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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May 06. 2021

몽중인

나의 답답한 꿈속으로 들어와 한바탕의 요동을 일으키네

https://youtu.be/c75keT6Tm_g 



‘이번 역은 수원, 수원역입니다.'

윤미래의 ‘삶의 향기’를 지나 플레이리스트의 마지막 곡 Hoobastank의 ‘The reason’이 시작될 즈음,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방송 멘트가 지하철 안에 울려 퍼진다. 1시간 하고도 45분. 집과 회사의 거리가 멀어 꼬박 3시간이 넘는 시간을 매일 길 위에서 보낸다. 허나 그 시간이 절대 지루하진 않다. 아니, 어쩌면 출퇴근 시간이 가장 황홀한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밤 새로운 주제와 노래로 업데이트되는 플레이리스트와 함께라면.      


언제부턴가 내일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채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시작일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얼굴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더 정확히는 얼굴에 부재했던 것들이 또렷이 기억난다. 지하철 창문으로 흐릿하게 투영된 얼굴. 창밖 풍경을 힘없이 따라가던 그것은 생기가 없어 창문에 묻은 얼룩보다도 옅었다. 간간이 존재가 드러나려 하면 황급히 모습을 감추던 얼굴. 뚜렷한 경계도 없이 퍼져있던 얼굴은 주변 산속으로 파묻히거나 건물 사이로 뭉개져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했다. 너도 참, 어지간히 네가 싫구나. 주관도 없이 외부의 흐름에 방치된 얼굴은 초점도 없어 대면하지 못하고 끝내 헤어졌다.      



불분명한 형태에 온갖 결핍으로 가득했던 그것은 정말 얼굴이 맞았을까? 혹, 회사에 시달려 기력을 다한 머릿속이었나. 아니면, 적성과 맞지 않는 업무, 권위적인 상사, 어울리기 어려운 직장 동료, 그럼에도 부족한 잔고 덕에 이 모든 불행을 다행으로 여기려다 지쳐버린 마음이었나.      



7개월 전까지만 해도 무직이었다. 그것도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계약직과 백수를 오갔던 불안한 신분. 첫 취업 준비를 기점으로 무려 6년 만에 정규직 타이틀을 거머쥔 게 불과 7개월 전이다.      



'네가 그렇게도 원했던 정규직이야.’,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을 봐. 많진 않더라도 고정적이잖아.'라고 스스로 토닥여도 보고, '6년 취준 생활보다 지금이 훨씬 낫지. 힘들다고 느끼면 배부른 거야.' 채찍질도 하며 버텨온 회사 생활. 일그러진 기쁨을 다시는 누리지 못할 행운처럼 여기며 나를 잃어 갔다.      



그렇게 꾸역꾸역, 회사에 얼굴을 비추던 주인은 자신의 얼굴에 이어 생각과 마음마저 잃게 되면서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러다 영혼, 아니 전부를 회사에 빼앗겨버리겠구나. 더 이상의 내가 없는 직장인 A로, 꼬박꼬박 돈만 겨우 받아가며.     



억눌린 감정에 맞춰 얼굴 없는 사람으로 살다 간 사무실 창문의 얼룩으로 남겠다는 괴로움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곤 음악을 필사적으로 찾아 듣기 시작했다. 감정을 잔뜩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을 음악. 웃다가 돌연 왈칵 울어버려도 같은 마음으로 공감해줄 음악이 절실했다. 발라드, 락, 재즈, 클래식. 장르가 통일되진 않아도 이들의 목표는 동일했다. 각자의 멜로디와 가사로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 어떤 마음이든 모두 이해한다는 듯 묵묵히 자기 소리를 내는 그들이 고마웠다. 무엇보다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노래만큼은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든든했다. 말 그대로 오직 나를 위한 플레이리스트.      



4월을 꿋꿋하게 넘긴 5월의 첫 번째 밤. 나는 플레이리스트를 새롭게 정리했다. 5월의 목표는 회사와 집에 매몰되었던 일상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방을 응원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 지극히 단조로울지 모를 일상을 글 안에서 재조명해 볼 셈이다. 말하지 못한 속내는 온점 없는 문장으로, 소심한 마음은 과감한 느낌표로! 또 힘든 일은 담담한 기억으로, 찰나의 순간은 명장면으로 바꿔가며 하루를 알차게, 두 번 살아보려 한다.      



그런 의미로, 5월의 첫 곡은 왕페이의 몽중인 (영화 <중경삼림>의 ost)     



나의 답답한 꿈속으로 들어와 한바탕의 요동을 일으키네.     



당당한 움직임이 필요할 때, 첫걸음을 떼기 전 꼭 이 노래를 찾아 듣는다. 영화 <중경삼림> 속 페이(왕페이)는 사랑에 실패한 경찰관(조위)의 삶에 불쑥 끼어든다. 옛 연인이 반납한 집 열쇠를 들고 찾아간 그의 공간엔 슬픔이 한가득이다. 주인의 이별에 동참한다는 듯, 빨래된 옷은 물방울을 뚝뚝 흘리고, 오래된 비누는 말라비틀어진 채 야위었다. 페이는 미련 없이 옛 것을 버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리된 빈자리를 자신으로 채운다. 그의 공간은 슬픔이 줄어드는 만큼 새로움으로 환기된다. 결국, 공간 주인의 마음까지 닦아준 페이는 새 사랑의 출발점이 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의 5월도, 그러니까 내 삶도, 이전의 시간과 달라질 요동이 필요할 것이다. 변화의 시각이 생긴다면, 삶은 분명 새롭고 낯설어질 수 있음을 글과 음악으로 꾸준히 알아가고 싶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로 같은 시간, 같은 지하철, 같은 거리의 출퇴근길에 즐거움이 더해졌듯이. 직장 생활의 처음과 끝에 변화를 주었다면, 이제는 일하는 시간에도, 더 나아가 일 밖의 일상에도 나만의 재미를 불어넣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물론, 삶은 영화 같지 않아 변화의 요동 마저 직접 만들어야 하는 수고는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주인공을 넘어 감독의 자리까지 넘나들며 재료를 준비해 그려둔 씬에 투입하고, 직접 체험해보는 전 과정을 누린다면 얼마나 귀중한 경험이 될까! 한 번의 삶이 이렇게도 다채로워질 수 있음을 끝내 깨닫게 될 모든 내일을 기약하며.



감정을 잃은 일상을 꿈틀거리게 할 작은 충격이 필요한 나에게

변신을 꿈꾸고 시도하려는 나에게

저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모든 이에게

이 노래를 들려 드립니다.


힘차게, 당당하게, 걸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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