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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Aug 15. 2017

고기를 대하는 다양한 방식, 소시지 이야기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어린 시절 가끔 상상하곤 했다. 만약 무인도에 홀로 남겨지면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까. 열대 기후의 무인도라 마침 바로 먹을 수 있는 과일이나 감자, 고구마와 같은 쓸만한 작물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것만으로 연명할 수는 없는 노릇. 사람은 역시나 고기를 먹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동물을 잡아야 한다.


여기서 고민이 시작된다. 과연 내가 살아있는 동물을 도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도축한 고기를 어떻게 요리하며, 또 남은 고기와 내장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결국 무인도에 갇히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해야겠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요리를 배우게 된 것도 무의식적으로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였나 싶다.



어린아이의 철없는 공상이 선사시대 인류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동물을 잡고 그 고기를 먹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고기가 너무 크거나 배가 불러 다 먹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다. 그냥 놔두면 썩는데, 단 한 번의 식사로 끝내기에는 동물을 잡는 수고가 너무 컸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들은 남는 고기를 저장 가능한 형태로 가공하는 방법을 찾았다. 소금에 절이거나 연기를 쐬어 보존력을 높이는 가공법을 알게 된 인류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휴대 가능해진 식량 덕에 더 먼 곳에서 더 오래 생존할 수 있게 되면서 영역을 서서히 넓혀나간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가공육 중 하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소시지다.


소시지를 정의하자면 ‘동물 위장에 고기나 내장 등 부산물을 채워 넣어 가공한 음식’이다. 우리와 가장 친숙한 순대도 엄연히 소시지의 한 부류다. 언제부터 인류가 소시지를 만들어 먹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에‘기름과 피를 채운 염소 소시지’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나 그 이전에도 소시지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영어 소시지 sausage의 어원은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 sal에서 나왔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소시지에는 소금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고기의 부패를 억제하기도 하지만 잘게 썬 부산물들을 단단하게 응집시키는 접착제 역할도 한다. 분류에 따라 크게 익히지 않은 생소시지와 열을 가해 익힌 소시지,그리고 생소시지를 자연에서 말린 건조 발효 소시지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소시지하면 떠올리는 게 독일식 익힌 소시지다. 독일에서는 부어스트 wurst라 부른다. 이탈리아에서는 익힌 소시지보다 건조 발효시킨 살라미 salami나 생소시지인 살시차 salsiccia가 많이 소비된다. 소시지는 내용물과 가공 방식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입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속을 곱게 갈아 만든 유화 소시지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다.



독일의 부어스트와 이탈리아의 모르타델라는 대표적인 유화 소시지다. 고기 대신 돼지피를 넣어 만든 것도 있다. 프랑스의 부댕 누아르 Boudin Noir와 스페인의 모르시야 Morcilla, 체코의 옐리토Jelito는 맛과 모양새가 꼭 우리 피순대를 닮았다. 모르시야는 훈제 과정을 거쳐 시큼털털한 맛이 난다. 이처럼 소시지는 만드는 방식과 재료에 따라 그 맛과 종류가 수백 가지에 달한다. 치즈, 와인과 더불어 개성 넘치는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을 지닌 음식이 바로 소시지다.


소시지를 즐기는 방식은 종류에 따라 다르다. 살라미와 같은 건조발효소시지는 짠맛이 강한 편이다. 다른 음식에 넣는 부재료로 쓰이거나 가벼운 와인 안주로 사용된다. 많이 먹고 싶어도 워낙 짜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훈제 피망 가루를 넣은 매콤한 소시지인 초리조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요리에 빠지지 않는 단골 재료다. 짠맛과 매콤한 맛, 감칠맛을 함께 지녀 조미료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반면 익힌 소시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식사로 대접받는다. 감자와 야채, 그리고 소시지를 담은 소박한 식사는 주로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와 같이 청빈함을 강조하는 개신교 국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통식단이다.



오늘날 우리가 서양 음식의 대명사로 여기는 스테이크나 바비큐 같은 요리는 1년에 한두 번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안심과 등심 등 먹기 좋은 부위는 부자나 귀족들에게 돌아갔고 값싼 부위나 내장 등 남은 부산물이 서민의 차지였다. 부산물을 가공해 만든 소시지는 저렴하면서 영양가도 높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독특한 취향을 가진 이들은 항상 있기 마련. 미식가를 자처하는 일부 상류층은 송아지의 간과 양 곱창, 소의 혀·꼬리·콩팥, 돼지의 생식기 등을 넣고 만든 소시지를 별미로 즐기기도 했다.


소시지는 한 끼 식사임과 동시에 간식이기도 하다. 유럽 길거리에서는 익힌 소시지를 파는 가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노점에서는 가능한 한 다양한 소시지를 구비해놓고 굽거나 삶는다. 소시지를 호쾌하게 썰어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주거나 통째로 빵에 끼워주기도 한다. 소시지에 단지 노란 머스터드소스만 곁들이는 것이 정석이지만 대부분의 소시지 노점에는 취향에 따라 케첩이나 칠리소스 등을 뿌려먹을 수 있도록 소스통이 구비돼 있다. 어느 걸 뿌려야 할지 난감하다면 짜장면과 짬뽕 둘 다 먹고 싶을 때 하는 방법을 써보자. 이것저것 다 뿌려보는 것이다.



소시지를 빵에 끼워 넣은 음식은 ‘핫도그 hot dog’라 부른다. 소시지 강국인 독일에서조차 핫도그라 부르는 걸 보면 적어도 독일이 고향은 아니라는 얘기다. 핫도그라는 어원에 관해 다양한 설이 있다. 미국에서 빵에 끼워 넣은 기다란 소시지가 닥스훈트를 닮았다고 해서 핫도그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이야기로 드러난 바 있다.


빵과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발상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로마 시절 빵을 접시 대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게걸스럽게 먹는 이들을 두고 접시까지 먹어치운다는 표현이 여기서 유래됐다고 한다. 빵에 주재료를 끼워먹는 샌드위치 혹은 핫도그의 형태는 근대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식사를 식탁 위에 차려먹는 것이 아니라, 손에 들고 끼니를 간단히 때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식사시간을 다른 활동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렇게 번 시간을 스스로를 위한 시간으로 쓴다면 좋겠지만 대개 아낀 시간만큼 더 일을 했다. 바쁜 노동자를 위한 간편한 음식이라는 것은 엄밀히 보면 노동자에게 이익이 아니라 자본가에게 이익이 되는 셈이다.



친척 격인 샌드위치가 화려한 속재료를 자랑하는 데 비해 핫도그는 남루해 보일 정도로 빵과 소시지가 전부다. 가끔 양 파나 볶은 양배추가 곁들여지기도 하지만 역시 핫도그의 미덕은 심플함이다. 구성 요소가 단순한 만큼 맛의 핵심은 소시지에 달렸다. 전통방식대로 고기와 소금, 지방, 그리고 약간의 향신료만으로 속을 채운 소시지가 맛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많은 소시지를 접해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우리 피순대를 연상케 하는 부댕 누아르다. 피와 내장을 넣은 소시지는 소시지의 원형에 훨씬 더 가깝다. 아마 태초의 소시지 맛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익숙한 녹진함과 이국적인 향신료가 입안에서 어우러질 때 생각나는 것은 딱 하나다.


“이모, 여기 맥주 한 잔이요.”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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