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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Aug 16. 2020

식구라는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예전 브런치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던 (구)부장님 (현)파견직원분과 함께 일을 한지도 어언 3개월이 넘어간다.


http://brunch.co.kr/@thesy/207


그분이 퇴사하기 전에도 나는 두어 번 같은 팀에서 일을 해본 적이 있었다.

두 번 다 우리 팀의 최종결재자라 할 수 있는 위치셨는데 그분에 대한 직원들의 평가는 하나같이 일치했다.


"사람은 좋으시지만.. 업무적으로는..."


이 극단적인 평가는 아마도 그분이 이곳에 입사하여 보여준 약 20여 년간의 발자취였을 것이다.


단 하루도 술 약속이 없는 적이 없을 정도로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시고 사람 좋아하시는 분.

술 약속이 없는 날이면 어떻게서든 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약속 거리를 만드실 정도로 술자리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셨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술자리에서 술이 부장님을 삼키는 것인지 아님 부장님이 술을 삼키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술을 들이시고는 언제나 술자리의 끝에는 호프 한잔만을 외치며 2차 3차를 자며 직원들을 조르고는 하셨다.


그렇기에 그분과 술을 마시게 될 때면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직원들 긴장을 했던 것 같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고 긴 술자리에서 직원들과의 소통을 즐기시는 것도 술자리에 나오는 갖가지 안주를 즐기시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술잔에 소주를 가득히 따라 연거푸 마시며 한잔해야지라는 말을 반복하는..  말 그대로 오로지 술자리밖에는 인생의 낙이 없는 것만 같은 그런 분이셨다.






나 또한 그분과의 잊지 못하는 술자리의 기억들이 몇 가지 남아있는데 그중 유달리 잊히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쯤 내가 딸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임신 7개월에 육박했으니 누가 보아도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저절로 뒤로 몸이 젖혀질 수밖에 없었고 그 당시 일하고 있던 사무실 또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이 넘는 곳에 위치해 있었으니 언제나 출퇴근길 내내 힘겨운 숨을 고르며 언제쯤 출산휴가를 들어갈까라는 생각뿐이었던 시기였다.


그 당시 일했던 팀은 회사 전체에서도 제일 규모가 크고 일도 많은 팀이었는데 그 당시 술을 좋아하시는 바로 그 부장님이 우리 팀의 최종 결재자이셨으니 회식이라는 자리가 빠질 수가 없었다.


그날도 회식을 하게 되어 일을 마치고 팀원들과 함께 회식장소로 게 되었 그리 크지 않은 고깃집 안의 의자는 뒤 기대어 앉을 수 없는 작은 원통 모양이었는데 나는 부른 배를 손으로 감싸 안고는 그 편한 의자에 앉아 회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곱 시 즈음에 시작한 회식이 두 시간을 넘게 지속되자 팀원들은 이제 그만 일어서자며 부장님께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쯤 술에 취하듯한 부장님께서는 언제나 그러셨듯 한잔만 더를 외치며 버티기 시작고, 고기 냄새와 술냄새가 섞여있는 고집 안에서 지친 듯이 허리를 두드리기 시작한 내가 안타까우셨는지 아님 나를 핑계로 회식자리를 파하고 싶으셨는 차장님께서 거듭 부장님을 만류하셨지만 부장님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아, 우리 딱 한잔만  하고 가자. 서운하잖아."


그 당시 부장님은 밑의 직원들을 직함 대신 각자의 이름으로 친근하게 부르셨는데 그날도 부장님께서 벌게진 얼굴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같았다면 "저 너무 힘들어서 먼저 가봐야겠어요" 라며 바로 일어섰을 텐데 그때는 뭐가 그리 눈치가 보였는지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겠지라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국 11시가 가까워오자 지친 직원들을 대신해 차장님이 결심이라도 하신 듯 그만 가시자며 나부터 택시 안으로 밀어 넣으시기 시작하셨 그제야 나는 무거운 몸으로 택시와 지하철을 거쳐 열두 시가 다 된 시간에 이르러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도착 후 더 엄청난 이벤트가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분싫어거나 미워하는 건 아니었지만 배려는 부족한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나와 같은 동네 살고 계시고 딸의 이름이 비슷하여 우리 딸내미 같다고 했던 말들도 그냥 하시는 레퍼토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래서 아마 그분이 퇴직을 하시고 다시 파견 직원으로 회사에 등장했을 때 반가움보다는 답답함이 먼저 밀려온것이 사실이었다.






"부장님, 이번에 진짜 열심히 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계실 때 진작에 그렇게 좀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바쁜 시기가 조금 지나가고 팀원들 모두 한자리에 모일 일이 생기자 팀장님 무언가 정곡을 찌른듯한 투로 부장님께 농담을 던지셨다.


민망하신 부장님은 연신 예전에도 열심히 했었지 않냐며 웃으셨지만 속으로는 변해버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예정된 그분의 계약기간이 금씩 끝이 보였을무렵 팀장님께서는 오랜만에 식을 제안하셨다.


마도 부장님의 계약기간 종료 맞춰서 그에 대한  송별회와 함께 새로 오게 된 다른 직원의 환영회를 겸할 계획이신 듯 보였다.


지글지글 불판에 고기가 구워지고 소주 한두 잔이 나란히 주고받아질 무렵 부장님이 비교적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나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우리 최대리 이번에는 승진하는 거야?

이 팀장 우리 최대리 승진 좀 시켜줘. 다 같은 식구잖아."


부장님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져 버렸을 때 팀장님이 부장님께 조용히 잔을 넘기며 무겁게 입을 여셨다.


"식구라는 말씀 함부로 하지 마세요.

다들 함께 일하는 직원이고 팀원이지 왜 식구입니까?"


예상치 못한 팀장님의 날선반응에 부장님의 얼굴에는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움이 춰 보였다.

그러나 부장님께서는 늘 그듯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받은 잔을 다시 팀장님께 넘기시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하지 마. 이 팀장.

여기 사람들 다 챙겨야 하는 식구지, 왜 그래."


"죄송하지만 부장님..

저는 회사 직원들이 서로 예의를 지키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 인 거지 부장님이 생각하시는 식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함께 일하는 동안 즐겁일할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면 되는 거죠.


부장님, 솔직히..  저희 회사에 식구라는 말이 안 어울린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부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식구면 어렵고 곤란할 때 서로 도와야 하는 건데..

우리는 안 그렇잖아요."



팀장님은 남은 술잔을 입안으로 탈탈 털어 넣으시고는 부장님의 식구라는 발언에 전혀 동의하실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으셨다.


부장님은 그런 팀장님의 의견에 "이 팀장 그래도 그런 게 아니야."라며 평소와 같 사람 좋은 미소 설득하려 보이 셨지만 술자리가 끝나갈 때까지 팀장님의 생각을 돌리시지는 못하신 듯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회식을 마친 다음날 부장님의 계약기간이 한 번 더 연장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부장님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직원들 계약기간 또한 연장되었기에 그분만을 위한 특혜라는 표현을 붙이기는 어려웠지만 분이 지난밤 강조하셨던 식구라는 말이 하루 종일 귓가를 맴돌았다.


'식구..

식구라는 말 함부로 하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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