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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또 Mar 18. 2016

애니메이션이 담론을 함부로 건드려도 되는 이유

영화 <주토피아(2016)>

이 글은 <애니메이션이 담론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이유 : 영화 <주토피아(2016)>에 대한 필자의 반박글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기 전에 위 글을 먼저 읽길 권한다.


위 글은 <주토피아>가 인간의 얘기임을 명시하며, <주토피아>를 경계해야 할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원 글에서 제시한 각 이유를 요약하고 그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달도록 하겠다.




1. 아이들이 함부로 보아선 안 될 오마주

근거1. 주토피아는 전체관람가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패러디, 오마주, 이스터 에그는 아이들의 것이 아니다.

(예시1) 이야기를 끌어가는 소재는 마약이다. 정신착란성 식물을 암시장에 유포하고 동물을 납치하는 이야기다.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오마주다.
(예시2) 불법으로 아이스크림을 제조하는 닉과 시장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레밍의 모습은 경제 위기의 과실을 유머를 사용하여 가볍게 세탁한다.
(예시3) 조직 두목 미스터 빅은 <대부>의 패러디다. 대부는 폭력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가장 많이 받은 영화며, 이를 오마주한 주토피아 역시 폭력을 미화한다.

마약과 아이들?

주토피아의 줄거리를 잠시 생각해보자. 약하다고 차별받는 토끼 주디는 '약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경찰관이 된다. 다른 경찰관보다 여전히 체구는 작고 힘은 부족하지만 남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열정과 지혜로 해결해낸다.

마약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재가 아니다. 영화는 '경찰은 무조건 힘이 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그녀 역시 경찰관으로서 훌륭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려한다. 마약은 주인공의 설정 하에서 교훈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소재일 뿐이다.

<브레이킹 배드> 에서 마약을 제조하는 주인공

사실 더 근본적인 의문은, 마약이 나온다고 해서 아이들이 보지 말아야 한다는 판단에 대해서다. 아이들이 <주토피아>를 보지 않으면 마약에 대해 모르게 될까? <주토피아>를 보면 마약에 유혹을 느낄까?


뉴스를 보자. 차기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마약중독을 방지하기 위한 공약을 내놓았다. 할리우드에선 오늘도 어떤 스타가 마약을 했다.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마약에 대한 교육을 한다. 아이들은 이미 <주토피아>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심도 깊게 마약에 대해 알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 마약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주토피아>를 아이들이 보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경제 위기의 과실을 세탁하지 않는다

경제위기를 자초한 리먼 브라더스의 잘못을 아는 관객이라면 레밍 브라더스에서 레밍들이 줄줄이 나오는 장면이 풍자를 위한 장치임을 파악할 수 있다. 레밍에게서 세탁이 될만한 긍정적인 모습은 작고 귀여운 외모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큰 눈은 흐리멍덩하고 무허가 아이스크림을 비싸게 구매하는 모습이 어리석음을 부각한다. 이는 글의 다른 부분에서도 직접 제시된다.

리먼 브라더스를 패러디한 레밍 브라더스의 레밍도 그렇다. (중략) 영화에서 레밍은 자신의 한계에 순응하고 앞 레밍의 행동을 모사하는 동물로 그려진다. 영화 속 어떤 레밍도 월급쟁이 은행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영화는 월가의 탐욕을 세탁하지 않는다. 관객이 레밍을 어리석게 여기도록 장면을 의도하며 함께 비웃을 뿐이다. 리먼 브라더스에 대해 일절 모르는 아이라도 그 정도 분위기는 파악할 수 있다.




2. 차별을 선동하는 영화 내적/외적 기만

근거a. 설정 속 차별
: 주토피아는 강약논리가 사라진 세계지만 각 동물의 속성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런 동물의 속성은 공통 직업군에 다수의 개체로 등장하며, 주토피아는 능력이 있으면 뭐든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종자의 한계를 긋고 차별한다.

(예시1) 교통 관리국 공무원이 나무늘보인 것은 자신이 가진 속성을 극복하지 못함을 시사한다.
(예시2) 레밍 역시 월급쟁이 은행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예시3) 사자는 스캔들 이후에도 여전히 기득권이다.


주토피아는 인간의 얘기다

글쓴이는 분명히 글의 초입부에 '<주토피아>의 이야기는 인간의 얘기다'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 근거에서는 인간(관객)의 시선으로 동물을 바라보며 얘기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주토피아는 이상이라는 명분으로 본성을 잘라낸 개체들의 집합이다. 동물원이다. 동물들은 유토피아라는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제 발로 우리에 들어간다.

<주토피아>는 동물들이 생존하기 위해 서로를 죽이지 않아도 될 만큼 진화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는 인간 사회가 발전해온 과정을 비유한 것이다. <주토피아>를 인간의 얘기라고 생각한다는 전제 하에서, 비판하고 싶은 대상이 본성을 거세하고 이상계에 들어간 동물이라면 전제와 결론이 모순된다. 비판하고 싶은 대상이 인간이라면, 인간이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본성'을 거세하고 제 발로 '우리'에 들어갔다고 비판하는 게 된다.



속성=고정관념=스토리를 통해 깨짐 

속성은 고스란히 남아있지 않다. 주디는 번식력이 왕성하다는 부모세대의 속성을 극복한다. 속성이란 곧 고정관념이다. 토끼는 경찰관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여우는 간사한 속성을 가졌다고 보이지만 실제로는 초식동물이 여우에게 가졌던 선입견의 피해자다. 나무늘보는 느리지만 실제로는 스피드를 즐긴다. 그 외에도 '자연주의 클럽'처럼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동물을 보여준다. <주토피아>가 종자를 차별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건 그것이 깨져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사자는 스캔들 이후 권력을 잃는다. '타고난 것들'이 항상 세상을 굴리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근거b. 캐스팅 배우
: <주토피아>는 평등과 이상 사회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캐스팅은 백인 중심이고, 주요 캐릭터 중 흑인은 두 명인데 한 명은 영화에서 주인공에게 시련을 주는 캐릭터다. 영화 속에서 자의식을 가지고 독립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는 인물을 연기한 배우는 모두 백인이다.

(예시) 주토피아의 시장을 연기한 J. K. 시몬스는 <위플래쉬>에서 권위적인 스승을 연기했다. 시장은 권위주의적 역할의 연장선이며 그의 인종은 백인이다.

근거c. 디렉터
: 디렉터 제작발표회 사진에서 백인 외의 인종은 보이지 않는다.

캐스팅은 목소리만 나온다

실제 사람이 나오는 영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캐스팅이 '목소리'로만 존재를 드러낸다. 목소리만 듣고 인종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애니메이션은 배우보다는 제작자의 역할이 큰 장르다. 애니메이션에서 캐스팅의 인종을 보고 인종차별적인 영화라고 비판하기엔 근거가 조금 부족하다.


애니메이션 하나를 제작하는 데 백여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한다는 사실은 엔딩 크레딧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성만큼이나 다양한 인종이 참여한다고 감히 추측해본다. <주토피아> 공식 페이지의 Writers 분류에 감독 세 명 다음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Josie Trinidad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필리핀 사람이다. 물론 할리우드에 인종차별이라는 유리천장이 존재함은 분명하지만 제작 발표회 사진 하나로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논하기엔 꺼림칙하다.


주토피아의 시장을 연기한 J. K. 시몬스는 2016년에 개봉한 <쿵푸팬더3>에서 악당의 목소리를 맡았다. 그가 연기한 악당은 동물 야크인데, 재밌게도 그 모습이 <주토피아>에서 흑인 배우가 연기한 버팔로인 경찰관 보고(bogo)와 매우 흡사하다.


근거d. 아메리카니즘
: 주토피아의 배경은 미국의 도시다. 영화는 주토피아의 밝은 미래를 그린다. 이는 관객에게 아메리카니즘(미국 우월주의)을 심어준다.

주토피아는 역설적인 제목이다

주토피아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점은 영화의 핵심이다. <주토피아>는 차별과 편견이 있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교훈을 전달한다.

주토피아는 미국 맨하튼의 모습과 유사하다

미국의 도시, 더 정확히 꼽자면 뉴욕을 배경으로 한 건 사실이지만 <주토피아>는 도시의 어두운 면을 비춘다. 실제로 주토피아에서는 차별도 있고 범죄도 일어나며, 범죄를 모의하는 주체는, 캐스팅으로 보았을 때, '백인'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디즈니에서 만든 영화이기에 아메리카니즘이 존재함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 <주토피아>를 보고 그 도시를 동경한다면 그건 미국이어서가 아니라 한국보다 발전해 보이는, 주토피아라는 사회의 다양성에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닐까?




3. 애니메이션을 '인간의 것'으로 끌어왔다는 점

근거1. 해결되지 않는 몇 가지 부조리가 등장하고 이를 묵인하는 사회를 유토피아라고 말한다.

(예시) 불법 노점 판매원, 세금 탈세, 교통경찰 비하

앞서 말했듯 주토피아는 오히려 '이상 사회'는 없으며 다만 사람들이 만들어갈 뿐이라는 교훈을 건넨다. 주토피아는 스크린 밖 사회의 부조리를 그대로 투영해줄 뿐이다. 진짜 비판해야 할 대상은 '직업 차별이나 탈세쯤은 눈감아주는' 인간 사회다.



PRADA 광고가 보인다

4. 속 보이는 PPL(제품 간접 광고)

근거1. 필요 이상의 PPL은 작품 몰입을 방해하고 아메리카니즘처럼 특정 사고방식을 주입할 수도 있다.

(예시1) 등장인물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삼성폰은 등장하지 않는다. PPL과 동시에 아메리카니즘이다.
(예시2) 쥐 백화점 Mousy's는 미국을 대표하는 백화점 Macy's의 패러디다.

아메리카니즘은 나쁜가

PPL의 빈도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에 작품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PPL이 아메리카니즘처럼 특정 사고방식을 주입할 수 있다는 말은 조금 걸린다. 우선 미국에 본사를 두지 않은 브랜드의 PPL이 보인다. 프라다는 이탈리아, 버버리는 영국 브랜드다.


<주토피아>의 주제는 다양성의 인정과 공존이다. 세계화 가속 이후로 인종이 점점 섞이면서 과연 어디까지를 특정인종이라고 여길지, 그리고 인종의 구분 기준은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현재 미국만큼 모든 인종과 국적, 그리고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는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그 속의 갈등, 화합을 주제로 하기에 미국의 대도시보다 더 좋은 배경이 있을까. 이것을 정확하게 미국 우월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핸드폰, 광고, 생활양식 등의 문화는 배경을 따르기 마련이다. 삼성폰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정말로 아메리카니즘일까.




5. 난잡해진 스토리라인

<주토피아>는 많은 떡밥을 던진다. 개인적으로 난잡한 스토리라인에는 동의하는 바다.

떡밥 회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관객들이 분명한 주제의식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모든 구성이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중략) 다 같이 노래를 부른다거나 과장된 몸짓을 한다거나, 극적인 화면 연출로 주요 메시지만 짧고 굵게 전달할 수 있다. (중략) <주토피아>는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좋은 말로 하자면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잘 이용한 작품이고, 나쁜 말로 하면 꼼수를 부렸다.

애니메이션의 한계란 무엇인가. <주토피아>가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했는가? 관객들이 분명한 주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이 모든 구성이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 아니라 분명한 주제의식을 의도하고 제작했기 때문이다.




글의 제목은 <애니메이션이 담론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이유> 다. 여기서 말하는 담론이란 무엇인가? 애니메이션이 마약, 인종차별, 아메리카니즘을 얘기하는 것이 다른 영화 장르가 얘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애니메이션은 실제 영화와는 다르게 가상 세계로의 투영이 담겨있다. 애니메이션과 관객 사이는 영화와 그것 간 사이보다 가상이라 불리는 렌즈가 하나 더 들어간다.

모든 영화는 스크린 속 가상 세계다. 위 글은 분명히 <주토피아>가 인간의 얘기라고 못 박았다. 애니메이션과 관객 사이에는 영화와 그들 사이보다 가상의 렌즈가 하나 더 있다고 주장했으니 그 렌즈를 없애보겠다.


실제 사람이 나와서 <주토피아>와 같은 스토리의 영화를 찍었다고 가정해보자. 가치판단의 결과가 달라질까? 그 영화가 마약 암시장을 보여주고, 백인종 배우가 대거 나오고, 실제 브랜드명으로 PPL을 하고, 맨해튼의 화려한 야경을 보여주며 아메리카니즘을 주입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가?


애니메이션이 아니어도 가치판단의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면, 애니메이션이 담론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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