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과 만나기 바로 직전 나의 관계패턴 이야기
섭식장애가 본격적으로 발현이 되기 직전 나는 관계에 중독되어 있었다.
누군가와 늘 연락하고 있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항상 어떻게 서든 관계를 이어가야 마음이 놓였다. 상대의 답장이 늦으면 바로 실망하고 상처를 받았지만 이런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표현을 했다가 상대가 나를 싫어하게 될 것 같았다.
언제나 관계에서 나는 을의 위치에 있었다. 어떻게 서든 필사적으로 상대가 나를 떠나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배려하고 포기해서라도 관계를 이어가야만 했다.
한 마디로 호구를 자처했고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관계에 미쳐있었다.
서로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독극물을 마시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관계가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온 정신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미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빠져나오기 어려운 관계.
서로를 해치고 파멸로 이끈다는 것이 뻔히 보이면서도 끊어내지 못하고 지속할 수밖에 없는 관계.
그것이 바로 독성관계이다.
독성관계란, 주도자가 희생자에게 마치 독극물을 퍼트린 것처럼 정신을 파괴하는 독성을 퍼트리는 관계를 말한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권순재>
항상 목이 말라있다. 쩍쩍 갈라진 황폐한 사막에 어쩌다 물 한 방울 조금 생기면 혀로 입 안을 축여가며 살아간다. 목이 말라있으니 그것이 독이 든 물이든 똥이든 상관없이 어쩌다 누군가 주는 물에 허겁지겁 받아마셔야 한다. 그래야만 이 척박한 땅에서 버티며 살아갈 수 있으니.
나의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구멍이 뻥 뚫린 듯한 공허함이 항상 감싸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아무나 만났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호감을 표현하면 그 사람이 누군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만났다. 마치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이러한 관계패턴은 항상 파괴적인 관계, 중독적인 관계로 이끌어 갔다.
중독적으로 흘러가는 그 관계에 저항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종속되어야만 그나마 힘을 받고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스스로 아름답다 얘기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을 아름답게 보지 못했다. 거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보며 얼굴 크기와 피부 색깔, 옷 스타일, 팔뚝살, 허벅지, 다리 굵기를 살펴봤고 상대가 원하는 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안간힘을 썼다. 메이크업을 짙게 하고 검은 피부를 최대한 하얗게 만들었다. 작은 눈을 위해 위아래로 짙게 스모키 화장을 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가리고, 또 가렸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모습으로, 원하는 성격과 사람이 되었다. 상대가 바라는 모든 것을 했다. 그래야만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이성은 나르시시스트 성향의 띈 사람이었다. 그들은 항상 자신만만했고 리더의 위치에 있는 듯했으며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으로 보였다.
특별히 나르시시스트 성향 중에서도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가진 이성과의 만남은 더욱 파괴적이고 독성관계로 나를 이끌었다. 그의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엄마가 된 듯 희생하며 상대가 쏟아내는 감정을 그대로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받아줘야 했다. 나는 그들에게 철저하게 가스라이팅 당했다.
독성관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많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와 혼자 살아갈 자신도, 능력도 본래부터 가지지 못한 것 같았다. 그저 누군가 이끌어주고 나를 진두지휘해줄 사람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점점 스스로를 잃고 바보가 되어갔다.
B와는 함께 어울리던 그룹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자연스레 만나게 되었다.
나르시시스트 성향의 그는 초반에 나의 모든 것을 들어주었다. 달콤하고 환상적인 단계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나의 상처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척을 하였고 자신이 이 모든 아픔과 고통을 다 지켜주고 해결해줄 것처럼 그렇게 얘기했다. 나는 그가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처를 수용해주는 듯한 제스처에 마음을 열게 되었다.
만난 지 세 달이 되어 갈 때쯤 조금씩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자신의 뜻대로 할 것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옷을 입는 것부터 시작해서 인간관계까지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했다. 조금이라도 노출된 옷을 입으면 소리 지르며 화를 냈고 자신이 사준 옷만 (주로 스포티하게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 입도록 했다.
'전부 가리고 다녀. 안 그러기만 해 가만 안 둬.'
'다 사랑해서 그러는 거잖아. 내 맘을 왜 그렇게 몰라?'
그리고 주변에 친했던 남사친들과 SNS에서 친구를 맺었던 것에 관여하기 시작하더니 조금 지나자 아예 친구를 끊는 것을 요구했고 나중에는 아예 대놓고 내 핸드폰을 가져가 강제로 연락처를 지웠다.
'얘 만날 필요 없잖아? 굳이 만나려고?'
'안 만날 거지? 빨리 안 만나겠다고 말해. 이렇게 질 안 좋은 애랑은 엮이지도 마.'
'남자는 나만 만나야지 당연히.'
처음에는 이성의 친구만 연락을 끊으라고 하더니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친한 동성 친구들과 주변 지인까지도 만나지 못하도록 하면서 연락처조차 없애라고 했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그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있었고 어느새 뒤를 돌아보니 내가 연락하는 유일한 사람들은 그와 그리고 나와 그가 같이 다니는 그룹밖에 없었고 그밖에 그와 만나기 전 내가 맺었던 모든 사람들과의 연락은 단절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삶의 모든 것을 관여했다. 옆에서 조종하며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다른 사람이 만진 손잡이를 잡지 못하게 했는데 나는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손잡이를 만지면 큰일 난다는 이유에서다. 지나가는 옆 사람과 조금이라도 스치지 못하게 했고 실수로 스치게 되는 그 순간 억장을 부리며 화를 냈다. 심지어 걸을 때 보폭까지도 통제했다. 난 말 그대로 그의 꼭두각시였다.
'난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잖아.'
'널 아껴서 하는 말인데. 너무해.'
얼핏 들으면 이런 말들은 달콤한 사랑의 표현 같아 보인다. 그래서 상대의 사랑하는 감정의 표현이고 이에 대해 거절하면 상대가 상처를 받을까 봐 그의 말을 다 들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사랑의 표현이 아니다. 당신을 하나의 있는 그대로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자신이 마음대로 휘두르며 당신을 해치는 엄연한 폭력에 불과하다. 마치 어린애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인형의 손과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가지고 놀 듯이.
주변 사람들이 그가 이상하고 우리까지 못 만나게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는 얘기를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항상 이상한 느낌이 맴돌았다. 지금 뭔가 잘못되고 있는 듯한 느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끊어낼 수 없었고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그런 사람은 아니야.'라고 하며 방어적으로 나섰다.
끊어낼 마음의 힘도,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그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래서 숨이 조여 오는 독성관계 속에 고통을 느끼면서도 누군가 나를 위해 대신 삶을 결정해주고 해결해주기를 바라며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고는 그렇게 관계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그러다 한참 시간이 지나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의 SNS를 우연히 보다 다른 여자와 함께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을 목격했다. 아무리 봐도 내용이 심상치가 않았다. 누가 봐도 연인끼리 주고받는 내용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이게 뭐냐고 물어봤지만 얼토당토 하지 않은 변명들로 오히려 화를 내며 반박했다.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얘는 내 친척일 뿐이야.'
'그냥 서로 장난친 거 가지고 뭘 그래.'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친척간에 벌어지는 대화는 아니었다. 너무 부적절했다. 엄연히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고 선을 넘는 대화였다.
크나큰 충격에 휩싸였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난 그저 사랑받고 싶었을 뿐인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그와 어떻게 결론을 지어야겠다. 얘기를 해야겠다. 사과를 받아야겠다. 관계를 끝내야겠다.'와 같은 생각조차 할 겨를도 없이 한 동안 그저 멍 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종속적인 관계 속에 있다 보니 스스로 어떤 결정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시점에 와서는 그 사건 자체가 옳은 행동인지 아닌지 구분조차도 할 수 없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다시금 조언을 구했고 그들은 당장 헤어질 것을 권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그 어떠한 선택도, 결정도 하지 못했다.
독성관계 속에 세뇌당했던 처참한 결과였다.
헤어지고 싶었다. 죽고 싶을 만큼 헤어지고 싶었다. 점차 말라 비틀어 가는 나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앞으로 그와 미래를 그리고 싶지 않았다. 평생 그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아들 돌보듯 보살피면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모든 관계를 끊고 그의 노예가 되어 그렇게 살 것을 생각하니 지옥을 미리 맛본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관계를 벗어날 수 없던 이유는 물론 독성관계 속에 잠시 잠깐의 환상 속 달콤함도 있었지만 그와 내가 함께 무리 지어 다닌 그룹 때문이었다. 그와 나, 그리고 몇 명의 친구였다. 우리는 거의 매일 몰려다녔고 함께 새벽까지 놀면서 지냈다.
이들 과의 관계는 학창 시절에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끈끈한 결속감, 소속감.
그것이 나를 그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게 만들었고 텅 빈 마음이 조금이라도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관계 속에 나의 전부를 걸고 점점 중독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몰두하고 집착했던 무리와의 관계가 헤어짐으로 인해 깨져버리게 되는 것은 그 당시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헤어진다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들에게 피해 주는 것이라고 느꼈고 나로 인해 관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 불안했다.
무엇보다 헤어짐으로 인해 처음 느꼈던 이들과의 끈끈한 관계가 끝나버리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던 것이다.
관계를 뺀 나는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우주 속에 버려진 것 같았다.
관계로 살아갔고 관계를 위해 살아갔다.
아무도 나를 예뻐해 주고 사랑해주지 않은 그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이 세상에 혼자가 되어버린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파멸로 이끄는 독성관계라는 철장 속에 철사로 꽁꽁 묶어 나를 가두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