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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May 21. 2022

같이 죽자

[마음을 담은 편지] #22

어머님을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힘듭니다. 제가 아픈 것도 아닌데 집에 오면 진이 빠지네요. 거동이 불편하셔 부축하는건 어렵지 않습니다. 정작 힘든 건 당신에게 향하는 성질 때문이죠. 근근이 일상을 살아갈 뿐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담배를 펴고, 끼니는 대충, 집 밖에 나서지도 않는 등 평소 몸 관리를 전혀 안합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병원만 가면 사소한 일에도 잔소리가 주구장창 나옵니다. 병원을 나서는 길, 쌓여있던 답답한 마음이 결국 '자꾸 말 안 들으면 요양원에 보내 버릴 거예요' 모진 말이 되어 나옵니다.


마음 상한 당신 역시 한 승질 내면 저 역시 씩씩거리며 서로 침묵하죠. 모자의 대화가 이렇듯 단순한 안부 묻기 아니면 잔소리, 그렇지 않으면 침묵입니다. 볕 좋은 날 근처 공원으로 쉬엄 산보하거나 친분이 있는 분들과 식당에서 먹고 싶은 걸 사 드시면 좋을 텐데...


당신이 젊었을 때는 집에 붙어 있을 새가 없었죠. 책임이 짜증나 더 하기 싫은 경우처럼 밖으로 다녀도, 제가 눈에 밟혔는지 작은 일에도 자주 꾸지람을 주었습니다. 언젠가 뭘 잘못했는지 호되게 혼났는데, 와중에 여전히 기억나는 말이 있어요.


'같이 죽자'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인데,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참 무서웠나 봅니다. 들을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던거 같아요. 정말 죽을까 봐.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눈물에 콧물까지 흘리며 싹싹 빌었습니다. 엄마의 화를 가라 앉히기 위한 눈치였던 듯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심정도 느낀 거 같아요. '내가 없으면 엄마는 잘 살 수 있을 텐데...', '엄마 걱정거리는 나구나', '나는 짐이야.'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감정들은 가면을 바꿔가며 지금까지 쫓아 다녀요. '나'를 대표하는 트라우마가 되었죠.


뚜렷한 생각은 아니지만 가슴 한 켠 태어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늘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사는 데엔 뭔가 자격을 갖추어야만 할 듯 불안했었요. 똑같은 짓을 당신에게 그대로 돌려 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못난 줄 알지만 응어리로 남아 불쑥불쑥 떠올라요.


유년 시절의 많은 것들에 용서가 필요하지만 어려워요. 잘 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 말씀대로, 책에 쓰인대로 마음 하나만 바꾸면 되는데 마주하면 저 역시 잔소리가 먼저 나와요. 그럴 때면 성장을 위한 배움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나는 왜 뜻대로 되는 일이 없을까?, 가족은 친밀하고 오붓해야 되는거 아냐? 등등' 어릴 때부터 풀리지 않는 온갖 문제들에 어머니를 핑계 삼았습니다. 지아비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던 엄마도 그랬겠지요? 지금도 어려운 시절인데 몇 십 년 전에는 어땠을까요? 아이를 키워본 적 없어 상상할 수가 없네요.


이젠 제가 엄마의 보호자가 됐습니다. 대부분 병원에 모실 때죠. 알아서 잘 챙겨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걱정되고 부담스러워 잔소리로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머니에게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그때 같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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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쓰는 편지입니다.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글쓰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지막 편지를 쓴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들이 교훈이 되었는지 강박관념처럼 짊어메고 다니던 '잘쓰자', '잘하자', '잘보이자' 그리고 '잘살자' 등등 '잘' 마음을 풀고 있습니다. 좀 못하면 어떤가요. 힘 좀 빼고 살고 싶습니다. 그리 마음 먹으니 이제야 글을 조금씩 쓰네요. 간간이 소식 전하고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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