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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Aug 08. 2017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 스테이크


 “스테이크 Steak”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게 하는 동시에 침샘을 자극하는 단어다. 큼지막한 갈색의 고기를 눈앞에 두고 감히 손대기를 망설일 사람이 있을까. 접시 위에 놓인 커다란 단백질 덩어리는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 그 자체다. 스테이크는 우리 안의 깊숙한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스테이크는 썰어낸 방식과 조리 방식을 함께 내포한 용어다. 우선 스테이크란 이름을 가지기 위해선 두껍게 잘려야 한다. 그 대상은 쇠고기를 비롯해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부터 생선까지 포함한다. 소위 ‘함박’이라고 불리는 햄버거 Hamburg처럼 고기를 갈아 뭉쳐놓더라도 두툼해야 스테이크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스테이크란 명칭은 원래 꼬챙이에 꽂아 열원에 오랜 시간 천천히 고기를 익히는 로스팅 Roasting을 뜻하는 노르만족의 고어 ‘Steik’에서 유래됐다. 오늘날 일반적인 스테이크라고 하면 숯불 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그 위에서 복사열로 굽는 그릴링 Grilling, 달궈진 팬을 이용한 프라잉 Frying 방식으로 조리된 것을 말한다. 찌거나 삶은 고기를 두고 스테이크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동양인의 시선으로 서양 요리의 대명사인 ‘비프스테이크 Beef Steak’를 바라보고 있자면 경탄을 넘어 어떤 경외심마저 든다. 서양과 달리 드넓은 목초지가 적은 한국에서 쇠고기는 귀한 식재료다. 이 때문에 고기를 두껍게 썰어 굽는 방식은 아무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조리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신 불고기나 수육처럼 고기를 되도록 얇게 썰어 굽거나 아예 덩어리째 푹 고아내는 조리법이 발달했다. 아마도 두툼한 스테이크를 두고 ‘헉!’하며 반사적으로 탄성을 내지르는 건 우리의 음식문화와 확연히 달라 겪는 문화충격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이탈리아 대표 스테이크‘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요리학교가 있는 아스티 Asti에서 기차를 타고 무려 4시간. 그 멀고 먼 길을 달려 피렌체를 찾은 이유는 크고 아름다운 두오모 때문도, 메디치 Medici 가문이 수백 년간 수집해온 예술품들이 있는 우피치 미술관 때문도 아니었다. 오직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스테이크를 맛보겠다는 일념, 단 하나였다. 


  스테이크의 종주국 하면 흔히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꼽지만, 이탈리아에도 자랑할만한 스테이크가 있다. 바로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 전통요리인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Bistecca alla Fiorentina(이하 피오렌티나)다. 피렌체식 스테이크란 뜻의 피오렌티나는 거대한 티본 T-Bone 스테이크다. 티본은 T자 형태의 등뼈를 사이에 두고 등심과 안심이 붙어있는 부위를 뜻한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안심의 비율이 더 큰 포터하우스 Porterhouse와는 다르다.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의 유래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16세기 중세의 피렌체가 그 배경이다. 매년 8월 10일 산 로렌초 축제가 되면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메디치 가문은 자신들이 가진 재력과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도시민들을 위한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광장에 커다란 장작불을 놓고 고기를 통째로 구웠는데 이때 마침 도시에 와있던 영국인 상인들 구워진 쇠고기를 보고는 “비프스테이크 Beef steak!”라고 외쳤다. 여기서 스테이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비스테카 Bistecca’라는 말이 유래됐고 그들이 군침을 흘리며 원하던 스테이크는 피렌체식 스테이크, 즉 피오렌티나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의 유래로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지만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일화에 묘사된 쇠고기 구이는 지금과 같은 스테이크의 형태가 아닌 통 바비큐 내지는 영국식 로스트비프 Roast Beef에 가깝다. 이탈리아인들도‘비스테카’라는 용어가 영어의‘비프스테이크’에서 왔다는 건 인정한다.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는 19세기 토스카나 지방을 찾은 영미권 관광객들을 위한 일종의 관광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시초라는 설이 더 신빙성 있어 보인다.    


피오렌티나, 그 단순함의 미학


   유래야 어찌 됐든 피렌체 사람들은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피오렌티나는 토스카나 지역 토착인‘키아니나 Chianina’ 품종을 사용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품종인 키아니나는 고대 로마 시대 때부터 길러왔다고 한다. 역시 토착종인 ‘마렘마나 Maremmana’ 소도 사용되는데 피오렌티나 정통론자들은 반드시 키아니나를 써야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라 이름 붙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한우를 최고로 여기듯 토스카나 사람들은 키아니나소를 으뜸로 친다.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를 만나러 주방으로 가보자. 최소 2주 동안 저온에서 숙성시킨 키아니나 티본 부위를 5~6cm 두께로 뼈째 써는데 그 무게는 무려 1~1.5kg에 육박한다. 호쾌하게 썰어낸 고기엔 그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런 처리를 하지 않는다. 소금조차 뿌리지 않고 뜨거운 숯불 위에 올려 위아래를 5분간 고루 익힌다. 두 면이 먹음직스럽게 진한 갈색으로 잘 구워지면 스테이크를 세워준다. 뼈 부분을 아래로 놓고 같은 정도의 시간 동안 옆면을 고르게 구워준다. 


다 굽고 나면 그 위에 굵은소금과 토스카나산 올리브 오일을 흩뿌려준다. 이렇게 구워진 피오렌티나의 굽기는 두말할 것 없이 레어 Rare다. 자칫 미디엄 레어라도 되어버리면 더는 그것을 피오렌티나라고 부를 수 없다. 레어라고는 하지만 이미 숙성한 고기를 구운 후 충분히 레스팅 Resting 시키는 과정을 거치기에 대개 핏물로 오해받는 ‘육즙’이 흥건하게 배어 나오지 않는다. 단순함의 미학이 극대화된 이 스테이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채식주의자나 힌두교도, 스님이 아닌 게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리 방식도 간단하지만 그 맛도 굉장히 직선적이다. 큼직하게 썬 피오렌티나 한 조각을 씹으면 숯불의 진한 향과 함께 시어링 Searing 된 겉면에서 나오는 풍부한 감칠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면서 깊은 맛이 입 안을 감돈다. 이때 나중에 합류한 소금이 입안에서 톡톡 터지면서 한층 더 고기 맛을 살린다. 이 순간만큼은 온 우주에 고기와 나, 둘밖에 없는 듯한 기분이다. 등심과 안심이 붙어서 나오는 티본 부위인 만큼 두 부위의 질감과 맛의 대조도 재미있다. 시각적인 즐거움과 미각의 만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단순함의 미학,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다.



피오렌티나의 적수, 밀라네제


  인간계에서 더는 적수가 없을 것 같은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와 쌍벽을 이루는 요리가 같은 이탈이라 하늘 아래 존재한다. 바로 밀라노의 '코스톨레타 알라 밀라네제 Costoletta Alla Milanese (이하 밀라네제)’다.  갈비뼈라는 뜻의 ‘코스톨레타’란 이름에 걸맞게 송아지 등심 부위를 뼈와 같이 잘라낸 후 빵가루를 묻혀 튀겨낸 요리다. 



일본식 돈가스의 유래를 오스트리아의 슈니첼 Schnitzel로 보는데 그 슈니첼의 원형이라 알려진 것이 바로 밀라네제다. 밀라네제는 오로지 송아지 등심을 사용하는데 비해 슈니첼은 돼지, 닭, 칠면조 등 다양한 고기를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밀라네제는 뼈가 붙은 송아지 등심 부위를 1~2cm 두께로 썬다. 칼등으로 가볍게 두드려 주고 밀가루와 달걀물, 빵가루를 순서대로 묻힌 후 정제 버터를 녹인 팬에 굽듯이 튀긴다. 모양만 놓고 보면 영락없이 커다란 돈가스다. 


   피오렌티나가 반드시 레어야만 한다면 밀라네제는 분홍빛이 선명한 미디엄이어야 한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밀라네제엔 단지 소금과 후추면 충분이다.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와 마찬가지로 어떤 종류의 소스도 필요치 않다. 굳이 무언가를 곁들이고자 한다면 레몬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버터라는 동물성 지방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풍미를 한가득 안은 고기의 맛은 가히 사치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피오렌티나가 서민적이고 우직한 맛이라면, 밀라네제는 좀 더 귀족적이고 화려한 맛이랄까.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와 밀라네제를 놓고 보면 이탈리아 토스카나와 롬바르디아 두 지방의 특성과 차이가 엿보인다.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토스카나 지방은 일조량이 풍부한 기후가 특징이다. 특히 질 좋은 올리브가 나기로 유명하다. 풍부한 올리브 자원 덕에 전통요리 대부분은 올리브유를 주로 이용한 지중해식 요리가 차지하고 있다. 기후 덕분에 식재료의 맛이 워낙 좋아 원재료의 맛을 살린 간단한 조리법을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반면 강수량이 많고 드넓게 펼쳐진 평야를 가진 롬바르디아 지방은 쌀농사와 낙농업이 발달했다. 올리브가 자라기 힘든 기후 탓에 올리브오일 대신 버터와 같은 동물성 지방을 주로 이용한 요리가 많이 눈에 띈다. 두 지방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지만 기후에 따른 식문화가 눈에 띄게 차이 난다. 환경이 식탁을 결정한 셈이다.


  이탈리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두 요리를 먹어보고 그 맛의 차이를 느껴 보시길. 단, 꼭 피오렌티나는 피렌체에서, 밀라네제는 밀라노에서 맛보시길 바란다. 서울에서 먹는 돼지국밥과 부산에서 먹는 순대국밥만큼 원래의 맛과는 다른 차원의 맛을 경험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 요리에 이끌려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요리란 결국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유럽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방랑 중에 보고 느끼고 배운 음식과 요리, 공간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진과 뒷 이야기들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jangjunwo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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