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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Sep 26. 2017

주정강화 와인 3형제 이야기 (2) 포르투갈 포트 와인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깊은 달콤함의 유혹, 포트와인


포트와인은 포르투갈을 대표하지만 사실 영국인에 의해 태어났다. 셰리와인처럼 포트와인도 포도를 증류해 만든 브랜디가 탄생한 이후 생겨난 주정강화와인이다. 오랫동안 유럽 와인시장의 큰 손은 영국이었다. 영국은 포도가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자체적으로 와인을 만들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와인은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프랑스 와인이 급격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영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국인들은 프랑스 와인을 특별히 좋아했는데 문제는 영국과 프랑스가 정치적으로 서로 앙숙이었다는 것이었다. 툭하면 양국 간에 전쟁이 벌어져 와인 수출과 수입이 어려워지는 통에 영국 상인들은 수입처를 다각화해야만 했다. 이탈리아 와인은 프랑스 다음으로 유명하지만 배편으로 실어 오기엔 지리적으로 너무 멀었다. 까다로운 영국인의 눈에 띈 곳은 바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17세기 영국인들은 포르투갈 도루 Douro강 상류의 지역에서 품질 좋은 적포도가 생산된다는 것을 알고 와인 제조에 적극 뛰어들었다. 생산과 수출은 대부분 능숙한 영국 상인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샌드맨 Sandeman, 그라함 Graham 등 오늘날 유명한 포트 와이너리의 이름이 대부분 영국식인 이유다. 이렇게 생산된 와인은 깊고 풍부한 바디감을 자랑했다. 당시 고급 와인의 대명사로 통하던 프랑스 보르도 와인에 비견될 정도였다. 강 상류 계곡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강줄기를 따라 항구도시 오포르토 O’porto(현재의 포르투)에 모여 수출됐다. 이때부터 포르투갈 산 와인은 항구의 이름을 따 포트와인 Port wine으로 불렸다.



포트 와인 수출은 1703년에 영국과 포르투갈 간에 맺은 메이덴 조약을 계기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조약은 포르투갈이 영국의 직물을 수입하는 대신 영국은 포르투갈의 와인을 수입할 때 프랑스 와인보다 관세를 1/3 적게 낸다는 내용이다.


포트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하게 된 이유가 영국인 선원들이 포트와인을 영국으로 실어가는 도중 와인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사실 셰리와인에 대한 이야기다. 주정이 강화된 포트와인이 보존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실은 영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정강화와인으로 만들어졌다.


포트와인 때문에 묵직하고 달콤한 와인이 유행을 한 건지 때마침 포트와인이 유행의 물살을 잘 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세기를 기점으로 영국에서 포트와인이 큰 인기몰이를 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는 법.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한 몸에 받던 포트와인에게도 악재가 찾아왔다.



우선 영국인들의 변덕 탓이 컷다. 영국에서 무거운 느낌의 와인보다는 가볍고 산뜻한 와인을 선호하는 쪽으로 유행이 바뀌자 스페인의 셰리와인이 다시금 인기를 얻었고 포트와인의 점유율은 곤두박이칠 쳤다. 정치적인 영향도 있었다. 19세기를 맞이하자마자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과 이후 내전을 차례로 겪으며 포르투갈 와인산업은 정체됐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1870년경부터 포도나무에 기생해 나무를 고사시키는 해충인 필록세라가 유럽에 상륙해 거의 대부분의 포도밭을 초토화시키는 참사가 벌어진다. 포트와인의 주 생산지였던 도루 계곡 인근도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필록세라로 인해 황폐화된 포도밭은 20세기가 돼서야 겨우 회복세에 이를 정도로 심각했다. 역경의 시간 탓에 발전의 타이밍을 놓친 포트와인은 와인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포트와인은 선진 와인 기술을 받아들이고 연구를 통해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였고 다시금 와인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포트와인은 단 맛이 특징이지만 요즘의 추세에 맞춰 달지 않은 드라이한 포트와인도 생산되고 있다. 셰리와인이 화이트와인을 이용한 주정강화와인이라면 포트와인은 레드와인을 사용하며 만드는 방식도 크게 차이가 난다.

  

우선 포트와인은 일반적인 레드와인을 만드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압착한 포도즙을 발효시킨다. 발효과정에서 효모에 의해 당분이 알코올로 전환되는데 알코올 농도가 10퍼센트쯤 됐을 때 브랜디 원액을 첨가한다. 효모들은 갑작스러운 알코올의 습격에 정신을 잃거나 목숨을 잃어 발효가 중지되는데 효모가 마저 소화하지 못해 당분이 남게 된다. 설탕을 따로 넣지 않았음에도 달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포트와인은 18~20퍼센트 정도의 알코올 농도를 갖는다. 종류에 따라 셰리 와인을 만들 때 쓰는 솔레라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며, 일반 와인처럼 단일 품종 단일 빈티지를 오크통에 넣어 숙성시키기도 한다.



포트와인은 셰리와인과 비교해 오감적 특성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화이트와인으로 만든 셰리와인이 가벼움을 기반으로 세련된 풍미를 보여준다면 포트와인은 달콤하면서 진한 과일향과 함께 묵직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셰리와인이 주로 식전주로 입맛을 돋우는 역할이라면 포트와인은 식사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식후주로 제격이다.  


포트와인이 세계 와인시장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한 데 비해 포르투갈의 일반 와인은 오랫동안 저평가돼왔다. 그도 그럴 것이 상등품의 포도는 죄다 포트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됐고, 나머지 포도로 국내 소비용 와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기술과 자본이 본격적으로 투자되면서 급격한 질적 발전을 이뤄낸 포르투갈 와인은 현재 와인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서고 있다. 포르투갈에 왔으면 포트와인 말고도 포르투갈 와인을 마셔보라는 소리다.


만약 포르투를 방문했다면 저녁시간 매일 같이 아름다운 노을이 파노라마처럼 멋지게 펼쳐진 도루 강변으로 가보자. 마치 포트와인의 색처럼 붉게 물드는 도루 강가를 바라보며 마시는 포르투갈 와인 한잔이면 어느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테니 말이다.



<다음화에서는 주정강화 3형제 중 셋째, 이탈리아의 마르살라 와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절찬 판매 중인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글항아리,2017)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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