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갑작스런 부재는 쉽게 설명할 수 없다
초록색 옷을 잘 입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초록이'라고 별명 지었다.
초록이가 조금 아프다는 소식을 사흘 전에 들었다. 초록이는 최근에 머리가 자주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게 밤에 게임 그만하랬지!" 나는 친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초록이가 병원에 좀 있어야 할 것 같단다. 수술을 한다기에 금방 괜찮아질 줄 알고 다행이라 생각하며 웃었다.
오늘, 며칠 동안 못 본 초록이가 보고 싶어 병문안 가는 친구들을 따라 병원에 갔다. 눈이라도 한 번 마주칠 수 있을 줄 알고 갔는데 초록이는 아파서 고개도 못 들고 있었다. 내 예상보다 더 심각해보였다. 좀더 검사를 해봐야한단다. 옆에서 간호사만 링거를 갈아 끼우며 부산스럽게 바스댔다.
가슴 한켠에서 무언가 무너졌다.
누군가의 삶은 누군가에겐 풍경이 된다 했던가.
내 삶의 풍경에서 초록색이 빠졌다. 모네의 그림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르누아르의 그림에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색. 그림에서 초록색이 빠지자 순식간에 모든 게 회색빛으로 얼룩졌다. 내 그림은 나 혼자 그리는 게 아니었다. 초록색을 빼기에는 나는 이미 초록의 푸르름과 생명을 알아버렸다. 왜 진작 그 소중함을 몰랐을까. 이토록 진부한 말로만 표현할 수밖에 없어서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며칠 전. 시리게 추운 날이 계속되는 겨울인데 모처럼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던 날이 있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무척 피곤했다. 저녁 무렵 친구들과 인사하고 집에 바로 가려는데 바깥이 너무 따뜻했다. 몇 발짝 떼며 망설이다가 다시 친구들에게 돌아가 한강에 가자고 제안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던 초록이도 함께 갔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캔맥주는 탄성을 자아낼만큼 맛있다. 우린 마포대교를 건너와 바람 불어오는 한강 둔치에 둘러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사실 도란도란은 아니고, 강물이 왼쪽으로 흘러가는지 오른쪽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추워진 우리는 편의점에서 즉석라면에 계란도 깨 넣고 맛있게 먹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벌써 가?" 다 같이 집에 가려하자 초록이는 아쉬워했다. 아마 그날 한강을, 초록이도 무척 즐거워했던 것 같다.
"너의 아픔을 함께 할게."라는 말은 하고싶지 않다. 백사장의 고운 모래 같은 말이다. 만질 땐 곱고 따뜻하지만 정작 움켜쥐면 전부 새 나가 버린다. 난 현실주의자다. 도움 안 되는 말은 하지 말자는 주의다. 그래서 친구에게 무어라고 말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 며칠전부터 느껴지는 이 저릿거리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친구의 갑작스런 부재는 쉽게 설명할 수 없다. 가볍게 입밖으로 내기에 친구의 아픔과 소중함은 너무도 무겁다. 그래서 결국 참 진부한 말이지만, 초록이에게 너의 곁에 함께 있을거라는 말만 꼭 해주고싶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끝끝내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지는 결론내진 못했지만, 그날 함께 바라보던 한강물처럼 친구와 함께 흘러가는 게 지금 내가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 우리 초록이, 푸르고 튼튼한 나무처럼 굳세게 털고 일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 그림에서 푸르름을 색칠하는 초록 친구야.
나는 너에게 무슨 색일까. 네가 많이 보고싶다.
나무 - 류시화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주었다
내집뒤에
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때
그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