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마담 Nov 26. 2019

비타민 휴지기

[마음을 담은 편지] #16

2013년 여름 휴가에 프라하를 다녀왔습니다. 시차적응이 어렵지 않았는데, 돌아와서는 일주일 넘게 제대로 자지 못했어요. 일과시간에도 멍하게 지내기 일쑤였습니다. 감기까지 와서 2주 넘게 한참 고생했어요. 영양제 좀 먹어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선물 받으면 먹었지만, 제대로 챙긴 적은 없어요.


효과를 본 적이 없어 그랬던 거 같아요. 무엇이 몸에 어떻게 좋은지 모르니 흥미가 사라졌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종류가 워낙 많아 뭐부터 먹어야할지 어리둥절하더군요. 도움받은 사이트 중 '쿠마의 비타민 세상'이라는 블로그가 있습니다.


주인장 역시 특별한 증상없이 피로하고 감기를 달고 살았다고 해요. 병원에 가도 병증이 없어 고생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필수는 무엇이고, 옵션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잘 정리되어 있었죠.


멀티비타민, 오메가3, 비타민C부터 시작했습니다. 몸에 좋다는 뭔가를 먹으니, 마음은 편했습니다. 많이 먹으면 배에 가스가 차고 방구가 많이 나와 민망했어요. 하지만 환절기마다 걸리던 감기가 그 해는 은근슬쩍 넘어갔어요.


아침마다 눈이 번쩍 떠지는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어요. 여전히 피곤했어요. 가끔 눈밑이 파르르 떨려 마그네슘을 추가했습니다. 또, 취미로 성악을 하니 목감기에 좋고 면역력을 높인다는 프로폴리스를, 소화기관이 약해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는 걸 개선하기 위해 유산균을 추가로 먹었어요.


점차 먹어야할 비타민이 많아졌습니다. 아무때나 먹으면 간과 소화기관에 무리를 주니 꼭 밥먹을 때나 직후에 먹었죠. 점심시간 함께 밥먹는 직장동료들은 물어봤습니다. '무슨 약?', '비타민', '무슨 비타민을 그렇게 많이 먹어요?' 하던 관심이 염려가 되더군요. 


처음보는 사람들은 많은 약을 먹는 걸 보면 의아해하고 신기해했습니다. 시선을 끄는 건 민망했지만, 건강과 활력을 위해 계속 먹었어요. 하지만, 3~4년 지나니 과연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욕심껏 일상을 보내면 늘 잠이 모잘라 졸기 일쑤였습니다. 점심밥을 먹으면 비타민 챙기듯 꼭 사무실에서 낮잠을 잤어요.


2017년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이 나왔어요. 오메가3를 그렇게 먹었는 데도, 피의 흐름을 방해하는 부위가 생겼습니다. 게다가 황달 수치가 정상보다 높았어요. 의사와 면담을 했는데, 당분간 비타민을 먹지말자고 하더군요. 한 번에 싹 끊는건 불안했습니다.


멀티비타민과 비타민C는 계속 먹었어요. 중독처럼 느껴졌습니다. 해독하는 간에 좋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끊기가 어려웠습니다. 목이 조금이라도 컬컬하면 감기라도 걸린 듯 비타민을 털어 넣었죠.


금연(담배끊은지 20년째)할 때 마냥 큰 마음 먹고 얼마전 딱 끊었습니다. 거의 6년 만에 처음이네요. 비타민 휴지기를 가져야 된다는 마음을 먹었죠. 며칠 동안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불안했습니다. 조금만 피로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비타민을 먹지 않아서 그런건 아닐까 걱정했어요.


두 주 정도 지나니 안먹어도 살만했습니다. 속이 예전보다 편한거 같더군요. 밥 먹을 때마다 약통을 안챙겨도 되니 편했어요. 좀 더 미니멀한 생활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약이 아닌 건강보조제일 뿐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은? 사실 다시 먹고 있어요. 필요하다는 것만 먹어요. 환절기와 겨울이 지나면 또 한 달 정도 비타민 휴지기를 가질 생각입니다. 비타민에 건강을 너무 의존한 거 같아요. 잘먹고 잘싸며 잘자는, 기본에 충실해보려고 합니다.


그나마 줄인, 현재 먹고 있는 비타민과 각종 영양제들


.

.

.


from, 왕마담 드림

https://brunch.co.kr/@jisangwang

.

P.S : 6년째 비타민을 매일 챙겨 먹고 있습니다. 약통에 매 끼니 후 먹어야할 것들을 가지고 다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해요. 욕심껏 지내다 보면 졸음이 어찌나 쏟아지고, 아침엔 일어나기 힘들어 다시 잠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활력을 유지할 욕심에 먹은 비타민으론 역부족이었죠. 관성이 붙었는지 끊기가 힘들었습니다. 감기라도 걸릴까봐 불안했어요. 감기가 오면 취미생활은 물론 일상도 얼마나 힘들게 버텨야 합니까. 그게 싫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휴지기를 가졌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메탈리카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