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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Sep 27. 2023

운전, 시작은 기적이었다. 레알.

교민 운전기 1

운전... 구우우우지?

80년대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기름 한 방울 안나는 나라에서 왜 자가용을 몹니까."와 서울 배기가스 농도가 이기적인 운전자들 때문에 어쩌구 하는 뉴스, 그리고 당시 떠오르는 SF 장르였던 환경오염 디스토피아 만화 영화 같은 걸 보며 자랐다. 서울 사람이라 대중교통에 불편을 느끼지도 못했고,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힘들게 굳이 운전을 해? 지하철 타면 놀면서 갈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호주에서 15년 여 운전하는 이야기... 

(광희 버전으로 읽어 주세요)


한국에서의 운전 실력: 근근이 1종 보통

고 3 끝나고 운전면허는 따는 게 좋다고 해서 집 근처에서 면허를 땄다. 필기 만점! 고 3의 시험 능력이란... 1종 보통을 따는 게 좋다고 해서 파란 용달 달달달 몰고 합격. 에이, 이거 어따 써~ 폼은 나네~ 하며 면허증은 장롱행. 가끔 부모님 모셔다 드릴 때 오토 중형차 근근이 한 시간 모는 정도. 부모님 회사에 다인승 차가 있어서 한 번은 친구들 데리고 놀러 다녀오기도 했는데... 불안하지만 어떻게 몰긴 한다...라는 정도였다. 한 때 유행하던 카레이싱 만화 같은 걸 보긴 했지만 운전은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여행 취미도 없고, 방향치라... 톰톰 내비게이터가 나오기 시작하던 시대였지만 많은 도움이 되진 않았던 시대.


그런데 호주에 와 보니 일단 주행 방향이 반대! (영국식) 그리고 한국과 다른 교통 룰! 당시엔 국제 운전 면허증이 만료되면 호주 운전 면허증을 다시 따게 되어 있었는데, 호주 운전면허 시험은 정말 엄격해서 정식 면허증을 받기까지 L (Learner: 필기 통과)에서 P (Provisional) 1을 거쳐 P2로 등등 절차가 엄청 복잡해서 운전 좀 안 하면 어때~ 하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극악의 대중교통이 등을 밀다

그러다 운전을 해야겠다 결심한 계기가 있었다. 당시 일하던 곳은 버스 갈아타고 1시간 반 걸리던 곳이라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했다. 그런데 하루는 너무 늦잠을 자버린 것이다! 깜짝 놀라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를 타니... 20분 거리였던 것. 이럴 수가... 아무리 대중교통이 안 좋다지만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실 한국은 차가 막히면 지하철이 빠를 때도 있는데. 이 동네는 넓고, 인구가 적으니까 대중교통이 자주 안 다니고, 다니는 건 노선이 다양하지 않거나 굽이굽이 돌고, 늦게 오고, 그러니 다들 더더욱 운전을 하는 악순환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근데 20분 거리를 1시간 반에 가는 건 인간적으로 좀 너무하잖아요. 아, 내 시간... 아까운 내 시간....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매주 화요일 저녁, 한인 라디오 방송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끝나면 11시쯤 되는 시간이었다. 밤이면 기차가 종종 늦는다. 그런데 그날은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쳐 선로 일부가 잠겨 버렸다. 기차가 1시간 정도 지연되고 대체 버스도 안 오는 상황. 일단 내리라고 해서 역에 내렸다. 종착역 바로 전 역이라 플랫폼이 휑했다. (구) 남편은 일찍 자는 타입이라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테고, 불안하지만 대체 버스를 기다려 볼까, 하는데, 저 쪽에 딱 봐도 이상한 사람, 잠바를 허리에 둘러 매고 약을 좀 한 듯한 사람이 있었다... 급불안 해진 나는 기관사가 대체 버스 올 때까지 여기 있을 건지 확인했다. 그는 다행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역 구석에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런데 아, 쎄함의 S는 싸이언스의 S라고, 이 사람이 기관사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급기야 큰 소리가 오고 가자 기관사는 위험하다 생각했는지 기차를 몰고 역을 떠나버렸다, 나를 두고...! 어떻게..? 눈을 의심하며 멀어지는 기차를 보고 있는데, 이 남자는 이제 역에 있는 긴급 연락 기계를 사용해서 그쪽 직원에게 시비를 걸고... 결국 그 직원도 전화를 받지 않게 되고... 참고로 그 역은 골프장 근처에 있어서 정말 사방이 깜깜했다. 나는 역의 어두운 곳에 숨어 깨어 있을 법한 모든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고 (구) 남편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받아, 받아, 받아!!! 그리고 한 편으로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나는 투명 인간이다. 나는 투명 인간이다...


내 은신술이 통했는지(?) 그 이상한 남자는 대체 버스가 올 때까지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다행히 (구) 남편도 도착하여 무사히 그 역을 빠져나왔는데, 그때의 무서움도 빨리 호주 면허를 따야겠단 생각을 강하게 만들었다.


떨어졌는데..? 기적의 반전!

시험의 민족의 피를 타고 난 덕에 필기는 통과. 차에 L자를 붙이고 (초보 운전 같이, Learner 면허란 뜻. 이 면허 소지자는 속도 제한, 정식 면허 있는 사람 동승 등 여러 제약이 있음.) 처음엔 (구) 남편에게 주행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여튼 가족한테 뭘 배우면 안 된다. 당시 대화의 일부: "내가 멈추라고 하면 당장 멈추란 뜻이야! 니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추란 말이 아니고!" "앞 뒤에 차가 있는데 어떻게 멈춰!"


그래서 주행 강사를 고용했는데... 이 주행 강사도 물건이었다. 아일랜드 인이였나 스코틀랜드 인이였나 뭐 그랬는데, 주행 중에 얼마나 쓸데없는 수다를 떠는지 운전에 집중이 안 됐다. 그리고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왜 그랬냐, 이래서 그랬냐, 별 짐작을 다 하는데... 그냥 연습을 하게 해 줘라 좀... 그 사람이 했던 말 중에 기억나는 건, 출발하기 전에 뒤에 오는 사람 없는지 먼저 체크하라며, 왼쪽에 "몽" 있는지, 오른쪽에 몽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몽이란 몽골리안을 뜻한다고, 자기 어렸을 때 동네에 몽이란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조크랍시고 했는데 (그렇죠, 인종차별 조크죠. 무려 나랑 친해 보려고 한 조크임), 나중에 생각하니 몽이란 <리아의 나라>라는 책에도 나온 라오스의 고산족 Hmong/묘족을 말한 듯... 그분의 눈에야 뭐 몽이 몽골리안의 몽인지 몽 족의 몽인지 알게 뭐냐... 여하튼 몇 번 하다 관두고. 


주행 시험도 한 번 봤는데, 주행 장소까지 동승할 정식 면허가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낮이라 (구) 남편은 못 가고, 여차저차 근처에 사시던 (구) 남편의 사촌 형수의 은퇴하신 아버님을 섭외하여 갔는데, 그분은 어떤 분이셨냐면... 약간 소심한 듯 까다로운 듯 꼬장꼬장한 전직 공무원 (취미는 지도 보기셨던 듯), 딱 봐도 영드 나올 법한 셔츠에 스웨터 입은 점잖은 서양 할아버지셨는데... 시험 장소 다녀오자마자 벌컥 내리시며 "... 운전 더 연습해야겠네요." 하심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그분 얼굴에 떠오른 '하, 개죽음당할 뻔'이란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시험은 어떻게 봤냐, 시험관 분이 "비가 와서 윈드 스크린이 뿌예지면?" 하고 물으셨는데 "...창문을 열고..?"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어이의 부재를 감추지 못했던 그녀의 얼굴... 깔끔하게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면허 따기를 포기할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 면허 소지자는 자동으로 호주 면허로 바꿔 줍니다> 란 공고가 난 것이다! 한국과 호주가 모종의 어쩌고를 맺어 법이 바뀐 것이다! 하하하, 이럴 수가. 호주 정부 약 먹었어요? 나 같은 사람한테 운전 면허를 주다니 제 정신? 이란 생각을 했지만, 냉큼 바꿨다. 대한민국 만세.


그리고 그렇게 나의 운전 인생이 막을 올리는데..!!! 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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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하자면- 쓰다가 생각난 건데- 호주 주행 시험은 정말 까다로워요... 주택가 길에서 유턴할 때 3포인트 턴이라고 있음. 차를 세 번 돌려서 방향을 바꿔야 하는 건데, 여기서 후진할 때 인도 보도 블록에 닿으면 안 된다거나, 숄더 체크 (왼쪽 어깨 뒤를 -우측통행- 고개를 확 돌려서 체크하기. 초보는 앞만 보기도 바쁜데...), 극한의 눈치 싸움인 라운드 어바웃 등등... 아, 그리고 차는 수동이었는데... 이 차에 대해선 다음 화에 쓰겠습니다.ㅋㅋㅋ 


*몽족은 베트남전 이후 난민이 되어 갑자기 전통적 생활 방식에서 서구식 생활에 적응하느라 문명 충돌을 겪었다고. 이 아저씨가 들려준 얘기 중엔 자기가 가르쳤던 한국인 뇌 수술 전문의(여)와 건방진 학생회장 출신 틴에이저 등이 있음. (그러니까 왜 주행 강습을 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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