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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풋할 때 스미는 굴레방다리 근처 맛집

‘은성순대국’ㆍ‘다모아’ㆍ‘주영식당’

 아현시장 대표 맛집으로 유명한 ‘은성순대국’

북아현동 화덕 숯불구이 치킨 맛집 ‘다모아’

염리동 푸짐한 오리로스구이 일품 ‘주영식당’      


‘굴풋하다’란 표현을 만났다. 어려서부터 국어사전과 옥편을 끼고 산 덕에 단어와 표현 해석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굴풋이란 표현은 생소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배가 고파서 무엇을 먹고 싶은 느낌이 있다’란 뜻의 형용사다. 전라북도 방언사전에는 ‘배고프다’란 짧은 해석이 실려 있다. 전북 지역에서 많이 쓰던 순우리말이다.      


표현이 억세지 않지만 뭔지 모를 결핍을 연상시킨다. 입안에서 웅얼거리며 되뇌어 보니 뱃속에 뭔가 채워야 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을 준다. 물론 뇌피셜이지만 어떤 단어가 뇌를 통해 인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상당한 위력이다. 레몬의 새콤함이 침샘을 자극하듯 말이다.      


배고프단 의미의 형용사 ‘굴풋하다’ 

전남 함평출신 이혜숙 작가가 최근 펴낸 ‘계절을 먹다’ 표지.

‘굴풋하다’를 만난 것은 작가 이혜숙이 최근 펴낸 ‘계절을 먹다’(글항아리)란 음식 이야기책에서다. 춘궁기 때를 묘사하면서 ‘봄은 길고 사람들은 굴핏했다’라고 적었다. 곳곳에 등장하는 전남 함평 출신 작가의 사투리는 구수하고 정겹다.       


작가는 한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다른 한 손으론 글을 썼다. 할머니도 음식으로 기억하고 엄마의 살아생전을 묘사할 때도 음식을 반찬 삼아 했다고 썼다. 작가의 기억은 거울처럼 명확했다.     

 

이를 작가는 “삼시 세끼 만들어 먹던 시대였고, 시골에서는 밭에서 직접 뽑아다 반찬을 만들었기에 농사일의 결과물이 늘 눈앞 밥상에 펼쳐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밭의 생명력이 종이 위에 고스란히 이식됐다. 그래서 신간 ‘계절을 먹다’는 활자가 싱싱하게 펄떡인다. 오늘은 굴풋하다란 표현만 빌려 쓰고 책에 대한 이야기는 후일 다시 하기로 한다. 다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밥때가 되면 굴핏해 진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걸어서 퇴근하는 것을 즐겨한다. 운동이 모자라 걷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하는 이유도 있고 서울의 풍경을 천천히, 속속들이 즐기기 위해서다. 서울시청에서 지하철 2호선 라인을 따라 양화대교를 건너는 코스로 걸을 때면 옛 아현고가도로가 있던 굴레방다리를 지나친다. 배가 굴핏해 질 때다.    

   

1968년 만들어진 국내 첫 고가도로인 아현고가도로도 2014년 철거돼 사라지고 굴레방다리는 그보다도 더 오래전 없어졌지만 사람들 입에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굴레방다리는 아현동에서 마포나루와 신촌 방향으로 가는 길에 바큇살처럼 다리를 걸쳐놓았던 데서 유래한다. 한자명으로 늑교라고 불렀다.     


애오개라 부르던 아현에서 현재의 북아현가구골목을 지나 굴레방다리를 건너면 서강과 마포와 대현 쪽으로 가는 세 갈래 길이 나온다. 그중 애오개에서 북아현가구골목을 거쳐 아현시장을 지나 이화여대 입구까지의 길은 조선초기부터 있었던 아주 오래된 고갯길이다. 굴레방다리는 이 길목에 있었다. 대현과 아현은 크고 작은 고개란 의미다.      


굴레방다리는 지세로 말하면 풍수지리상 큰 소가 길마를 무악에다 벗어놓고 굴레는 이곳에다 벗어놓은 뒤 서강을 향하여 내려가다가 와우산에 가서 누운 형국이라고 한다. 길마는 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얹는 일종의 안장이고 굴레는 소를 부리기 위해 머리와 목에서 고삐에 걸쳐 얽어매는 줄을 말한다.      


대현이나 애오개를 넘기 위해 이 주변에 있었던 대장간에서 소나 말에게 물을 먹이고 굴레를 갈아줬다고 해서 굴레방다리라는 유래도 있다. 그만큼 고개가 가팔랐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지금도 아현역에서 이대역으로 오르는 길은 서울 시내치곤 경사가 제법 된다. 대로 뒤편 마포구 쪽 이면도로에는 아현시장이 경사를 따라 발달해 있다. 아현시장의 도로명은 굴레방로다. 새 도로명 주소에서 옛 지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달디 단 머리고기와 순댓국의 조화 

아현시장 중간쯤 위치한 지역 맛집 맹주 ‘은성순대국’.

걷다가 지치면 아현시장에 잠시 머무르자. 시장 중간쯤에 맛있기로 소문난 순댓국 식당이 한 곳 있다. ‘아현시장 맛집’을 검색하면 늘 상위권에 노출되는 ‘은성순대국’이 바로 그곳이다. 식객들의 방문 기록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표현이 ‘깔끔과 담백’이다. 순댓국에 이런 표현은 상찬이다. 돼지 누린내를 잘 잡아냈고 식당 위생이 괜찮다는 뜻을 포함하는 복합적 표현이다.     


필자는 ‘깔끔하고 담백한 순댓국과 달디 단 머리고기’라고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예전에는 혼자 찾아가는 바람에 순댓국만 한 그릇 먹고 나왔지만 최근엔 동행과 함께 꿈에 그리던(?) 머리고기를 접할 수 있었다. 운 좋게도 마지막 한 접시 남은 것이라 맛이 배가 됐다.      


정갈하게 썰어서 차분하게 담아낸 머리고기는 일단 눈으로 일미, 고소한 냄새로 이미, 달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맛으로 삼미를 느끼기 충분했다. 따라 나온 순댓국 육수 역시 명불허전이다. 깔끔하고 담백하단 표현에 정확히 부합한다. 순댓국 역시 내용물이 실하게 들어간다. 페이스북을 뒤지니 2년 전 이맘때 맛봤던 기록이 남아 있다.      


‘맛이 깔끔하고 친절한 곳. 테이크아웃 손님이 많다. 맛보기로 내주는 따뜻한 삶은 간 몇 점에서 인정이 느껴지고 여행을 좋아하는 주인장이 써 내려간 여행 책에서 내공이 전해진다. 스토리가 풍성한 곳이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점포 내외부에는 텍스트로 많은 정보가 적혀 있다. 재밌는 것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코(가래침)는 밖에서 풀어주세요’, ‘술 취한 분께는 술을 팔지 않습니다’ 등이다. 그중 압권이 각종 방송 프로그램을 적어 놓은 것이다. ‘KBS 1TV 교양-6시 내 고향, 인간극장, 다큐 공감, 사람과 사람들, 강연 100도C와 삼대천왕, 수요미식회, 생활의 달인, 각종 먹방 TV 촬영과 강의 제안을 거부한 순댓국 집’이란 글이다. 


이런 유쾌한 반란이 좋다. 식객들이 환호하는 지점이다. 방송을 타서 손님이 급격히 늘면 일이 많아지면서 종업원이 더 필요해진다. 무엇보다 손님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서비스는 시나브로 저하되기 마련이다. 사장 내외분은 이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내외분은 주방과 홀을 각각 맡아 능숙하게 식당을 운영한다. 서로 존칭을 쓰며 소통하는 모습이 공간을 편안하게 한다. 여름이면 한 달 이상 해외로 훌쩍 여행을 다녀오곤 여행서를 한 권 출간하는 글쟁이이자 멋쟁이다. 평소에도 일요일과 월요일을 쉬는 주 5일제 식당을 운영한다. 아현시장 굴레방길을 가파르게 오르던 식객들에게 ‘영혼의 토종 수프’를 제공하는 ‘은성순대국’은 귀한 노포다.        


직화 닭·불판 오리 맛은 ‘용호상박’   

직화 숯불 닭구이 전문 ‘다모아’(사진 위)와 가스 불판 오리로스구이 전문 ‘주영식당’.

옛날 굴레방다리가 있었음직한 북아현동 동쪽에는 ‘다모아’란 개업 30년 가까운 치킨 노포가 있다. 주방 숯불 화덕에서 닭을 구워 불맛이 제법 나는 숯불구이닭집이다. 생맥주 한잔과 합을 맞추면 두 사람이 든든한 한 끼가 되고도 남는다. 그만큼 사용하는 닭이 실하다.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화덕과 석쇠는 이곳의 연식을 대변한다.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영업을 마감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근처에는 ‘솜씨방’이란 이불집이나 한복집 같은 상호를 가진 불고기가 일품인 한식집이 있다. 서울식 불고기를 곧잘 하는 이곳은 오래전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고 보니 굴레방다리 일대는 오래된 마을이 있던 곳이라 연륜이 깊은 맛집들이 많다.      


아현시장을 지나 대현을 넘으면 옛 마포를 오가던 소금길과 연결된다. 그러나 지금은 일대가 아파트로 개발되면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아파트 내부에 표석이라도 하나 세웠으면 좋으련만 그런 시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골목에 ‘주영식당’이란 노부부가 운영하는 음식점이 있다.      


지난 연말 이곳에서 인근에서 황금바늘이란 한복점을 하는 지인 부부와 오리로스구이로 저녁 식사를 했는데 먼저 푸짐한 양에 놀랐다. 양파, 새송이 버섯, 잘 익은 김치, 각종 쌈채 등을 눈치 안 보고 양껏 가져다 먹을 수 있어서 두 번 놀랐다.      


가성비 좋은 한식뷔페로 유명했던 곳인데 십 여 가지 반찬을 만들던 할머니께서 몸이 불편해 신년 들어 뷔페를 없애고 갈비탕을 도입한다고 했다. 오리로스구이는 인근 아현시장 근처 한 오리집보다 30%가량 저렴하다. 오리로스구이 또한 가성비로 승부하는 곳이다.      


아현동과 북아현동이 재개발되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다행히 도로변 근생시설과 아현시장 같은 전통시장이 남아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그 속에 수많은 노포 음식점들 역시 기억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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