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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또 Feb 28. 2016

자투리의 미학

현대적인 업사이클링으로 재탄생하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자투리 천으로 만든 조각보를 몬드리안의 그림에 비유했다. 조각보가 백남준 작품의 뿌리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버려질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자투리는 한국 문화의 원형이다.

몬드리안의 작품과 유사한 조각보

자투리는 천이 귀하던 시대에 의복을 만들고 남은 옷감을 모아두는 데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지금은 물질적으로 너무나 풍요로워서 자투리가 생는 것 조차 힘들다.


그러나 자투리는 새로운 형태로 우리 곁에 왔다. <냉장고를 부탁해> 는 네 명의 쉐프가 게스트의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15분간 요리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쉐프란 이름에 맞는 화려한 요리를 만들기엔 재료도 시간도 '자투리'다. 그런데도 이색적이고 군침도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쉐프의 프로다움과 개성 가득한 상상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투리의 재발견은 상상력에 달렸다. 모양, 크기, 성질이 가지각색이고 양도 풍부하지 않기에 제한적이다. 결핍에서 나오는 상상력이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상상력은 쓸모없어 보이는 사물의 가치를 창조하고 재발견한다. "이게 이렇게도 쓰일 수 있었어?" 라고 탄성을 자아낸다. 버려지는 것은 없다.


버려진 캔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
재활용한 106,000개의 음료수 캔은 미국에서 30초마다 소비되는 음료수 캔을 상징한다.

일반적인 재활용(Recycle)에 디자인 등으로 가치를 더하는 것을 '업사이클링(Upcycle)' 이라고 한다. 버려진 캔이나 부러진 목재 등의 쓰레기는 예술로 승화한다. 자투리는 가장 좋은 업사이클링이다. 쓰기 힘든 조그만 비누를 모아 만든 리배칭 비누부터 20평 자투리 땅에 세운 건물까지. 자투리는 더 이상 조각보에 한정되지 않는다.


업사이클링은 이제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 잡다.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은 폐 방수천으로 가방을 만든다. 모든 가방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며 2개월 동안 제작된다. 사람들은 프라이탁 가방의 독창성과 환경보호에 환호를 보낸다. 가방은 수십만 원을 호가하지만 예술성과 개성을 인정받아 불티나게 팔린다.

모든 프라이탁 가방은 전세계에서 단 하나뿐이다

물건을 버리면서 얻은 행복에 대해 쓴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는 출간하자마자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낭만주의가 바로크 양식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듯, 소유의 미덕을 부정하며 버림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 나타났다. 본래 버림의 미학은 사물로 인간의 가치를 측정하지 않고 '나' 라는 사람 자체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시작됐다. 그런데 현대의 미니멀리즘은 너무 버리는 행위 자체에만 집착한다. 극단적으로 많이 소유했던 만큼 이젠 극단적으로 버리고 있다. 버리기 위해 버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버린다고 정말 행복해질까. Kyle Bean

버린다고 정말 나의 가치를 찾고 행복해질까. 조각보가 아름다운 건 버려질 것들이 모여 새롭게 재탄생했기 때문이다. 자투리의 미학은 쓸모없어 보이는 각양각색의 사물로 새로운 용도와 가치를 창출해내는 데에 있다. 이 과정에서 하는 치열한 고민과 상상은 결국 만드는 사람 본인을 성찰하게 한다. 자투리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처럼 자신의 가치도 새롭게 정립한다. 진정한 행복은 바로 여기서 온다.


스티브 잡스는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근간에는 버려야 할 것과 아닐 것을 철저하게 구별해낸 고민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진정 버려야 할 것과 지켜내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자투리 조각보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참된 버림과 창조의 미학을 고민해본다.


자투리 전(展) / ~5월 8일 / 입장료 무료 / 월요일 휴관 / 관람 소요시간 약 10분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자투리 전(展) 연다. 서울시 자원순환과는 연간 발생하는 자투리 원단을 91,250 톤으로 추산한다. 보통 자투리로 만든 제품이라 하면 너저분한 느낌이 나는 경우가 많지만 이젠 디자인과 품질도 현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자투리 업사이클은 하나의 예술이자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 사진 및 자료 참조 >

한국경제 칼럼 "자투리 경제"

DDP "자투리 전"

민속백선, 김은신 저, 출판사 타임비

네이버 캐스트 "업사이클 아트"

Recycled Art: 66 Masterpieces made from j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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