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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디 Jun 08. 2023

그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일까?

인정받기 위한 욕망인가, 내 영혼이 충만해지는 욕망인가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원하는 길을 걷고 싶은 나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택의 순간, 가끔 멈춰서 나에게 질문한다. 네가 원하는 것은 뭐야? 이거 네가 원하는 것 맞아? 내 마음에서 떠오르는 욕망들을 따라가면 내가 원하는 길을 가게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내 마음에 불쑥 찾아오는 욕망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내 마음이 하는 소리니까 내가 원하는 것 아니야?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이성'이라고 믿고 있는 생각도, 사실은 수많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지극히 여린 녀석이다. 나는 연인에게,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사회적으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아마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아하던 것과 멀어지게 된 이유

나는 나름 내가 원하는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지지를 받아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미술 학원을 꾸준히 다녔다.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 학원을 권하지 않았고 미대를 준비하기 위한 지원을 기꺼이 해주셨다. 고등학교 1학년, 미대 입시 상담을 받으러 입시 학원에 들어서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길이니까 설레서가 아니다. 도망치고 싶어서다. 벽에 걸려있는 모두 비슷한 그림체의 입시 그림들을 보며 나도 저 그림 중 하나가 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미리 구입해둔 미술 재료들이 있었지만 미대 입시 과정을 포기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림과 멀어졌다.


그 무렵, '그림을 좋아하는 나'는 '그림을 잘 그려야 하는 나'로 바뀌어 있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기준은 학원에서 배웠다. 중학생 때 입시를 염두에 두고 다니기 시작한 학원에서 '잘 그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모범작을 따라서 그리고, 그것과 유사하게 그릴 줄 알아야 잘 그리는 사람이었다. 학원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열심히 그렸다. 시에서 주최하는 예술 대회에서 상도 몇 번 수상했다. 상을 타는 건 기쁜 일이지만 진심으로 기쁘지 않았다. 정답에 맞춰 그린 그림은 내 그림 같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던 그림은 더 이상 나를 기쁘게 하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나는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던 것이지,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에 그림이 좋았던 게 아니다. 나의 취미가 사회와 가족들의 기대가 섞여 '이걸로 밥을 벌어먹으려면 잘 해야 해.' 라는 내면의 소리가 나를 채찍질하게 만들었고, 잘 하지 못할 바에는 그리지 않는 내가 되었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나'를 '원하는 길을 가고 있는 나'로 착각한 결과다. 마음의 소리가 계속 '너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야.'라고 했지만 그 이면에는 그림을 잘 그려서 유명한 미대에 가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내가 그림이 좋았던 이유는 그냥 내 손으로 머릿 속에 상상하던 것들을 표현하는 과정이 좋아서였다. 친구들이 좋아해줘서, 부모님이 칭찬해줘서가 아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외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나를 자책하게 만든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자책 없이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 나는 결국 미대에 갔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논술 공부가 좋았고, 논술을 독학해 우선 선발로 디자인 대학에 합격했다. 



여전히 모범작을 따라서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모범작, 즉 잘 사는 것으로 보이는 삶을 질투하고, 그렇게 되고 싶은 욕망과 싸운다. 회사에선 능력있는 팀원이 되어 인정을 받고 싶고, 배우자에겐 사랑하고 싶은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때로는 그 욕망을 진짜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여 나를 닥달한다. 하지만 인정을 위한 욕망은 진짜 내가 원하는 욕망과 다르다.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아서 하는 행동들은 나를 쉽게 지치고, 경직되게 만든다. 기준이 내가 아닌 밖에 있기 때문에 끝없이 불안하다. 페달을 내가 밟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내 자전거를 끌어주고 있는 격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페달을 잘 밟고 있다고 독려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페달을 밟지 못한다. 그러니 얼마나 휘청이고 불안할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미대입시를 포기하던 순간처럼 거짓 욕구를 물리칠 수 있는 용기가 있다. 지금도 마음 속에 떠오르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바라본다. 그렇게 하면 정말 너의 영혼이 충만해질 수 있겠니? 과정을 즐길 수 있겠어? 계속 나에게 물으며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일지 생각한다. 그리고 필요할 땐 나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현실에서 벗어날 용기도 배우고 있다. 모범작을 따라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려 나가는 삶이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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