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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또 Feb 24. 2016

만화는 허무맹랑하지 않다

<주토피아>, 애니메이션이 변했다

애니메이션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허무맹랑해! 현실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유토피아가 아니야."


사실이다. 애니메이션은 현실과 동떨어졌다. 현실에서 백마 탄 왕자는 오지 않는다. 어린이는 언젠간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펀치 한번 날렸다고 해서 사람이 대기권 밖으로 날라가지 않는다. 현실은 고소장일뿐.


"처음 만난 남자와 바로 결혼하는 건 말도 안돼!" <겨울왕국 中>

애니메이션이 바뀌기 시작했다. "렛잇고" 열풍을 불러온 <겨울왕국>에서는 수동적으로 남자의 보호를 받았던 여자들이 당당하게 삶을 주도한다. <공주와 개구리> 에서는 흑인 공주가 등장한다.


그러나 공주는 여전히 왕자와의 키스를 꿈꾼다. 애니메이션 속의 차별과 편견이 가득한 사회는 그대로다. 바뀐건 껍데기 뿐. 주인공을 둘러싼 장애물을 뛰어넘는 건 주인공만의 문제다. 싸움에서 이긴다 해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은 주인공 뿐이다. 신데렐라 이후의 애니메이션들은 주체적인 인간형을 묘사하며 발전을 꾀했다. 하지만 편견을 던지는 사회를 문제삼지는 않았다. 성장하는 것도, 편견에 맞서 싸우는 것도, 모든 건 개인의 문제다.

<공주와 개구리>에서는 흑인공주가 나오지만 여전히 왕자와의 키스를 꿈꾼다.


그런데 이번에 개봉한 <주토피아>는 다르다. 덩치 큰 표범인 '벤자민'이 최초로 경찰관으로 임명된 작은 토끼 '주디'에게 작고 귀엽다고 칭찬하자 주디는 이렇게 대답한다. 

"토끼들끼리는 서로 귀엽다고 말할 수 있지만 다른 동물이 말하면 실례가 될 수 있어요."

그러자 벤자민은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제 주인공은 더이상 차별에 '홀로' 맞서 싸우지 않는다. 마침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널리 퍼져있는 사회가 나타났다. 주인공 '주디' 역시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갖고있던 편견을 알아채자 바로 사과한다.


어느 날,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공격해서 갈등이 벌어진다. 가장 유명한 가수인 가젤 사슴은 초식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차별하지 말자"는 성명을 발표한다. 누구나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서로를 지키려는 세상이다.

<주토피아>의 한 장면

이제 주인공은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된다.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슈퍼맨이 되지 않아도 좋다. 함께 차별과 편견에 맞서 함께 싸운다. 이전 애니메이션들보다 한층 발전한 사회가 나타났다. 물론 주토피아에도 차별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토피아>는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제시한다.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해서 전투에 참가하는 여성 뮬란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큰 영향을 준다. 바람직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릴 적 <뮬란>을 보고 누구보다도 강해져서 살아남겠다고 생각했다. <주토피아>를 본 아이들은 존중의 미덕을 자연스레 익힐 뿐더러, 차별에 함께 맞서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자라게 된다.


여태까지는 애니메이션이 사회를 반영했다. 대표적으로 <신데렐라>는 여자가 남자에게 의존했던 사회를 거울처럼 보여줬다. 이젠 애니메이션 속 사회가 발전해서 오히려 청사진을 제공한다. <주토피아> 가 아예 불가능한 '만화 속' 이야기로 그치진 않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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