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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Aug 22. 2017

프렌치프라이의 원조를 찾아 떠나는 기묘한 모험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고백건대 벨기에 땅에 발을 딛게 된 이유는 순전히 맥주 때문이었다. 시칠리아에 있던 시절, 자주 가던 바에서 우연히 벨기에산 맥주를 맛본 것이 시작이었다. 홉 향 가득한 페일 에일 계열의 맥주 중 벨기에의, 특히 수도원 맥주라 불리는 트라피스트 Trappist 맥주의 맛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그 맛을 잊지 못해 유럽 어딜가더라도 벨기에 맥주가 있는지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마음속에는 항상 맥주의 천국 벨기에에 연정을 품었다. 어느 날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어느새 브뤼셀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하고 있었다. 



맥주 맛에 반해 찾아온 벨기에였지만 정작 벨기에서 맥주를 거의 마시지 못했다. 계속되는 여행에 몸 상태가 일단 말이 아니었고, 벨기에가 워낙 물가가 비싼 도시라 현지에서 마시든 옆 나라에서 마시든 별반 차이가 없어 매력이 없기도 했다. 무엇보다 벨기에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벨기에 하면 딱히 떠오르는 음식이 없어 여유롭게 맥주나 마시다가 갈 생각이었다. 막상 가보니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벨기에에 먹을 게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유럽의 요리를 국가별로 무 자르듯 딱 잘라 구분하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굳이 잘라본다고 하면 크게 세 축으로 나뉜다. 이탈리아나 스페인과 같은 남유럽 라틴 문화권의 요리가 한 축이요,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와 북유럽을 아우르는 게르만 문화권이 한 축이다. 마지막으로 헝가리 체코 러시아 등 동유럽의 슬라브 문화권 요리로 나눌 수 있다. 



유럽지역의 국가들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영향을 받아왔기‘이 나라의 요리는 이것이다’라고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나라 별로는 구분하기 힘들어도 문화권으로 크게 나누어보면 공통적인 점이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벨기에 요리는 독일과 네덜란드 등 청교도적 가치관을 지닌, 소박함을 중시하는 게르만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요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플로랑 켈리에는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종교가 유럽의 식탁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고 설명한다. 가톨릭 사회에서 식사란 미각적 쾌락, 풍요로움, 친밀감 등이 필수요소인 반면 프로테스탄트, 즉 청교도 사회의 식사는 청빈함, 영양학적 중요성 등이 강조됐다. 


게르만 문화권이지만 가톨릭 사회였던 프랑스는 음식이 화려하고 독창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는 데 비해,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가 압도적이었던 다른 게르만 문화권 즉, 독일 네덜란드 북유럽 등 국가에서는 소박한 식단이 전통으로 이어 내려져 왔다. 비옥하고 온화한 기후 덕에 농산물이 풍부한 남부 유럽과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중북부 유럽의 지정학적 차이로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사회의 분위기를 결정지었던 기독교 종파의 차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해 벨기에는 그 역사가 짧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한 차례 뒤흔 후인 1830년, 네덜란드의 변방이었던 벨기에는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떠밀려 독립을 맞았다. 아래로는 프랑스, 위로는 네덜란드, 옆으론 독일, 그리고 바다 건너 영국 사이에 끼어 있는 지라 이들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할 중립국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유럽연합의 본부가 벨기에에 위치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벨기에는 우리처럼 단일 민족국가로 출발한 것이 아닌지라 언어도 프랑스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세 종류를 사용하는데 요리도 이 세 국가의 요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독일처럼 소시지와 감자를 이용한 소박한 요리부터, 닭고기 쇠고기를 와인 또는 맥주에 졸인 스튜, 프랑스식 피순대인 부댕 등 인근 주변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음식들이 벨기에 요리에도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아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벨기에는 유럽에서 이름난 미식의 나라다. 오랫동안 유럽 요리계를 지배했던 프랑스의 요리를 보고 배운 벨기에의 요리사들이 고국에 돌아가 미식문화를 주도했다. 그들은 고국 땅에서 나는 재료들과 북해 연안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 그리고 그들이 자랑하는 맥주, 초콜릿 등을 이용해 독창적인 벨기에힉 요리를 만들어 갔다. 이는 곧 프랑스식 문법에 지루함을 느껴오던 미식가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세계적 수준의 레스토랑들이 다수 포진해있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은 유럽의 미식 수도라는 호칭이 붙을 정도다.


벨기에 요리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믈 Moules 즉, 홍합을 이용한 요리다. 살이 꽉 차있는 홍합과 양파의 일종인 샬롯, 샐러리, 파슬리, 버터, 그리고 화이트와인을 이용해 가볍게 쪄낸 벨기에식 홍합 찜 Moules marinière 이 가장 대표적이다. 여기에 감자튀김을 곁들이면 벨기에가 자랑하는 믈 프리트 Moules frites가 완성된다. 홍합에 곁들인 감자튀김 요리는 사실상 벨기에는 대표하는 요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홍합과 감자튀김이 과연 어울릴까 의심이 들지 않는가. 우리에게 감자튀김이란 기껏해야 햄버거나 소시지와 함께 먹는 간식인데 말이다. 한국에서 술안주로 천대받는 감자튀김이 여기선 엄연히 한 끼의 음식으로 대접받는다. 당장 벨기에 요리를 검색해보면 우리가 프렌치프라이로 알고 있는 그 감자튀김의 원조가 벨기에라는 이야기가 눈에 띈다. 아니 또 이건 무슨 소리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정확히는 서로 감자튀김의 원조라 주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벨기에 측의 주장은 이렇다. 벨기에의 저널리스트 조 제라르Jo Gérard의 주장에 따르면 1680년대 벨기에 지역의 뫼즈 벨리 Meuse valley에서 감자튀김이 처음 만들어졌다. 이 지역은 인근 강에서 잡은 생선을 튀겨먹는 것이 주식이었다. 겨울철 강이 얼어붙어 생선 잡기가 힘들자 궁여지책으로 감자를 생선 크기만큼 잘라 튀긴 것이 시초였다. 시간이 흘러 이 조리법은 다른 지역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1차 세계 대전 무렵 당시 벨기에에 상륙한 한 미군은 감자튀김을 맛보고는 크게 감명을 받는다. 그는 고국에 돌아가 감자튀김을 소개했는데 프랑스어를 쓰던 벨기에 지방을 프랑스로 착각해 감자튀김을 프렌치프라이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꽤 믿을 만해 보이지만 반론이 만만찮다. 우선 감자튀김이 발명됐다던 그 지방엔 1735년까지 감자가 전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당시 가난한 농가에서 재료를 기름에 푹 담그는 '딥 프라잉'을 할 만큼의 지방이 흔치 않았고 기껏해야 소테(sautéed:기름을 약간 두르고 굽는 조리법)였다는 점도 논란의 여지가 되는 부분이다. 1차 대전 이후 미국에 소개됐다고 하나 1856년에 나온 미국의 한 요리책에 이미 ‘프렌치프라이'라는 단어가 이미 등장한다. 또 1차 대전 당시 미군이 상륙한 지역에선 감자튀김을 프렌치프라이가 아닌 플레미쉬 프라이 Flemish fries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1차 세계대전은 1914년에 발발했다.


 이번엔 프랑스 측의 주장도 살펴보자. 2013년 벨기에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프렌치프라이를 '벨지움 프라이'로 등재하려 하자 촉발된 '프-벨 간 감자튀김 논쟁' 당시 '르 몽드(Le Monde)지'의 기사에 따르면 1789년 퐁네프 다리 위의 노점에서 한 상인이 감자튀김을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1755년 쓰인 문헌에 '튀긴 감자'라는 표현이 이미 있는 것으로 보아 퐁네프 기원설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양국의 첨예한 논쟁을 살펴보면 서로 심증은 있지만 판을 뒤엎을만한 결정적인 물증이 없다고 할까. 프렌치프라이란 용어가 직접적으로 사용되진 않았지만 1802년 미국 백악관 저녁 메뉴에 ‘프랑스식으로 제공되는 감자 potatoes served in the French manner’라는 언급이 있다. 이를 근거로 프렌치프라이는 재료를 얇게 썬다는 의미의 프랑스 조리 용어 줄리엔느 Julienne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 방식으로 썰어 튀긴 감자요리라 프렌치프라이라는 것이다.



기름에 재료를 담가 튀기는 방식의 기원은 무려 기원전 5000년 전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올리브오일을 사랑했던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에 의해 식물성 기름을 이용한 튀김요리가 유럽으로 전해졌고, 이는 로마의 요리법에 영향을 미쳤다. 튀김요리를 가장 잘 활용한 건 아랍인들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딥 프라잉 방식을 이용한 요리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건 이베리아 반도가 아랍의 오랜 영향력 하에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튀김의 대명사가 된 일본의 덴푸라도 17세기 일본에 상륙한 포르투갈 선원과 선교사들이 먹던 튀긴 생선요리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신대륙에서 얻은 감자를 유럽에 처음 소개한 것이 포르투갈과 스페인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감자튀김의 발상지는 이베리아 반도가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그렇다면 자칭 원조 벨기에의 감자튀김은 뭔가 다를까. 면면을 살펴보자. 눈에 띄는 점은 두께가 1센티미터 정도로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감자튀김에 비해 제법 두툼한 편이다. 감자튀김의 유일한 짝은 케첩일 것 같지만 벨기에에선 케첩보다 마요네즈다. 케첩의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보다 마요네즈의 은은하고 고소한 맛이 감자튀김과 의외로 잘 어울린다. 



이외에도 독일의 카레맛 소시지 커리부어스트를 연상시키는 커리마요네즈 소스를 비롯해 타르타르, 홀랜다이즈, 피넛 등 다양한 소스를 곁들이는 것이 벨기에식 감자튀김의 특징 중 하나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 감자튀김은 다른 음식에 곁들여 나오는 사이드 메뉴로 나온다면 벨기에에선 엄연히 하나의 단품요리로 취급받고 있다. 홉 함량이 높은 벨기에의 페일 에일 계열의 맥주와도 궁합이 잘 맞다. 


과연 맛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면 좀 위안이 될까. 일부러 벨기에의 감자튀김을 먹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을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맛이라서 더 놀랍다고 할까. 감자튀김을 둘러싼 국제적인 원조 논쟁이 좀 멋쩍게 느껴진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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