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와의 헤어짐을 도와준 구원자 A
내가 만난 B와의 독성관계는 2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아무리 의지적으로 끊으려고 해도 도저히 끊을 수 없었다. 헤어짐을 고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공포 수준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알면서도 선뜻하지 못했던 것. 헤어지자는 얘기를 하면 분명 본인이 죽겠다고 협박한다거나 나와 내 주변 가족, 지인에게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거나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굴레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비참했다.
이별을 위해 스스로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다.
은연중에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독성관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 그러니까 힘이 센 누군가 내 곁에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B와 2년이 넘게 독성관계로 보내다 때마침 B가 해외로 잠시 여행을 갔을 때쯤 그 관계를 끝내줄 새로운 존재, A가 내 곁에 나타났다. B와는 달리 A는 정말 듬직한 사람이었다. 어떠한 위험에 처해있더라도 나를 구해주러 올 사람처럼 참 강인하고 남자다웠다. B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더욱 의지가 되었다. 그렇게 서로 친한 오빠 동생 사이가 되었다.
B에게 헤어짐을 얘기하기 위해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무서웠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연락을 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뭔가 확실히 끝맺음을 맺고 싶었다. 전화로 어쩔 수 없을 만한 핑계를 대면서 얘기했다.
"부모님이 공부에만 매진하라고 하셔.
더 이상 만나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얘기했는데 막상 그의 반응은 예상을 뒤엎었다.
사귈 때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위협을 주더니, 헤어지자고 하니 갑자기 저자세를 취하고 온갖 미사여구를 쓰면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내 곁에 있어달라고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너무 황당했다. 갑자기 소나기를 쫄딱 맞은 길 잃은 강아지 같이 불쌍한 목소리를 내며 나를 붙잡았다. 한참을 그렇게 실랑이하다 1시간이 넘게 통화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헤어짐을 얘기한 내가 오히려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죄책감이 온몸에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동정심을 유발하며 온갖 불쌍한 표정의 그의 모습은, 표면적으로 봤을 때 나에게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전혀 아닌 것만 같았다. 그 당시 상황만 보면 그는 애인에게 버림받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있고 나는 그를 무참하게 내치는 애인 같았다. 미안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아직까지도 내가 했던 '미안해.'라는 그 톤과 말투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후 B는 나에게 문자, 전화를 수십 통, 수백 통을 했다. 그 당시 차단하는 기능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지금도 이런 나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만큼 삶에 있어 무력했던 것 같다. 나를 보호할 어떠한 장치도 마련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 어떻게 자신을 아끼고 돌봐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타인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지 조차 경계를 세우는 그 어떠한 것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단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잠시 핸드폰을 꺼놓는 등의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헤어진 지 며칠 후, 매일이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리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치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잘못 선택을 한 것 같았다.
내 결정이 다 틀린 것 같았다.
다만 내가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상대에게 가스라이팅이 오래 동안 지속된 경우, 자신이 선택한 결정과 의견이 상대와 반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잘못된 선택일 것이라고 이미 세뇌당한 상태에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나를 지키면서 보호해야 하는 그 작은 선택조차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고 도무지 믿을 수 없으며 심지어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일상을 살며 상대를 위한 선택밖에 하지 않게 된다.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면 잘못된 것이며 상대를 위한 선택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점 처리된다. 이미 상대에게 종속되어버린 관계 속에서 자신을 위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상실된다.
우리의 뇌는 독성관계에 이미 세뇌당할 대로 당해있고
그들의 압도적인 목소리에 오염되었다.
B가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당했음에도 어쩜 불쌍하다는 생각을 할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땐 그랬다. 그렇게 처참하게 짓밟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구원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이면에는 정작 구원하지 못한 자기 자신, 세상으로부터 내쳐진 '나'가 숨어 있다. 보통 원가족으로부터 정서적인 돌봄과 받아들여짐을 경험하지 못한 경우 이를 대체하기 위해 본인이 구원자 역할을 하게 되는데 정작 자신의 구멍 난 마음은 깊숙한 저 편의 무의식에 처박아 두고 방치하게 된다.
그리고 외부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를 돌보려고 애씀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구원하려고 한다.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을 자처하며 이를 지속하다 보면 언젠가 상대가 변화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독성관계가 자신에게 온갖 상처로 다가온다 하더라도 손쉽게 끊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죄책감에 시달리자 나는 A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그는 함께 있어주었다.
헤어짐을 고하고 B로부터 연락이 온 지 4주가 지날 때 즈음이었다.
핸드폰을 다시 키니 어김없이
'어디야.' '뭐해.' '제발 날 버리지 마.' 등의
문자와 전화가 수십 통이 와있었다.
이윽고 핸드폰을 킴과 동시에 전화와 문자가 계속 오기 시작했다.
'나 지금 나왔어...'
'1시간 후면 너희 집에 도착해.
'지금 전철 타고 가고 있어.'
'몇 북후면 동네 방향 버스타.'
'나 내렸어. 너희 집 앞이야.'
'제발.. 제발. 부탁이야. 한 번만 얼굴 좀 보여주면 안 돼?'
'기다릴게.'
'부탁이야. 제발.'
그때 나는 A와 함께 있었는데 계속되는 문자와 전화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보고 A가 대신 통화를 하겠다고 했다. 마치 친오빠가 동생 전 남친에게 한 마디 훈계를 하려는 듯이 말이다.
'헤어졌다고 들었는데, 싫다고 하는데 이제 그만
연락하는 게 좋겠네.'
'많이 힘들어하니까 그만 이제 포기했으면 좋겠다.'
나로서 A가 통화를 했던 것이 천만다행인 것은 B는 A에게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위치였다.
같은 학회 선배였고 A가 학생회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반발하거나 화를 냈다가는 앞으로 본인의 커리어나 경력을 쌓는데 악영향을 끼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자신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 반대로 자신이 쉽게 짓밟으며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한눈에 바로 포착할 수 있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약육강식의 피 튀기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본인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한 없이 작아지면서 아첨과 온갖 아부를 해서라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무섭기도 하고 단호하며 그러나 젠틀했던 그의 말투에 몇 년 동안 묵은 오물들이 한꺼번에 바닷속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B와 독성관계를 맺으며 하루 종일 머리가 마취총을 맞은 듯 얼얼하고 멍했었다.
브레인 포그처럼 자욱한 연기가 뇌에 가득 차있었다. 자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호령과 채찍, 평가와 판단 섞인 목소리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마치 로봇에게 그들이 원하는 오더를 내리고 버튼을 누르면 그때서야 정지되었던 로봇 눈에 불이 켜지면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A와의 통화를 끝으로 헤어짐을 고한 후 집착적으로 왔던 그의 연락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넘는 지독한 오물들로 가득 찬 독성관계는 A로 인해 단번에 끝이 난 것이다.
아! 드디어 난 해방이구나! 독성관계로부터 영원히 안녕할 수 있겠구나!
이제 가슴을 쫙 펴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