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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자리 Mar 10. 2019

세상에 하나뿐인 펜

감사편지. 물건에 담기는 진심.


펜샵 코리아 김덕래 펜 닥터께.


어머님께서 하반신 마비가 되고 처음 집에 오셨을 때 절망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선택하신 건 성서 필사입니다. 어떻게 힘이 되어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가장 좋은 종이, 가장 좋은 펜으로 좋은 기운을 받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펜샵 코리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기념하는 한정판 펜을 구매해 선물로 드렸습니다.

너무 좋다... 잘 써져... 처음엔 정말 아끼면서 좋아하셨는데 몇 개월이 지나서부터는 다른 펜을 쓰시더군요. 아이들이 쓰다 냅둔 볼펜들을 가져달라 하셔서.. 

어머님의 세 번째 필사이자 마지막 필사셨습니다. 


엄마, 왜 그 펜 안 써?

제 질문에 엄마는 요즘엔 펜들이 잘 나와서... 그건 펜심도 비싸다며... 이게 좋아. 잘 써지고...

그땐 아. 엄마가 싫증이 나셨나 보다 싶었어요.

벌써 5년 전 일입니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는 엄마 그 펜 안 쓰시면 저 주세요. 내가 쓸께. 

엄마는 아 서랍 밑에 잘 두었을 텐데 못 찾겠네. 어디다 뒀더라. 

잘 못 찾으시길래 그새 잊어버리셨나 보다 싶었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다 책장에 케이스랑 펜심까지 모아서 한켠에 곱게 모셔둔 펜을 발견했습니다. 여기 있었는데 못 찾으셨구나 했는데 열어보니 고장이 나 있더군요. 딸이 사준 좋은 볼펜, 안 써진다고 말하면 속상해할까 봐... 말씀을 못하셨구나.

그동안 얼마나 속으로 노심초사하셨을까...

우리 엄마가 늘 이렇습니다. 말해주셨으면 금방 AS 했을 텐데... 


고장이 났어도 어머님의 마지막 펜이어서  AS를 신청했습니다. 

한정판이고 본사에 보내면 시간이나 비용도 걸릴 거라 안내를 받아 한참 걸리겠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소포가 갔다는 문자메시지는 왔는데 회사에서 AS에 관한 연락이 없어서 좀 섭섭했습니다. 

내겐 귀한 건데...  연락 올 때가 됐는데.... 잘 부탁드린다 사정해봐야 하는데... 싶었는데

1주일 만에 장문의 손편지와 함께 펜이 예쁘게 살아 돌아왔네요. 


김이수 님

안녕하세요
저는 펜샵 코리아 김덕래입니다. 보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몇 줄 되지 않지만, 제 마음을 울리는 내용이라 몇 번을 다시 봤습니다. 

저도 신자이긴 하지만 신앙심이 약해 성경필사는 엄두도 못 내는 입장이라, 어머님이 대단해 보입니다. 그런데 고장 나 자제분께서 선물한 이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펜을 못쓰셨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내부 메커니즘에 이상이 생겨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단종된 모델이라 부속을 따로 구하기도 힘들어, 시간을 들여 어떻게든 제가 손봤습니다. 
어떤 펜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보람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펜의 수리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의아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복이 많아 아직 제 부모님은 두 분 다 곁에 계십니다. 하지만 연로한 부모님 두 분만 시골에 두고 떠나온 불효자인지라 여든이 넘은 두 분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얼마 전부터 어머니는 정신이 많이 흐려져했던 말을 또 하고, 또 쉽게 잊어버리고, 아버지를 놀라게 하곤 하세요... 처음엔 그냥 속상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를 이만큼 키워준 분인데, 이제라도 제가 돌봐드릴 기회를 주는구나 싶어 더 자주 전화드리고, 또 찾아뵙고 하는 중입니다. 
그런 제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 보니 남겨주신 글을 무심히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을 둔 같은 자식의 입장에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꼼꼼히 손봤습니다. 
수리 이후에도 며칠을 더 손에 쥐고 테스트를 반복했습니다. 
아주 좋은 컨디션입니다. 
구석구석 찌든 때는 없애고 광을 냈습니다. 
수리가 되면 보관하실거라셨는데 주제넘은 소리지만, 곁에 두고 매일 쓰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머님이 잘 못쓰신 의미 있는 귀한 펜, 자제분이 어머니 생각하며 늘 손에 쥐면 그게 더 좋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의 유품, 보내드립니다. 
가끔 주일미사도 빼먹는 엉터리 신자지만, 이번 주말엔 꼭 나가려 합니다. 어머님이 좋은 곳에서 행복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기운 내세요. 감사합니다. 

2019. 3.7.

김 덕래 드림. 



만년필로 쓴 손편질 내가 언제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편지를 들고 한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펜에 엉겨 붙은 잉크 하나하나 오랜 시간에 걸쳐 녹이고 녹여서 풀어내고 다시 수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펜들보다 시간과 공이 필요했을 일을 이리 정성껏 챙겨주셨구나. 그 마음이 얼마나 따뜻했는지요.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닦고 챙겨주셨을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어머님의 영전에 놓아드렸어요. 

엄마, 내가 펜 고쳤어. 그니까 이제 안심해. 

좋은 분이 아주 정성껏 고쳐주셨어. 그리고 이렇게 따뜻하게 편지도 써주셨지. 엄마도 읽어봐... 참 좋은 분이지...

엄마, 좋은 분이 이렇게 잘 고쳐주셨어요. 


급한 마음에 펜만 먼저 보내셨다며 다시 케이스를 챙겨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든 펜이 다시 고장 나면 고쳐주시겠다고 연락하라 말씀해주셨죠.

무엇보다 당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셨다고 해주셔서 더 감사합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펜입니다. 

선생님의 귀한 마음이 담겨 더 그러합니다. 

어머님과 저를 마음으로 위로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권하신 대로 귀한 곳에 정성스럽게. 늘 곱게 쓰겠습니다. 


2019년 3월 10일 

김 이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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