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브런치에 어떠한 글을 쓸수 없었던것은 삶이 바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음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던 계기였던 승진인사의 누락을 두어번 더 겪었고 그 사이 나는 둘째아이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다.
또한 브런치에도 한번 언급했었던 새 집으로 이사를 했고 결국 올해 승진을 했다.
승진에서 물을 먹을수록 이곳에 글을 써서 불만을 토로하는것이 과연 맞는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결과였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누락의 사유가 어찌되었든 나의 능력부재로 느낄수도 있을것이고 잦은 불평불만의 글이 나조차도 피로하게 느껴졌기때문에 몇번이나 이곳에 써내려갔던 글을 발행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것은 단순히 승진한 사실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승진에 물을 먹었던 약 3년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느낀것들을 적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승진이라는 이름 두글자에 울고웃는 직장인이라 하더라도 각자가 느끼는 감회가 다를것이겠지만 만약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저 이럴수도 있다며 적당한 공감과 적당한 웃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첫번째, 회사의 기준과 나의 기준은 많이 다르다는것을 느꼈다.
지난시간동안 나의 브런치 동료인 김대리와 가장 많이 한 얘기중에 하나였던것 같다.
승진의 기준은 회사내 규정에 명확히 명시되어있지만 그 기준에서 결코 그 누구도 객관화할수도, 예측할수도 없는 최종평가자의 평가라는 항목은 바꿔 말하면 '인사권자의 입맛대로, 상황에 따라 달라질수 있습니다' 로 바꿔 해석될수있다는것임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1차 평가에서 결정된 순위가 2차 최종평가자의 점수에 따라 확 바뀌어질수 있으며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평가의 기준이 업무량 근면성실함 책임감등등의 상식선이었다면 그들의 기준은 그것보다도 회사에 대한 충성심, 나아가 평가자의 지시에 충성할수있냐는 것임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걸 알지 못했을때는 솔직히 억울했다.
불공평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긴 시간동안 여러가지 일을 겪으며 생각해보니 회사의 입장에서는 특히, 회사를 운영해가는 상급책임자의 입장에서는 일잘하고 능력도 뛰어나지만 자신의 지시에 반론을 제기할수있는 놈보다는 능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어떤 지시를 내리더라도 들을 용의가 있는 놈이 더 맞는 선택일거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뛰어난 능력자에 해당되는것도 아닐테니 그들은 더 고민할 가치를 못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둘째, 내가 우물안의 개구리임을 깨달았다
이십대중반에 이곳에 입사해서 이제 삼십대후반을 넘어서니 거의 십여년가량을 이곳에 머물렀다.
지역내에 위치한 작은 공기업이다보니 다 비슷비슷한 능력치와 비슷비슷한 생활반경을 가지고 있었고그래서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착각했었다.
"대리님 우리회사 월급수준이 되게 애매한 수준인거 아세요?
생활하기에 부족한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넉넉한것도 아니예요.
그저 남들하는것처럼 밥먹고 대출받아서 집사고 생활할정도는 되는데 그 이상으로 뭔가 여유를 부리기는 애매해요.
그러다보니 아이러니하게 이직률이 낮아지는것 같아요.
더 좋은곳이 있을것같다가도 또 여기만한 곳이 없을것 같거든요."
함께 독서모임을 하던 후배의 그럴듯한 분석에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입사한이래로 신입직원 몇명을 제외하고는 회사에서는 자발적으로 퇴사를 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뭔가 자격증을 딴다거나 대학원을 공부한다거나 아님 어떤 얘기가 들릴만한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실이 여러번의 승진누락을 겪은후에야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회사에서 이런일을 겪지 않았다면 나도 별생각없이 회사와 집만을 오가다 안정적인 정년퇴직을 꿈꿨을것이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회사밖의 삶을 생각하지도 않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채 회사밖으로 내몰려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 내가느낄 절망감과 위기감은 지금보다도 컸을것이고 난 그때 조금더 젊을때 뭐라도 해볼걸 하는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몰랐을것이다.
세번째, 회사사람들은 내가 생각한것만큼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때 우리회사는 오십여명정도의 소규모 조직이었고 그렇기에 모두 서로의 얼굴과 대략적인 개인 사정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좋은소식이든 그렇지 못한 소식이든 너무 빠르게 회사내에 돌았고 사람들은 그 소식을 접하게 된 즉시 당사자인 누군가에게 축하든 위로의 말이든 어떤식으로든 표현을 하는것이 당연했었다.
그리고 그전까지 나는 솔직히 그들의 말과 표현이 다 진심일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나의 승진누락에 위로와 안타까움을 담은 그들의 걱정들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하는 얘기이며 그만큼 나를 생각해주는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년에 또다시 승진인사에서 물을 먹고 처음으로 그 이유라도 알고싶다는 생각에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인사부장님께 연락을 드렸을때 나는 그게 아니라는것을 명확히 깨달았다.
그분과 통화를 시도했을때 나는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솔직하게 나에게 그 이유를 알려줄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통화를 이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계속 이런결과가 나오는건 제가 회사에 있음 안되는 사람이라서 그런거냐는 질문까지 쏟아내버렸다.
지금생각해보면 다 의미없는 아우성이었겠지만 그때는 그저 무슨 얘기라도 듣고 싶은 마음이 컸던것 같다.
그래서 이정도로 저를 인사에서 배제시키는거라면 제가 이 회사에서 쓸모없어져 그만 나가줬으면 하는게 아닌가하는 의구심까지 든다며 진짜 그런거라면 퇴사할마음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나는 그때 나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다 가까스로 입을 떼신 그분의 한마디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최대리.. 그러지마.
어차피 그들은 너가 뭘하든 아무 상관도 없다고..
아무 관심도 없다고."
그 한마디에 나는 머리에 뭔가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름 인사최종평가자였던 분들 모두 전임자들과는 달리 이성적이고 인격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계셨던 분들이었다.
나또한 그분들과 함께 일한적이 있었고 늘 따뜻한격려와 유쾌한 농담이 함께 했었기에 그런 얘기가 나올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능력부족이었더라던가 아님 평가점수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는 얘기였다면 더 수긍이 되었을텐데..
그사람들에게 난 애초부터 아웃오브 관심이었다는 얘기에 회사에 남아있던 일말의 기대조차도 끊어버려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후 출산휴가를 위해 인사차 그들을 마주했을때 안타까운 눈빛으로 맘고생이 많아서 어쩌냐는 위로의 말을 들었을때 그런 나의 생각은 더 견고해졌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제 진정으로 회사와 적당한 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이 단계를 위해 이 모든과정들을 힘겹게 버틴것이 아닐까 싶을정도의 느낌이 들정도였다.
요즘 MZ세대로가 불리는 신입직원들은 들어오는 순간부터 회사와 자신을 철저하게도 잘만 분리시키기만 하던데 나는 옛날사람이어서 그런것인지 아님 스스로를 조직형 인간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었는지 이러한 단계까지 오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맨처음, 승진누락을 겪었을때는 회사가 그저 미웠었다.
그렇지만 마음속 깊이 다음 기회가 올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어서였는지 그 미움은 애정을 밑바탕에 둔 언제든지 회복이 가능한 미움이었다.
그 다음해, 소리소문도 없이 예고된 인사가 사라져버렸을때에는 회사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서 회사안에 앉아있는것이 괴로웠고 때로는 숨이 막혔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내 자신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어쩜 나에게도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동안의 회사생활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또다시 일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작년, 세번째 물을 먹었을때는 회사에서의 나를 잃어버렸다.
임신 호르몬때문인지 아님 그냥 분노를 넘어선 그무엇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고 자다가도 벌떡벌떡 몸이 일으켜졌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견디면서 월급값이라고 생각했던 기준과 상식의 의미를 잃어버려 갔다.
그러면서 마음먹었던 자격증 공부를 꾸역꾸역 이어갔고 회사밖에서의 삶에 집중하기 시작했고회사안에서는 그 어떤것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승진을 하게 되면 그래도 그렇게 힘들었던 일이었으니까 난 내가 조금이라도 기쁠줄 알았어.
아님 내가 조금은 바뀔줄 알았어.
근데 나 솔직히 월급명세서 봤을때 잠깐 기뻤고
승진했다는 얘기도 가족들한테 바로 못하고 몇일을 망설이다 했다."
입사후 3년만에 대리로 승진한 후 10년이 더 걸려 얻은 과장으로의 승진이었다.
승진이라는 소식에 누군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누군가는 금의환향이라는 단어까지 썼다는데
난 이미 승진이라는 단어에 너무 질려버린건지
아님 이미 회사에는 정이 떨어질대로 다 떨어져 회사에서 주는 감투가 그리 감격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는것이 승진에 대한 나의 솔직한 소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