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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한 변명

더이상의 소설은 없다.

by 마음자리

조국 혁신당은 창당도 화려했는데 몰락도 찬란하다.

강미정 대변인의 기자회견 후 불과 1주일도 안되서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조국은 검찰수호의 아이콘에서 문재인 정권의 꼭두각시로 전락해버렸다.

수많은 소설들이 난무하다. 조국혁신당의 중심세력들이 문정권의 민정실세였다며 가해자들에게 약점이 잡혀있다는 둥, 피해자가 극우 로펌을 끌고 들어온 작전세력이라는 둥...


나는 조국혁신당의 당원이었다. 몇일전까지는...

탈당을 하면서의 마지막 연민이랄까... 조국혁신당과의 이별을 아쉬워함일까...

헤어지는 마당에...

조국을 위한 변명을 남기고 싶었다.




벌써 7년 전 일이다. 가톨릭 미투에 참여했던 것이.

이후 나는 어떤 곳에서도 이 일을 다시 거론하지 않았다. 가해자와 그 추종자들의 공격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피해자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 일이 더이상 거론되지 않게 해달라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래서 다시는 이 일을 거론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조국혁신당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때 피해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절대 설득할 수 없었던... '그 빌어먹을 성인지감수성의 부재'가 주는 상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그때 내가 만났던 선하고 잔인했던 중재자들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나 역시 이 사건의 끝에 그들의 선하디 선한 잔인함이 깊은 상처로 남았다.


당시 우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신부였다. 신부라고 다 착하다고 말할 순 없겠으나 적어도 겉으로 악의를 가지고 피해자를 대했을리는 없다고 믿고 싶은 직종이 아닌가. 그들이 선의로 내미는 손들이 하나같이 칼날처럼, 비수처럼 피해자에게 꽂혔던 일들을 기억한다. 매스컴에서는 김어준과 최민희 의원이이 미투에 음모가 있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순수한 미투'라는 낯선 단어를 그때 처음 들었다.

순수한 미투라... 무슨 영화 제목 같지 않은가...

이때부터 유명인의 미투 사건에는 늘상 소설과 음모론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느냐. 서로 만나 오해를 풀고 화해하면 되는 거 아닐까.
서로 좋아했던 건 아니냐. 원하는게 뭐냐
왜 조직에 먹칠을 하느냐 조용히 해결하면 될 것 아닌가.


심지어 어떤 주교님은 이에 더해 당신이 바티칸에서 여성주의를 공부했다고 피해자와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겠다고 까지 말씀하시며 당신이 쓴 책도 손수 주셨다.

마치 고마운줄 알라는 듯이... 그래서 말씀드렸었다.

우리를 위한 기도는 우리가 할테니 주교님은 신부와 교회의 쇄신을 위해 기도하시라고.

당신의 그 아름답고 순수한 선의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욕이었다.

그날 피해자는 구토를 하며 쓰러졌고 나는 분노했으나 아마 지금도 그분은 우리가 상처받았을꺼라고는 결코 짐작하지 못하시리라 확신한다.




소설은 없다.

피해자들이 모여 정치적 작전을 짠것도 아니고 나는 믿기를 조국혁신당의 2차가해 그룹도 누군가를 숨겨주기위해 애를 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냥 이게 별일이 아닌거다. 그럴 수 있는 일로 왜 이렇게 까지 하는지...

이 정도면 되지 않았나. 우린 최선을 다했는데...

아마 지금 조국혁신당의 간부들은 매우 억울하고 서러울테다.

나라를 위해 할 큰일들이 많은데 이런 걸로 발목 잡고 늘어지는 피해자들이 너무 한다.

성추행 사건을 해결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욕을 먹어야 한다고...?


법원에서 판결했으면 되지 않았나? 억울하면 항소를 하든가...

마치 현재의 사법부를 대하는 느낌과 같지 않은가.

이게 비단 조국혁신당의 문제인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숱한 경험들.

아이들이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불쾌한 일들을 경험하거나, 길가다 조롱섞인 위협을 당하거나

직장에서 성적 조롱을 당하거나, 회식자리에서... 노래방에 불려가거나...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꼭 어린 여자아이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나 더럽게 재수없는 날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그러니 그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이것이 그렇게 대단한 사건이라고 여겨지지 않은 것 뿐이다.

검찰개혁의 위대한 역사 앞에서 일상의 자잘한 성희롱이라니... 이게 모 그렇게 대단하다고...

가장 솔직한 조국혁신당의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의 최강욱의원의 말에서 드러난다.


이게 모 그리 대단하다고 사소한 일로 치고 박고 싸울 일이냐. 개 돼지들처럼.


사소한 일.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인터뷰를 하고 기자회견을 했던 거다. 어떤 파장이 일지도 모르고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다. 품위유지 위반 정도 일 뿐이다.

나는 당원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했고 가해자들을 징계했다.

상왕에게 꽂히는 화살은 나에게 던져라. 보필을 못해 송구하다.


그만좀 떠들어라.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못된게 아니고 무지한 성인지 감수성.

이게 전부다.




이해한다. 길에서 그런 아저씨들을 만난 거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까페에서 아줌마들의 수다를 듣는 거라면

한둘이 아니니까. 이건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수준의 구시대의 흔적 아닌가.


그러나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온 국민이 따라야 할 법안을 만드는 정당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의사가 의사면허증 없이 수술을 하면 살인미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국민들이 일상에서 당면하는 어려움을 사소하게 받아들이는 정당은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래서... 조국혁신당은 찬란하게 무너지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이 일이 최소한 정치권에서 만이라도 하나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

한나절만 눈감아도 세상이 바뀌는 이 나라에서

약자들의 피눈물을 사소하다 말하는 성인지감수성의 부재로는 정치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조국혁신당은 윤정권의 교체와 검찰개혁의 임무에 쓰여진 독한 수류탄이었고,

시간이 지나 용도 폐기된 정당으로 사라져야한다.


조국은 그가 쓴 '조국의 공부'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떠났고 모르는 이들이 손을 잡아 주었다고 했다.

그 모르는 이들이 잡아 준 손이 나를 일으킬 수 있었다고.

그 힘을 아는 사람이 동지들의 눈물에 왜 손 한번 내밀지 못했는지를 성찰하길 바랄뿐이다.


피해자가 바란 것이 누군가가 당신은 우리편이다. 당신과 함께 있겠다 이게 전부였을텐데.

감옥에서 '피해자들의 아픔에 함께한다. 동지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조국혁신당이 되길 바란다'

이 메세지 하나만 던졌어도. 지금의 조국혁신당은 변하지 않았을까.


이제 자유의 몸이 되셨으니... 더 편안하게 자유롭게 사시길 빈다.

정치는 그만 내려놓으시길. 이제 어떤 몸짓도 웃음거리로 전락할 일만 남았을 뿐이다.


그간의 아름다웠던 동행을 마치는 나의 쓸쓸한 작별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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