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또 Sep 28. 2016

한 늦깎이 학생의 백일장

당신의 세상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육봉사를 한지도 2년이 다 되었다. 흔히 야학이라 하면 쓰러져가는 가건물, 넘쳐나는 아이들, 분필가루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칠판에 ㄱ, ㄴ, ㄷ, ㄹ을 쓰고 있는 하얀 한복 저고리의 선생님을 떠올리곤 한다. 아마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일제 강점기 소설 <상록수>에 나온 야학의 모습 이리라.


한국 야학은 일제 강점기의 민족 실력양성 운동에 뿌리를 둔다. 3.1 운동 이후 소외된 농민, 노동자, 여성에게 한글, 한자,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950~60년대에는 빈민 교육, 7~80년대에는 노동 교육을 하며 야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왔고 현재는 대다수의 야학이 검정고시를 가르친다.

브나로드 운동과 함께 시작된 한국의 야학 (출처 : 노컷뉴스)

2년전 여름에 한 야학의 국어교사가 되었다. 학생은 15명 남짓, 주 연령대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5~60대고 이따금 여든이 넘은 학생도 보인다.


제각기 살아온 인생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어려서 집안 사정으로 정규 교육을 끝마치지 못했거나- 아예 시작하지조차 못했다. 그리고 강산이 다섯번은 뒤집힐 세월이 흘렀다.

내가 젊어서부터 공장을 하나 했는데, 그게 지금은 엄청 커졌어. 내가 우리 아들도 대기업 보내고 나도 사장님 소리 들어가며 살아. 그런데 젊어서나 지금이나 학교 못 나왔다고 사람들이 어찌나 무시하는지 몰라. 한이 맺혔어, 한이.
우리 아들이 이번에 손주를 낳는데, 애가 바빠서 내가 대신 봐주기로 했어. 하나뿐인 손주 똑똑하게 키워야하잖아? 나부터 배워야 애를 가르치겠다 싶겠더라고.
아내가 먼저 갔어. 아비가 보기 딱한지 어느날 딸아이가 여기를 가보라고 하더라고.

야학을 찾은 이유도 당신들 인생처럼 제각기 다르지만 모두 야학에 나와 연필을 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세시간씩 수업하는 바쁜 학교 일정이지만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을 만큼 빠짐없이 나오는 학생이 많다. 처음엔 간단한 문제에도 끙끙대지만 1~2년 공부 후엔 보란 듯이 다들 검정고시 합격증을 받아온다.


얼마 전 야학에서 '나에게 공부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백일장이 열렸다. "공부는 어렵지만 즐거워요" 라는 비슷비슷한 글을 무심하게 한장 한장 넘기던 와중에 하나의 글이 한참 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이름을 쓰지 않은 한 학생의 글이다.

처음 올때 많이 망설이다가 입학날에 오니까 내 나이 또래도 있고 해서
남들 1년하면 나는 2년 배우자 하고 시작했는데 막상 공부시작하니까
시험 점수도 적게 나오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게 더 많고 속상하고 힘들어서
그만 둘까 하다가도 어린 선생님들께서 너무나 열심히 설명하고 또 설명하니까
너무 고마워서 지금까지 열심히 나오고하니까
조금은 수학도 풀고 영어 단어도 몇 개 외우고
4월에 시험도 아무도 모르게 봤는데
합격이라는 통지를 받고나니
옛날에 우리엄마한테 중학교 안 보냈다고
항상 대들고 싸웠는데 이제 졸업장가지고 엄마 무덤앞에 가서 자랑하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내 스스로, 중학교 졸업했다고
엄마 미안해 속상하게 해서




내 세상은 가족, 친구, 연인과, 살면서 만난 사람들로 촘촘하게 짜여져있다. 그 사람들 각각의 세상엔 또다시 가족과 친구와 연인이 있다. 그런걸 이따금 잊고 살았다. 우연히 들여다본 타인의 세상에도 사람이 있었다. 나처럼 당신도 혼자가 아니었다. 당신도 누군가의 딸이었다.


내게 당신은 늘 어른이었는데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