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마담 Dec 02. 2019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마음을 담은 편지] #17

어떤 회사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였습니다. 우리는 시스템을 납품하고 그 회사는 프로젝트 매니저(PM) 역할을 맡고 있었죠. 하지만, 고객과 다리 역할을 제대로 못해 지리멸렬하게 두어 달을 쫓아 다녔습니다. 업무 협의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으니, 할 일이 두 세배 쌓였어요.


지난 주 또 그들의 일때문에 지방으로 출장갔습니다. PM사는 임원과 팀장님 한 분이 같이 갔죠. 납품하고 설치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전에 제대로 셋업하기 위한 사항들을 요청했어요. 당연히 준비됐을 줄 알았는데 고객과 회의 약속조차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어이가 없었죠. 짜증 났습니다. 무작정 찾아온 제가 이들(고객)에겐 불한당처럼 느껴질 거 같았어요. 협의부터 다시 해야 됐습니다. 그것도 고객을 달래가면서 말이죠. 마음 같아선 '알아서 하라'며 그냥 서울로 올라오고 싶었습니다.


할 일 아닌 일까지 하려니 자꾸 울컥거렸어요. 그럼에도 시스템을 설치했죠. 미안했던 건 알았던지 PM사 임원분은 '왕차장님 죄송해요. 이왕 내려 왔으니 할 수 있는 일 지원 좀 부탁 드립니다. 이따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라며 사과하더군요.


점심시간, 고객사를 나와 차로 식당을 찾아 가는데 은근히 기대 됐어요. '이 아저씨들 뭘 사줄까?' 맛있는 음식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고기는 먹겠지?', '아~ 회는 싫은데...' 찾아간 식당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국밥 집이었어요. '어라?'


한우 소머리 국밥이 7천원, 닭곰탕이 7천원, 매운 맛도 있는 데 역시 7천원이었습니다. '그래~ 점심 시간인데 뭐 얼마나 거창한 걸 먹겠어' 싶었죠. 그래도 '특' 만원짜리 메뉴도 있었습니다. '저거 먹을까?' 왠지 보통을 시켜 먹기엔 아까웠어요.


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이 분들때문에 하는 거니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권하지도 않고 두 분은 보통을 시키더군요. 눈치가 보여 저도 보통을 먹었습니다. 서울 어느 곳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그런 맛이었어요. 일부러 찾아올 맛집은 아니었습니다.


밥을 다 먹고 계산하는데, PM사 과장님 7천원을 꺼내 임원 분에게 주더군요. '같은 회사 직원은 뿜빠이(1/N) 하는구나', 저도 예의상 만원을 드렸어요. 그 임원분 냉큼 받더라고요. '뭐야?', '점심밥도 안 사주는 거야?', '이봐~ 난 당신들 일까지 하고 있다고...'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습니다.


식당을 나오며 표정이 스스로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어요. 임원분이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고 들어갈까?'하는 데 그 과장님, '별로요~' 하는 데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그 순간 옹졸하게도 '내가 일 잘 해주나 봐라' 마음을 먹었어요.


고객사로 다시 들어가는 데 지쳤습니다. 별의 별 마음을 먹어서 그런가봐요. '다 같이 회사 일하는 사이인데....', '내가 그까짓 밥 얻어 먹으려고 일하는 거 아니잖아?' 싶다가도 '당신들 때문에 이 고생하는 데 밥 한끼 안사?'로 귀착됐습니다.


꾸역꾸역 밤까지 마무리했어요. 늦었지만 서울에 가려는데 일이 꼬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PM사 과장님 고객사에서 시스템 모니터링을 하기로 했는데 갈 수 없는 일이 생겼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슴이 턱 막히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울화통이 터질 뻔 했죠.


결국 하룻밤 자고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상 '술 한잔 하자'는 말 한 마디 없이 숙소로 잡은 모텔로 쏙 들어가더군요. 먹자고 해도 거절하려했는데, 어찌나 얄밉던지요. 그저 '일'로만 생각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속은 느낌과 더불어 괘씸했죠. 이들의 이름이 전화기에 뜨면 끔찍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저 역시 일을 진행할 때 과정과 효율만 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일'만 생각할 수 없겠더군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결국 중요하지 않을까요?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사야 할 사람이 있는지 떠올려봤습니다.



제주도에서 먹은 굴국밥


.

.

.

from, 지상 드림

https://brunch.co.kr/@jisangwang

.

P.S: 아직도 그 밤이 기억나요.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1박까지 하며 일을 도와줘야 하는 게 어찌나 화가 나던지요. 나중엔 그런 상황을 이해했지만, 밥 한 끼 얻어먹지 못했다고 이렇게 옹졸해지나 제 자신을 탓하기까지 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타민 휴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