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댓글 공유 196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유럽, 맛 위를 걷다
by 장준우 Sep 12. 2017

포르투갈 사람들의 못 말리는 대구 사랑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소금의 발견은 불의 발견에 견줄 만큼 인류에게 중대한 사건이었다. 불이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고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면 소금은 음식을 저장, 보존시킴으로써 보다 먼 곳으로 나가 자연을 정복할 힘을 주었다. 바이킹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먼 항해를 떠나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소금을 이용한 염장식품 덕이 컸다. 이뿐 아니라 소금이 식재료와 만나면 맛을 선사해준다. 대표적인 것이 스페인의 하몽과 이탈리아의 프로슈토 등으로 대표되는 햄, 그리고 여기서 소개할 염장 대구, 바깔라우다.

 


 대구잡이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로부터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쪽 즉, 북동 대서양은 유럽에서 가장 풍부한 대구 어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거주한 바이킹족은 일찍이 대구를 바위에 널어 말리는 기술이 탁월했다. 대구는 살에 기름기가 없어 말려서 보존하기 쉬울 뿐 아니라 식성이 좋아 간단한 조업으로도 손쉽게 잡혀 바다에서 식량을 얻는 민족들에게 요긴한 식량자원으로 통했다.


바이킹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훨씬 이전부터 새로운 땅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대구를 쫓아 서쪽으로 항해했다. 그들은 아이슬란드를 지나 지금의 캐나다 뉴펀들랜드 지역까지 다다랐고 그곳에서 엄청난 규모의 대구 황금어장을 발견했다. 뉴펀들랜드에서 발견된 바이킹의 흔적은 그들이 그곳에서 대구를 잡아 말린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증명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하기 500여 년 전의 일이다.



  신대륙의 대구 황금어장은 오랫동안 비밀리에 부쳐졌다. 이곳의 존재는 바이킹과 이베리아 반도 북쪽에 살고 있던 바스크인만이 알고 있었다. 바스크인들은 대구를 찾아 목숨을 걸고 원양어업에 나섰다. 그들은 배 위에서 잡은 대구에 소금을 뿌린 후 해풍에 말려 가공했다. 이렇게 만든 대구 가공품은 운반하기에 좋고 보존력도 높아 인기를 끌었다. 말린 대구는 내륙지방의 고기나 치즈 등 특산물들과 교환되는 일종의 화폐의 역할도 했다.



유럽에서 대구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건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다.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한 대구는 사순절 육식을 금하는 기간에도 먹을 수 있는 동물성 단백질 식품이었다. 명민한 유대인들은 일찍부터 대구 가공과 무역에 뛰어들어 부를 쌓기도 했다.



  점차 원거리 항해가 보편화되면서 대구 가공품은 항해에 필수적인 식량으로 자리 잡았다. 바짝 말린 포르투갈의 바깔라우는 가벼울 뿐만 아니라 부피도 적게 차지해 장거리 항해 식량으로 안성맞춤이었다. 해안가를 끼고 있는 지중해와 카리브 연안, 아프리카, 인도의 몇몇 지역 전통요리를 살펴보면 유럽식 대구 요리와 비슷한 음식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들은 예외  없이 당시 유럽의 선박이 거쳐간 주요 거점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던 시절. 대서양 연안 황금어장에서 잡히는 대구는 미국인들에게 식량이면서 동시에 수입원이었다. 상등품의 대구 가공품은 주로 유럽으로 수출했고 질 낮은 하등품의 대구는 서민과 흑인 노예들의 몫이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흑인 노예들에게 대구요리는 후라이드 치킨과 같은 소울푸드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구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세계에서 포르투갈 사람들만큼 대구에 강한 열정을 보이는 민족도 없다. 조리법이 수백 가지가 넘어 365일 각기 다른 대구 요리를 먹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요즘엔 대구 말고도 먹을 것이 많아 수요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대구를 빼놓고는 포르투갈 음식을 이야기할 수 없다.


  포르투갈에서는 바깔라우 Bacalhau라 하고 스페인에선 바깔라오 Bacalao, 이탈리아에선 바깔라 Baccala 등으로 불리는 대구는 말리거나 염장한 대구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에겐 대구를 싱싱한 생물로 먹는 것보다 말리거나 염장한 대구를 물에 불린 후 요리하는 게 더 익숙한 방식이다. 유럽에서 소비되는 대구는 대서양 대구로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는 태평양 대구와는 다르다. 대서양 대구는 대평양 대구와 비교해 몸집이 상당히 큰 편이다. 덩치가 큰 대서양 대구는 1미터를 훌쩍 넘기도 한다.  



  과거 대구를 가공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소금에 절이는 염장과 바닷바람에 말리는 건조, 그리고 소금에 절인 후 바닷바람에 말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는 염장 건조 방식이다. 대구는 헤엄을 많이 치지 않아 붉은 근육과 지방이 거의 없는 흰 살이 대부분이다. 지방이 산화되면 산패한 맛이 나기 때문에 말리기 위한 용도로는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대구가 적합했다.


  음식을 말려 건조하는 방법은 오래된 저장법 중 하나다. 신선한 상태의 생선은 80%가 수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수분이 25% 이하가 되면 박테리아가 증식하지 못하고 15% 이하면 곰팡이도 생기지 않게 된다.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 동안 효소의 작용으로 인해 원래 맛보다 더 깊고 풍부한 풍미를 낸다. 건조법은 춥거나 더운 기후가 극단인 지방에서 사용하기 좋은 방법이다. 북유럽에서는 추운 겨울 바위에 널어 건조했는데 특별히 소금을 치지 않아도 낮은 온도 덕에 생선이 부패하지 않았다. 반대로 더운 지방의 경우 급속히 수분이 증발하기에 건조법이 유용했지만 온난한 기후의 경우 생선이 미처 마르기 전에 부패하기 쉬웠다. 이 때문에 기후가 온난한 중남부 유럽에서는 소금에 한 번 절인 후 말리는 방법이 널리 사용됐다.



  포르투갈 시장이나 식재료 상점에 가면 천장에 길게 걸어 놓은 바깔라우가 쉽게 눈에 띈다. 포르투갈의 바깔라우는 얼핏 보면 널따란 마른 널빤지처럼 보이는데 이걸 먹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드는 만큼 실제로 만져보면 굉장히 딱딱하다. 바깔라우를 요리하기 위해선 꽤 손이 많이 간다. 우선 나무판자 같은 바깔라우를 통째로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는 동시에 불려준다. 물 대신 우유에 담그기도 한다. 가능한 자주 물을 갈아줘야 하는데 고인 물에서 박테리아가 생성돼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며칠간 물을 갈아주는 수고를 거치면 나무판자 같던 대구는 신기하게도 원래의 통통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소금기를 완전히 빼지 않고 적당히 간을 맞춰 물에서 건지는 것이 기술이다. 같은 바깔라우라 할지라도 여기서 맛의 차이가 결정된다.


  이렇게 원상 복구된 대구는 생대구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풍미를 지니고 있다. 소금에 절여지는 동안 소금에 내성이 있는 효소가 단백질과 지방을 더 감칠맛 나는 분자로 분해한 덕이다. 쉽게 부스러지는 섬세한 생대구살과는 달리 탄력 있고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바깔라우를 굽고 볶고 지지고 튀기고 삶아 먹는다. 가장 단순하면서 접하기 쉬운 건 포르투갈 북부 미뉴 Minho지방 스타일의 바깔라우 Bacalhau A Minhota다. 덩어리째 썬 바깔라우를 튀긴 후 얇게 썬 감자튀김과 식초에 볶은 야채를 함께 내는 요리다. 바삭하고 고소한 맛과 바깔라우 특유의 풍미가 잘 어우러지는 것이 꽤 맛이 좋다. 바깔라우 아사도 Bacalho Asado는 이름 그대로 그릴 위에 구운 바깔라로 삶은 감자와 야채가 곁들여져 나온다. 바깔라우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선택이다. 바깔라우를 북어포처럼 잘게 찢은 후 튀겨 감자와 야채와 곁들여 먹는 브라가 지방 스타일의 바깔라우 Bacalhau à Brás도 와인 안주로 제격이다.


  포르투갈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 인기 있는 간식으로 통하는 파스텔 데 바깔라우Paste de Bacalho도 별미 중의 별미다. 바깔라우와 감자 등을 섞어 튀겨 만든 일종의 어묵 튀김이다. 우리가 아는 쫄깃한 어묵이라기보다 으깬 감자의 식감에 더 가까운 편이다. 리스본 시내에서 유명한 Casa portuguesa do pastel de bacalhaus는 1904년부터 파스텔 데 바깔라우만 전문으로 파는 유서 깊은 가게다. 북어포처럼 잘게 찢은 바깔라우에 감자 계란을 섞은 후 그 안에 세라 다 에스트렐라 Serra da Estrela 치즈를 넣고 튀김옷을 입혀 튀긴다. 보기엔 마치 세련된 크로켓처럼 보이지만 맛은 의외로 소박하다. 살짝 곰삭은 향을 풍기는 바깔라우와 콤콤한 지하실 곰팡이 향을 뿜어내는 진한 치즈의 조합은 달콤한 포트와인과 함께 오후 간식으로 먹기에 좋다.



  유럽의 서쪽 끝에서 희망을 찾아 먼 바다로 나간 포르투갈 사람들. 그들은 바다의 짠 소금 바람을 견디며 세계 곳곳을 누볐다. 무미 담백한 대구가 소금에 절여지고 바람에 말려지는 인고의 시간을 거치게 되면 풍미 넘치는 바깔라우가 된다. 바깔라우가 주는 깊은 맛은 어쩌면 포르투갈 사람들의 영혼을 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keyword
magazine 유럽, 맛 위를 걷다
요리하고 사진찍고 글을 씁니다 그리고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저자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