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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도시’ 서울서 만나는 골목길 맛집

기찻길옆 '낭만철도'ㆍ시장 초입 '용삼계탕' 

거미줄 같은 테마 길 답사하기 좋은 도시  

삼각지 철길 옆 깜짝 요리 손맛 ‘낭만철도’

영동시장 초입 케일 쌈 싸 먹는 ‘용삼계탕’           


서울은 길의 도시다. 그렇게 말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로 서울은 걷기 좋은 다양한 길을 가꿔 놓은 도시다. 그냥 길만 나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 수많은 역사가 층층이 쌓여 있는 것이 큰 매력이다. 시간의 나이테가 무려 2천 년이나 되는 역사도시이기 때문이다. 누대를 지나면서 쌓이고 쌓인 역사는 그럴듯한 이야깃거리로 남아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서울이란 공간을 세계인이 좋아하는 저력은 화려한 외형보다는 역시 역사적 기반이 앞선다. 

          

외국 관광객들은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등 궁궐과 북촌, 서촌, 인사동 등지를 한복을 빌려 입고 다니면서 우리 역사를 접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외국에 관광을 가면 그들의 역사적인 현장을 둘러보는 것을 선호한다. 온고이지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심리에 내재된 향수 같은 존재다. 그래서 옛것을 먼저 돌아보고 발전된 현대에 접목해 이해하려 한다.           


도시를 가장 잘 알아보려면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 가장 좋다. 서울이라면 서울역사박물관이 대표적이다. 물론 상위의 국가 단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박물관은 한 나라와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함축해 놓은 곳이다. 그래서 어딜 가나 가장 먼저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 지혜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그다음은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다. 그곳에는 서민들의 생활사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도시의 구도심 오래된 골목길을 걸어보길 권한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신도심에는 역사가 일천하다. 그런 곳보다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오가던 길을 걸으면 마치 역사가 저벅저벅 뒤따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박물관, 전통시장, 옛길을 들여다보면 한 도시의 역사가 얼추 이해된다. 그러면 그곳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을뿐더러 여행기가 풍성해진다.        

   

도시 알려면 박물관·시장·골목 가봐야 

     

답사전문단체인 문화지평이 최근 용산역 일대 ‘철도명암의 길’ 답사 시작점인 용산역 앞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에서 도현남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모습

서울에는 크게는 서울둘레길이 있고 각 자치구마다 개발한 수많은 테마 길이 거미줄 같이 있다. 그걸 다 돌아보려면 몇 해는 걸릴 것만 같은 정도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길이다. 대표적인 길 콘텐츠 개발단체인 ‘한국의길과문화’ 홍성운 이사장은 “여유로운 걷기는 지역의 색다른 빛과 문화를 만나는 좋은 방법이고 나를 돌아보는 사색의 여정”이라며 걷기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무작정 걷기보다는 테마 길을 따라 걷거나 사전에 역사문화 자원을 검색한 후에 찾아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길 끝 골목에 숨어 있는 맛집을 들리면 금상첨화다.                


용산역 일대는 근현대에 걸친 역사의 시층이 두텁다. 철도의 도시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용산은 철도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업유산이다. 그 속에는 일제 강점의 아픈 역사도 깊이 남아 있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용산전자상가라는 1세대 전자 소매산업의 메카도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전에 용산역을 기점으로 '철도명암의 길'이란 테마 길을 걸었다. 옛 철도 공장지대(용산 철도정비창부지)의 경계를 따라 걸으며 한강철교와 용산역이 연이어 세워지고 철도가 놓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용산의 역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답사는 도현남 서울시 용산기지둘레길산책 해설사가 진행했다.           


용산역 앞 강제징용노동자상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옛 용산역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용산의 이야기는 시작됐다. 용산철도정비창, 군자감·강감 터, 만초천과 만초천교, 새남터, 백빈건널목, 옛 용산 철도관사를 둘러봤는데 코스를 이야깃거리가 풍성하게 잘 짰다. 답사 후 날이 차서 따뜻한 국물로 몸을 데우고자 용산역 근처 ‘공릉닭한마리’를 찾았지만 아뿔싸 문을 닫았다.          


오래전 노원구에 있는 태강릉을 답사한 후 지하철 태릉입구역 근처에 있는 ‘공릉닭한마리’ 본점에서 맛있는 식사를 한 기억이 있기에 용산 분점을 찾은 것인데 아쉽다. 발길을 돌려 철길을 따라 북쪽인 삼각지로 향했다.           

연극배우 김민수 씨 운영 캐주얼 펍

‘낭만철도’의 돈가스, 모둠소시지, 직접 담근 각종 김치.

삼각지역 근처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가 들어서 있는 청년주택 용산베르디움프렌즈와 철길 사이 후미진 뒷골목에 낭만이 넘쳐흐르는 식당 하나가 들어서 있다. 이름도 ‘낭만철도’다. 한쪽 벽면이 철길과 닿아 있다. 그래서 기차가 지날 때면 의자에 미세한 진동이 전해지고 이 떨림은 엉덩이를 간지럽힌다.    

       

이곳은 연극배우 김민수 씨가 운영하는 캐주얼 펍이다.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홍계훈 장군으로 나와 유명세를 탔다. 홍 장군은 사모하는 민비를 위해 무과에 장원급제 후 몸을 바쳐 지킬 것을 맹세했던 의리남이다. 2001년 작품에선 고종으로 나온 배우 조승우와 합을 맞췄다.           


홀은 김 대표가 맡고 부인이 주방을 담당하는 데 손맛이 좋다. 야장이 잘돼 있어 저녁나절 쇠바퀴와 철로가 부딪히는 쇳소리 들으며 운치 있게 반주하기 딱 좋다. 용산 철도의 역사를 논하기 더없이 좋은 장소다. ‘낭만철도’가 있는 자리는 1920년대 화차용 땔감인 석탄을 쌓아 두었던 저탄장이던 곳이다. 이 지역만도 인근 일제 강점기 풍국제분 자리는 오리온제과가 들어서고 천주교 당고개 순교성지가 있는 등 땅 밑에 깔린 역사가 두텁다.              


각설하고 ‘낭만철도’에서 필자가 손꼽는 대표메뉴는 돈가스다. 세 명이 달려들어도 벅찰 만큼 큼지막한 수제 왕돈가스가 은쟁반에 담겨 나온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단 말이 딱 들어맞는 비주얼과 맛이다. 국물떡볶이, 오뎅전골, 과일, 반건조 노가리, 골뱅이소면, 모둠소시지 등 많은 메뉴를 접했는데 한결같이 기본 이상의 맛을 선사한다.                     


최근에는 철판구이 수제떡갈비를 새로 선보이면서 대표메뉴로 밀고 있다. 돼지고기를 다져서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했다는 ‘수원왕갈비치킨’도 주력 메뉴로 선보였다. 이들을 맛보러 조만간 가야겠다.           


업력 50년 서울 3대 삼계탕 맛집 

케일을 비롯한 각종 채소를 듬뿍 주는 ‘용삼계탕’.


7호선 논현역과 9호선 신논현역 사이에는 전통시장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영동전통시장. 강남영동전통시장이라고도 불린다. 충북 영동과 겹치기 때문에 강남이란 지역명을 더한 듯하다. 강남 한복판에 전통시장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참 귀한 일이다. 강남대로 이면에 위치하고 있고 지하철역 인근이라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정육점, 농산물, 수산물, 가공식품, 의류 등 다양한 식재료와 지방특산물 등을 취급하고 있고 맛집이 수두룩하다. 주변에 젊은 세대 거주민이 많아서 이용 연령층도 비교적 낮고 분위기도 활발한 편이다. 대부분 상점에서 온누리 상품권이 통용되는 전통시장이다. 


시장 입구에는 ‘용삼계탕’이란 반백년 업력을 가진 삼계탕 노포가 자리 잡고 있다. 필자 기준 서울 3대 삼계탕 집 중 한 곳이다. 2층이지만 여러 이유로 여름이면 대기 없이 밥 먹기 힘든 곳이 됐다. 채소접시에는 케일, 양파, 마늘, 아삭이고추가 듬뿍 담겨있다. 양파는 따로 작은 접시에 또 준다. 케일에 퍽퍽한 닭 가슴살을 쌈 싸 먹으면 별미다. 채소통을 들고 다니면서 부족하면 소리 없이 채워준다. 채소 인심이 폭발적이다. 

          

삼계탕은 10호 정도 되는 굵직한 닭에 찹쌀밥도 한껏 채웠다. 인삼 작은 뿌리 하나에 대추가 다섯 알, 황율이 적당하니 들어 전반적으로 균형감 있고 푸짐하다. 닭의 신선함과 부드러움에 놀라고 육수의 깔끔함에 두 번 놀란다. 전통 삼계탕 교과서 같은 집이다. 처음엔 한 마리 온전한 삼계탕을 시켰다가 배가 너무 불러서 다음부터는 반계탕을 주문한다. 그래도 양이 충분하다.           


적당히 익어 감칠맛이 한껏 올라온 김치와 넉넉한 인삼주 인심도 좋다. 둘이 가면 소주병 절반만큼 인삼주를 채워 준다. 3시 전에는 서비스 인삼주 외엔  따로 술을 팔지 않는다. 다 먹고 나가는데 수고하셨단 인사를 건넨다. 이런 인사는 처음 받아본다. 몸에 밴 친절이 느껴지는 곳이다.           


크기가 아주 작은 옛날식 테이블 9개, 그중 2개는 좌식의 작은 식당이지만 한 여름철엔 6명이 일손을 맞춘다. 그만큼 장사가 잘되고 서비스의 빈틈이 없는 곳이다. 길 끝에서 이런 친절한 맛집을 만나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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