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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Oct 09. 2020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퇴근을 하고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말려주는데 휴대전화의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나에게 올 전화가 없을 텐데라는 생각에 힐끗 휴대전화의 발신자 이름을 확인하자 예상치 못한 이름이 떠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브런치에서 몇 번 언급했었던 퇴직 후 다시 계약직원으로 돌아오신 부장님이다.


그 부장님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분이 전화를 하신 용건이 너무나도 뻔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 근처에서 회사 사람 중 누군가와 술잔을 기울이며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한잔하러 나오라는 그 술자리 제안 전화였을 것이다.


퇴직 전에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직원들에게 이런 용건으로 전화를 자주 하시곤 하셨기에 당연히 그런 전화일 거라는 생각에 나는 전화의 진동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부장님의 전화는 한 시간 간격으로 두세 번이 더 왔고 어차피 나가고 싶지도,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힘든 거 절대신 수신거절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새벽 즈음 한번 더 전화를 하신듯했다.

그리고 뜻밖의 문자메시지도 남겨져 있었다.


"@@아 이번에는 누가 뭐래도 돼야지.
이번에 안되면 2년 후야.
그러니 팀 식구들이랑 어울리자. 다 식구잖아."



술김에 적으신 메시지인지 맞춤법도 맞지 않게 띄엄띄엄 쓰인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니 대충 이런 내용인 듯했다.


그리고 메시지를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 눈물은 감동과는 거리가 먼 내 마음속에서 겨우 누르고 있었던 뜨거운 용광로같은 화병의 눈물이었다.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메시지를 복사하여 김대리에게 보내고는 한참을 침대에 누워 꺼지지 않는 화를 눌렀다.





부장님께 답변을 할까 말까를 한참 동안 망설이다 나는 겨우 화나는 마음을 누르고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최대한 형식적인 답변을 찍어 보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했다.


'내가 지난번 승진에서 물을 먹은 이유가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인 건가?

그래서 결론이 뭐야..

언제든지 전화하면 튀어나와서 술을 먹으라는 거야 뭐야..'



메세지를 본순간 난 이미 성난 호랑이 같은 표정이었을것이다


속이 붸붸 꼬여있는 탓인지 아님 이미 회사에 온갖 정이 다 떨어진 탓인지 분명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은 그분의 마음은 의심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분노가 올라왔다.


아마도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요즘따라 말이 없고 팀원들과 벽을 쌓는 것만 같은 내가 걱정돼서 하신 말씀이셨을 텐데

팀 업무 비협조적이었거나 공식 회식자리에 빠졌던 것도 혀 아님에도 그런 말을 하시는 그분의 얘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필요하지 않은 말을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가고 싶지 않고 기다리는 딸아이 때문에 갈 수도 없는 몇 번의 비공식적인 술자리들을 거절했을 뿐이었다.


근데 이런 메시지까지 받으며 또다시 다음번 승진까지 위협받아야만 되 일이었을까?





사. 회. 생. 활.


그놈의 사회생활이라는 이름 회사생활의 본질 업무와 그에 대한 책임감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나도 안다.

회식을 빙자한 다양한 술자리도 회사생활의 일부이며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인사평가의 한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을 지난 십여 년간의 사회생활 끝에 나는 충분히 알게 되었다.


그랬기에 이해해보려 했다. 그들의 사. 회. 생. 활. 을.


나란 사람이 갖지 못한 사회성 때문에 내가 받을 수밖에 없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무던히도 이해하려 애쓰며 술 먹은 다음날 숙취 때문에 해롱 되는 그들의 업무공백도 이해하려 했다.


근데 그놈의 식구라는 이름을 빙자하여 전해온 그분의 조언이 담긴 어젯밤의 메시지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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