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여름은 제비가 데려다 주지 않는다. 굵어지는 매미의 울음 소리나, 짙어지는 녹음의 색깔로 느끼는 것도 아니다. 여름은 10월의 첫 번째 일요일, 새벽 2시에 선포된다. 여러분은 여름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시계 바늘을 한 시간 앞으로 돌리세요. 텔레비전이 안내한다. 직선으로 그어진 주 경계선만큼이나 부자연스런 선언. 계절을 달력과 시계로 끊을 수 있다는 이 나라의 오만함을 나는 의심한다. 봄 꽃이 지니 이제 여름인가? 아니, 아침엔 아직 쌀쌀한 것 같아. 와, 이젠 낮에는 땀이 나네? 햇빛은 쨍쨍한데 바닷물은 아직 찬데? 이렇게 계절이란 두 발 앞으로, 한 발 뒤로 놀리듯 우리를 시험하다, 어느새 그의 품에 우리를 감싸 안아 버리는 무언가이다. 태양 고도 같은 걸로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쨌든 결국엔 확실하고, 부정할 수 없는 여름이 온다. 아이들은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간다. 일교차가 15도 정도로 벌어진다. 아침마다 일기예보가 중요해진다. 뜨겁다는 예보가 내리면 아침부터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린다. 건조하기 때문에 뜨거운 바람만 들어오지 않으면 에어콘 없이도 32도까진 괜찮다. 찬물로 샤워하고 선풍기 앞에 앉는다. 낮에 불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더워서 도저히 나갈 수 없는 날도 사나흘 정도 있다. 그런 날이 예보되면, 대책을 세운다. 나가야 한다면,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보이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35도는, 에어콘 없이는 뇌가 녹아버리는 온도다.
태양이 하늘의 중심에 앉는다. 수은주가 매 시간 4, 5도씩 전진한다. 적막한 거리는 어지럽게 튀는 빛과 지글거리는 복사열이 지배한다. 멀리 공기가 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모두 어딘가 숨어 이 지독한 해가 지길, 쿨 체인지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네 시가 돼도, 여섯 시가 되고 여덟 시가 돼도 태양은 여전히 하늘 꼭대기에서 새하얗게 열광하고... 여기가 여름의 한가운데일까, 난 가늠해 보지만, 여름의 영토는 어느 날 갑자기 끝날 때까지 계속 걷는 수 밖에 없다. 이제 나는 시계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달력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한다. 이 혹독하고 변덕스런 시간을 기약 없이 견뎌야 한다면 얼마나 무력할까, 마치 감정의 한가운데 던져진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숨죽였던 공기가 술렁인다. 적체됐던 더위가 파도처럼 와르르 무너진다. 쿨 체인지의 시간. 창문들이 열리고 사람들은 맥주와 스파클링 와인을 가지고 나온다. 시원한 바람이 그들의 가는 머리칼을 살랑인다. 어둑한 초록빛 사이로 유리잔 속 칵테일 같은 석양이 저물고, 레몬을 넣은 진 토닉이 내 앞에 있다. 올해는 날씨가 좀 이상하지, 원래는 더 좋은 날씨가 많은데. 이사 온 후로 몇 년째 듣는 말. 이 쯤 되면 이런 소회도 여름의 일부라고 할 만하다. 고통의 순간이 지난후 아름답게 바라보지 못할 게 무엇이랴. 나는 여름이 싫다. 나는 여름이 좋다- 그런게 무슨 소용인가. 여름은 온다. 나는 견딘다. 여름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