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은 편지] #18
타야 할 버스가 먼 발치로 지나갔습니다. 조금 일찍 나왔으면 탈 수 있었다며 투덜댔어요.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발치에 뭔가 차였습니다. 지갑이었죠. 주었다가 도둑으로 몰리지 않을까 잠시 망설였다가 집었어요.
현금 오만원과 신용카드가 많았습니다. 공짜운 없는 제겐 드문 운빨이었죠. 주민등록증을 보니 주인은 남자입니다. 주변에 닮은 사람은 없었어요. 잃어버린 사람이 다시 올 텐데 바닥에 그대로 둘까 싶었지만, 다른 사람이 가져갈 거 같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갈등이 일어났어요. 현금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지갑 찾아줄 수고에 대한 비용으로 가져도 괜찮을 거 같았어요. 현금만 빼고 우체통에 넣으려 했습니다.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 자꾸 지갑이 무거워졌어요. '오만원으로 뭐할 거야?'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친구들 혹은 지인에게 '이걸로 술이나 밥 사면 기분 좋을까?' 아닐 거 같았습니다. 무엇을 배우거나, 영화나 공연을 본다는 등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재미없을 듯 싶었습니다. 당장 오만원이 필요한 결핍도 없었죠. 하지만 갖고 싶었어요. 돈이니까.
얼마 전 아이폰을 잃어버렸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알았는데, 전화하니까 꺼져있었죠. 분명히 누군가 주었을겁니다. 다른 사람도 찾아주지 않는데, 내가 왜 지갑을 돌려줘야 하는지 오기가 났어요. 바보 같았어요.
그 사람은 오만원보다 신분증과 신용카드 찾은 걸 감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오백만원도 아니고 오십만원도 아닌 오만원을 어떻게 할지 결정 못하는 자신에게 짜증났어요. 이번에 갈팡질팡하는 나를 깨자는 마음에 '갖자'고 결심했어요.
다시 어떻게 쓸지 생각하는데 썼을 때 생길 죄책감이 상상됐습니다. '돌려주자' 싶자 계속 이렇게 착한 척 살 수 있을까. 아닙니다. 어느 땐 비겁하게 침묵할테고 은근슬쩍 내 것, 내 몫, 내 성과인 양 할 때도 있겠죠. '그러면 일관성을 지켜야지~ 오만원, 다시 가져'.
몇 년 전 갔던 템플 스테이, 거기서 겪었던 게 생각났습니다. '평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기 보다 순간순간의 옳음을 택하는 게 중요하다' 미황사 주지 스님이 말씀하셨죠. 앞으로 쭉 옳게 살 확신이 없다고 당장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릴거야?
'오만원 갖고 그만큼 자책할래? 없이 떳떳할래? 오만원 없어도 살 수 있잖아' 주머니에 있던 지갑을 꺼내 냉큼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너무 급했나?' 싶어 피식 실소가 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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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왕마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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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버스를 눈앞에서 놓쳐 운이 없었죠. 하지만 떨어진 지갑을 발견했습니다. 왠 떡이냐 덤볐지만, 곧 갈등이 생겼어요. 그 안에 있던 현금을 가질지 말지 고민했습니다. 이십여분 맹렬한 번민이 찾아왔어요. 급기야 착한 척 하려는 마음 자체가 위선이라며 스스로 공격했습니다. 그 현금은 오만원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