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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Aug 29. 2017

그 많던 참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달콤한 주말, 늦잠을 자려던 계획은 느닷없이 들려온 노크소리에 물거품이 됐다. 날씨도 좋으니 드라이브를 가자는 셰프였다. 사계절 내내 날씨가 좋은 시칠리아에서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그래도 신경 써주는 게 고마워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한두 시간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바다가 보이는 어느 작은 어촌 마을. 내가 누군진 알겠는데, 여긴 또 어딘가. 스마트폰을 꺼내 위성지도를 보니 시칠리아 동남쪽 끝 마르차메미Marzamemi라고 뜬다. 대체 셰프는 무슨 연유로 이곳에 온 것일까.




마르차메미는 10세기경 아랍인이 만든 지도에 그 이름이 등장할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당시 아랍의 지배를 받던 시칠리아. 이곳 해변의 생김새가 마치 멧비둘기 Turtle doves를 닮았다고 해서 아랍인들은 과거 이곳을 ‘마르사 알 하맘 Marsà al-hamam(멧비둘기 항구)’이라 불렀다. 시칠리아 서쪽 끝에 위치한 항구도시 마르살라 Marsala가 아랍어 ‘마르사 알라 Marsa allāh(신의 항구)’에서 유래된 것과 비슷한 격이다.


걸어서 30분이면 온 동네를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지만 한때는 시칠리아 동쪽 시라쿠사 지방의 참치잡이 중심지였다. 1960년대까지 이곳은 참치를 비롯한 다양한 어족 자원을 바탕으로 호황을 누렸다. 우리가 울릉도 하면 오징어잡이를 떠올리듯 이탈리아인들에게 시칠리아 하면 떠오르는 건 바로 마탄차Mattanza라고 불리는 참치잡이 장면이다.



 마탄차는 매년 6월 지중해를 지나는 참치를 그물에 가둬 대량으로 포획하는 조업 방식으로, 시칠리아와 스페인 남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통영, 남해에서 죽방을 이용해 멸치를 잡듯 이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이다.


마탄차의 방법은 단순하다. 참치가 지나는 길목에 커다란 그물로 미로를 만들어 참치 떼를 한 곳에 끌어들인다. 그다음 그물을 서서히 들어 올리면 참치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 참치들을 갈고리로 하나하나 찍어 올려 잡는다. 그러나 말이 쉽지 큰 놈은 600킬로그램도 더 되는 참치를 갈고리만 사용해 끌어올린다고 생각해보라. 한 번에 수백 마리씩 잡았다고는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마탄차가 있는 날이면 마르차메미 앞바다는 참치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붉은 바다 위로 산더미 같은 참치가 실려 오는 모습, 상상이 되는가. 피로 물든 바다와 생을 다한 참치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만선의 기쁨을 누리며 담배를 문 시칠리아 어부들의 모습. 생과 사, 생업의 고단함과 잔혹함 사이....... 살벌하면서도 코끝이 찡한 풍경이다.



참치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인기를 끈 미식 재료였다. 그중에서도 지방이 많은 복부와 목 부위를 최고로 쳤다. 시칠리아에서는 참치 뱃살 ventresca을 숯불에 구운 스테이크가 인기다. 한입 베어 물면 진하고 고소한 맛이 우러난다. 살코기도 다른 생선들에 비해 많을 뿐 아니라 부산물도 쓸모가 있어 참치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바다의 돼지’라고 불렸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참치 눈알과 심장, 생식기 등도 귀한 식재료 대접을 받았다.


참치잡이가 한창이던 시절, 근해에서 잡아 올린 참치는 수출용을 제외하곤 즉시 가공 공장으로 보내졌다. 대부분 쪄서 익힌 후 통조림으로 만들어졌다. 맛있고 비싼 참치를 잡아 기껏 통조림을 만들었다니 기가 막히지만, 통조림 참치는 많은 사람의 허기를 달래주던 간편식품이었다.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 생선은 주로 가공을 거친 후 판매됐다. 참치는 지방질이 많은 탓에 해풍에 말리거나 소금에 절이기가 적절치 않았다. 익힌 후 오일에 담그는 방법이 보존 기한을 늘리는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탈리아 참치는 한번 쪄낸 후 올리브유에 담갔다가 병에 담아 가공됐다. 통조림은 음식물의 보존 기한을 획기적으로 늘린 위대한 발명이지만, 알고 보면 전통적인 음식 보존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통조림 참치는 올리브유에 한번 절이는 과정을 거치기에 우리가 늘 먹는 것과는 풍미가 조금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퍽퍽한 살코기란 점에선 큰 차이가 없다. 참치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마르차메미에는 참치뿐 아니라 참치 알을 염장해 만든 보타르가 Bottarga를 비롯해 고등어, 멸치, 정어리, 문어 등을 가공하는 수산물 생산 기지이기도 했다. 가공된 제품은 철도와 차량, 배에 실려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판매됐고 지역 사람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는 법. 영광스러운 나날도 잠시, 1960년대를 기점으로 참치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자비한 남획이 참치 개체 수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줄어든 참치 어획고만큼 마르차메미의 경제도 빠르게 무너졌다. 많은 참치 가공공장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도 일자리를 찾아 썰물 빠지듯 마을을 떠났다. 오늘날엔 한두 곳의 가공업체만 남아 과거의 명맥을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도시 곳곳에 보이는 폐허가된 참치 시장과 대형 창고만이 과거의 영광을 애처롭게 기억하는듯하다.


돌아오는 길, 참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마르차메미 앞바다에 참치 떼가 돌아와 환한 미소를 짓는 어부들의 표정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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