‘드디어 요가가 끝났으니 정리해야지’ 하며 명상을 스킵 하던 때가 있었다. 움직이는 건 다했으니 이제 운동은 다한 거야. 라고 생각하는 거다. 되돌아보면 숨만 쉬며 가만히 있는 그 시간을 '필요 없는 순간' 이라고 느낀 것 같다. 단 몇 분의 시간도 의미 없이 흐르면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 같았다.
모든 행위를 '얼마나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오는가' 기준으로 의미를 붙이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걸 하면 뭐가 의미 있지?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면 하기 싫었다. 요가에서 명상하기가 그렇고 아무 것도 안하는 순간이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쓰는 모든 시간들이 정말 생산적이고 의미가 있나 싶으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적어도 숨만 쉬는 시간은 정말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아서 어쩐지 용납할 수가 없다. 정작 SNS를 멍하니 보는 시간은 몇 시간씩 가지면서. 손에는 항상 스마트폰이 있고 이동을 하던 여유가 나던 짬이 나면 자연스레 폰을 들고 무언가를 본다. 가만히 있는 순간을 견딜 수가 없다. 뭐라도 봐야 한다. 적어도 무언가를 보는 순간에는 내가 새로운 걸 얻게 되니까. 그것이 재미이든, 지인의 근황이든. 이렇게 의미를 붙여 시간을 보내면 적어도 쓸데없는 시간은 아닌 것 같다.
하루라도 무언가를 안 하면 쓸데없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같아 괴로웠다. 주변의 넘쳐나는 성공 신화들을 보면 그들처럼 열심히 살아야 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인간이 된 것 같다. 치열한 세상 속 잉여 인간이 된 느낌은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조급함에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붙여보지만, 조급한 마음으로 하는 것들은 쉽게 집중을 잃는다. 그 일들은 내가 진짜 원해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에 결과를 생각하며 하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까먹게 된다.
가끔은 쉬어갈 줄 알아야 다시 에너지를 얻고 나아갈 힘이 생긴다.
쉴 틈 없이 바쁘게 지내야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인 줄로 알았던, 숨만 쉬는 시간을 아까워 하던 나는 진짜 나를 위한 시간이 뭔지 몰랐다. 마땅히 해야할 것 같아 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다르다.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다보면 해야하는 것을 하고싶은 것으로 혼동하고 그게 내 길인 줄 아는데 결국 돌아보면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이 아니다.
이제는 숨만 쉬고 있어도 되고, 잠시 돌아가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 가끔은 이어폰 없이 거리의 풍경과 소리에만 집중하며 산책을 하고, 요가가 끝나면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을 꼭 갖는다. 지금까지 100회 이상의 명상을 했으며 마음 답답한 날에는 10분이라도 가만히 있는 시간을 허용한다. 생산성을 내려놓는 잠깐의 공백이 내가 현재에 살고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준다. 이 감각은 내면의 소리를 알아차리게 한다. 진짜 나를 위한 시간은 궁극적으로 나를 더 성장하게 하고 내가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당신은 지금 나를 위한 공백을 갖고 있는가. 스마트폰, 유튜브, 넷플릭스 없이 정말 나에게만 집중하는 공백의 시간 말이다. 현재 삶이 불만족스럽다면, 나를 위한 공백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