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이 와인 달아요?"
와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시절, 와인을 선택하는 기준은 오직 두 가지였다. 달거나 혹은 달지 않거나. 그러다 보니 와인을 고를 때 물어볼 것이라곤 “달아요? 안 달아요?” 뿐. 당도와 소위 바디감이라고 하는 걸 그래프로 친절하게 표시해 놓았으면 좋으련만, 육안으로 보고 할 수 있는 판단이라곤 라벨이 예쁜가 정도다 전부였다. 나중에야 라벨이 예쁜 것과 맛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알고는 큰 충격에 휩싸였던 적이 있었다.
와인 꽤나 마신다는 사람들에게 당도가 높은 와인 즉, 스위트 와인은 와인 먹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나 먹는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지만, 스위트 와인과 드라이 와인은 단지 그 용도가 다를 뿐 우열의 관계에 있는 건 아니다. 서양식 코스 요리에서 드라이 와인은 음식 맛을 돋움과 동시에 입안에 남은 음식의 맛과 향을 씻어줘 다음 음식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드라이 와인이 차분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라면 스위트 와인은 유흥에 방점이 찍혀있다. 주로 식사의 막바지에 달달한 디저트와 함께 등장해 식사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용도다. 어디까지나 그 역할이 다른 것이다.
개성 넘치는 주정강화 와인의 세계
와인의 세계는 넓고도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독특한 개성과 풍미를 자랑하는 특별한 와인이 있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포트와인과 셰리와인 등으로 대표되는 주정강화 와인이 그것이다. 문자 그대로 주정 즉, 알코올을 첨가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을 뜻한다. 보통의 와인과 비교하면 한층 더 선명하고 풍부한 맛과 향을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같은 주정강화 와인이라고는 하지만 포트와인과 셰리와인은 그 제조방식과 개성이 전혀 다르다. 포트와인의 경우 레드와인을 만드는 발효과정 중간에 증류주를 첨가한다. 발효를 인위적으로 중단해 미처 알코올로 변환되지 않은 포도의 당분으로 인해 단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셰리와인은 주정 강화한 화이트 와인을 일부러 산화시켜 만든 것으로 달지 않고 드라이한 맛을 낸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주정강화 와인 마르살라는 포트와인과 셰리와인의 방식을 혼합해 만들어진다. 산화시킨 화이트 와인에 발효를 중지한 포도즙과 한 번 끓인 포도즙을 섞어 만드는 데 포트와인과 셰리와인과는 또 다른 독특한 풍미를 낸다. 이외에도 끓여 만드는 마데이라 와인과 약초를 첨가한 베르무트도 주정강화 와인 패밀리에 속한다.
전 세계 바다를 누빈 셰리와인
주정강화 와인의 역사는 스페인의 셰리와인으로부터 출발한다. 오늘날 셰리와인이 생산되고 있는 스페인 남부지역은 기원전 11세기 페니키아인들이 처음 포도나무를 심은 시점부터 중요한 와인 생산지 중 하나였다. 셰리와인은 원래 남부 헤레즈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의미했다. 이 지역은 아랍의 무어인들에게 정복당했던 당시 이름이 셰리쉬 Sherish 였는데 여기서 셰리라는 이름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보통의 와인이었던 셰리와인이 주정강화완으로 변모하게 된 것은 스페인이 무어인의 지배를 받던 9세기부터 15세기 사이 어느 시점으로 추정된다. 주정강화 와인은 주로 와인을 증류시킨 증류주 브랜디 Brandy를 소량 첨가해 만드는 데 증류 기술이 당시 무어인들에 의해 유럽에 전파됐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에서 음주는 죄악이자 금기였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어인에게 와인은 마시지도 못 할 무용지물이었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은 쓸모가 없어 갈아엎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무어인은 그렇게 꽉 막힌 사람들은 아니었다. 당시 이 지역 와인 무역으로 얻을 수 있는 수입이 꽤 짭짤했고, 피지배 계층인 기독교인들에게 와인을 빼앗는다는 건 곧 엄청난 저항을 야기할 거라는 걸 무어인은 알고 있었다. 비록 술을 금지하는 아랍 세력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여전히 와인이 유통됐다.
이 시기 증류기로 다양한 음료를 제조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는데 주정강화 와인도 그 산물 중 하나였다. 와인에 주정을 첨가하면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했는데 이 때문에 당시 먼 항해를 떠나는 선원들에겐 항해 필수품이었다. 선원들도 일반인들도 당시엔 먹고 취하려는 용도보다는 식수 대용으로 와인을 마시던 시대였다. 콜럼버스가 인도를 발견하기 위해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할 때에도, 항해왕 마젤란이 인도 동쪽으로 향할 때에도 어김없이 셰리와인을 한 가득 실었다는 기록이 있다.
셰리와인이 유럽에서 인기를 끌게 된 건 16세기다. 당시 영국의 군인이자 해적으로 유명했던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함대를 이끌고 스페인 헤레즈 인근 무역항인 카디스 Cadiz를 급습했다. 이때 항구에 있던 셰리와인 3000여 통을 탈취해 본국으로 가져가 경매에 넘겼는데 이것이 영국 상류층 사회에서 인기를 얻었다. 잇속에 밝은 영국인 상인들은 헤레즈로 달려가 셰리와인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셰리와인은 품질과 생산 측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당시의 셰리와인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19세기에 이르러 솔레라 Solera 방식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세련된 셰리와인이 완성됐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솔레라 방식은 오래된 와인에 같은 종류의 새로운 와인을 조금씩 섞는 방법을 뜻한다. 이렇게 하면 새로운 와인을 오랫동안 숙성시킬 필요 없이 어느 정도만큼의 숙성도를 유지할 수 있어 균일한 품질의 와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조 과정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자. 셰리와인을 만들기 위해선 우선 만들어진 화이트 와인을 오크통에 채우는데 이때 꽉 채우지 않고 일부러 상부를 산소에 접촉시킨다. 이렇게 되면 통 안에 든 와인 윗부분에 플로르 Flor라 부르는 흰 효모 막이 형성되는데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셰리와인만의 독특한 풍미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 와인은 솔레라 방식을 통해 숙성된 와인과 섞여 비로소 셰리와인으로 탄생한다. 의도한 풍미를 내기 위해 당도와 알코올 도수, 숙성기간, 주조방식 등에 다양한 변주를 주기도 한다.
셰리와인의 맛과 향
스페인 세비야 Sevilla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헤레즈 라 프론테라 Jerez la Frontera. 셰리의 고향답게 셰리와인을 판매하는 와인샵과 셰리 와이너리가 곳곳에 눈에 띈다. 스페인 내에선 셰리란 이름보다 지명을 따 헤레즈 Jerez, Xerez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예약했던 셰리 와이너리 투어를 놓쳐 허탈해하고 있자 와이너리 직원이 다가와 레스토랑 한 곳을 추천해주었다. 근처에 셰리와인 페어링(요리와 그에 어울리는 술이 함께 곁들여 나오는 방식)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곳이 있으니 꼭 가보라는 것이다. 찾아간 곳은 오래된 셰리 저장창고가 있던 건물을 개조한 라 카르보나라 La carbonara 레스토랑. 예상치 못했지만 이곳에서 셰리와인 특유의 가벼운 산미가 매력적인 투명한 피노 Fino부터 묵직한 향과 깊은 풍미를 갖춘 짙은 갈색의 올로로소 Oloroso 등 다양한 종류의 셰리와인과 안달루시아 전통 음식을 재해석한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가벼운 전체요리에서부터 생선과 고기를 사용한 메인 요리, 그리고 달콤한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각 요리마다 어울리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셰리와인의 향연을 맛보고 있자니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와인 하나가 이처럼 다채로운 개성을 뽐낼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하면서 동시에 와인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유럽 사람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섯 가지의 요리와 다섯 잔의 셰리 와인을 깨끗이 비우고 나니 어느새 눈이 슬슬 풀려왔다. 내가 마시고 있는 이 술이 주정을 강화한 와인이라는 걸 잠시 망각한 탓이었다. 혼자 온 손님이 점점 정신줄을 놓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종업원은 조용히 다가와 비운 잔에 셰리와인을 채워준다. 이 얼마나 넉넉한 인심인가. 주는 대로 받아 마시다가는 제 발로 숙소를 찾아가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식당을 나오니 아직 중천에 떠 있는 해가 낯설었다. 그 길로 곧장 인적 드문 광장의 벤치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겨울이었음에도 햇살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진 건 스페인 남부의 날씨 때문이었을까, 셰리와인 때문이었을까.
<다음화에서는 주정강화 3형제 중 둘째,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절찬 판매 중인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글항아리,2017)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